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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난한 자의 복 (마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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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가난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르고 배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병들고 가난한 자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의 입장을 합리화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들의 육체들의 가난에서 심령의 가난을 말씀하십니다. 가난한자는 무엇을 얻으려는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심령에 갈증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5장는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의 깊고 숭고한 진리가 내포되었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자 데베트(Dewette)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의 전 교훈의 요약이라고 하였습니다. Tholuck/하나님나라의 대헌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헌장속에는 기독교의 성격과 생활의 이념과 방향이 설정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인도의 영웅 간디같은 사람은 비 기독교인이지만 이 산상수훈을 즐겨 애독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문장은 짧고 간단하지만 심오하고 값진 진리의 말씀들입니다.

1. 가르친 장소와 대상.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산은 그렇게 높지 않은 산입니다. 그리고 익숙한 산입니다. 눅6:17이하를 살펴보면 갈릴리지방에 있는 산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베세다들녁 북편에 있는 팔복산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지금은 이곳에 기념교회사 세워졌습니다. 뒤에는 병풍처럼 산들로 감싸여 있고 앞에는 갈릴리바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이 산 위에 오를 때에 제자들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무리들 속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앞에 나와 앉았습니다. 이때에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여기에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제자들의 말씀을 듣는 자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분의 입이 하늘의 비밀을 말씀하신다는 선언적인 의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신중한 자세입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자리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시편1편에도 복있는 사람은 자리철학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아무 곳에나 걷고 서고 앉지를 않습니다. 때와 장소와 사람을 분별하는 자가 지혜롭고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앞자리에서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정성스럽게 경청하였습니다.(록펠러의 복받는 비결/예배당 앞자리/주일성수/ 십일조)우리 예배당 모두다 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말씀듣기가 좋고 기도하기에 장애가 없는 곳이 제일 복된 처소입니다.

2. 심령이 가난한자의 복.
1) 복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총입니다(makarios)
이 말씀은 심령이 가난함으로 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은 받은 자가 즉 은혜를 입은 자가 심령의 은총을 받게 되고 이분의 마음이 가난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복의 원천과 출처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2) 심령의 은총을 먼저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 먼저 부자가 되거나 지식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 가난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하늘에서 우리의 심령으로 가정전반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사람의 심령을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가난한자 같이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서 심령의 천국을 누리게 합니다. 이 심령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어지럽고 험한 세상에서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안이 가득차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심령을 물 댄 동산같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같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심령에 건강에서 육체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이 달라지기 전에 우리의 심령의 그릇과 자세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 심령은 마음을 말하기보다 우리의 내면적 세계의 근원인 심령입니다(Phunuma).

3) 가난하여 집니다.
여기에 가난 상대적 가난이 아니라 절대적 가난입니다. 부족한 상태가 아닙니다( /poor).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에게 신세를 끼칠 정도의 가난이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가난하여서 외부에 도움이 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상태의 가난입니다( /Phtokoi). 이것은 결핍상태가 아니라 거지를 말한다고 합니다(Begger/Hendriksen). 여기에 가난이라는 단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① 자신의 존재의 비참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내게 있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고로 나는 소망이 없습니다. 나는 내 힘을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도 내 힘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손을 내 밀어서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서 도움의 은총을 갈망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을 나를 박대하시면 내 어디 하리까 소망없는 자신의 심령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하여 은혜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절규를 말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 은혜와 복이 없는 자가 거만합니다. 자신이 된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는 내가 죄인이구나 나는 자랑할 것도 없이 없구나 세상 살아갈 때에도 광야에 이스라엘처럼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만나가 필요한 줄로 아는 자입니다.

②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복을 받으면 예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의 은총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총을 갚을 길이 없는 가난한자로 인정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은총을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리요 내 지식으로 가능합니까 내가 가진 재물로 가능합니까 아닙니다.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는 것도 다 주님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엎드려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바칩니다라고 절규할 수에 없는 자신을 알고 엎드리는 자입니다. 복을 받은 자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에 채무자임을 믿고 살아갑니다.

③ 구걸하는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자는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또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부채자임을 알고서 물러나 엎드립니다 .자기의 부족을 알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해결사 하나님을 찾아 의지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부족을 이야기하면서 채워주심을 믿음으로 호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의가 없습니다. 선함도 없습니다. 나는 간사합니다. 나는 은혜 속에 살면서 불평의 옷을 입고 다닙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주여 나의 영혼과 몸과 마음을 주님 앞에 드리오니 주님이 주관하여 주옵소서 라고 외치는 자입니다.

4) 하나님의 복의 특징은
1)자기 자신을 바르게 봅니다
2)하나님을 바르게 봅니다.
3)하나님에게 의지합니다
4)호소를 합니다.
이사야도 설익은 신앙을 지닐 때에는 자기가 제일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은 후에 나는 입술이 부정한자요 부정한 백성 중에서 거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과 차별이 잇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나도 저 백성과 같은 죄악속에 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런 자는 자기의 부족함과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는 자입니다.

3.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기에 천국은 주님의 주권이 구속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속통치로 임하는 하나님의 천국을 말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천국을 말할 때에 이루어진 천국 이루어질 천국으로 말합니다(already not yet). 이 말은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면 먼저의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나중에 영원한 천국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C. H. Ladd). 부흥사 이성봉목사님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1)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2)가정천국이 이루어지고 (3)교회천국이 이루어지고 (4)최종적으로 영원천국을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원망대신 감사가 넘칩니다. 낙심대신 의지하게 됩니다. 외유내강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에게 주실 최대의 최초 최종의 은총은 천국입니다. 천국은 죄가 없습니다. 죄책도 없습니다. 있는 죄는 다 상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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