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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있는 종 (마 24: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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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빛이 되고, 이 세상을 복음화하므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빛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빛의 자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빛에 속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을 밝게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반드시 빛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에베소서 5:9을 보면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빛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산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점점 살아가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빛의 자녀는 그 수가 적고 어둠의 자녀들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하고 불의하고 진실하지를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부산과 이 민족을 복음화해야 하는 이유는 어두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몇 가지를 들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내세를 믿고 삽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면 더 좋은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으며,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과 심판을 믿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사실을 확실히 믿고 사느냐 믿지 못하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인생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애를 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육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즐기며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똑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믿는 사람은 빛에 속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밝게 하는 자가 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어둠에 속한 자가 되어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 사람들을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복음을 전하여 밝은 세상으로, 살아가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짜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도적이 집주인에게 미리 날짜를 알려주고 도적질을 하러다니지 않듯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를 잉태한 여인에게 해산의 날이 있듯이 예수님께서도 반드시 이 땅에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 5:3).

잉태한 여자가 해산할 날이 가까워오면 통증이 시작되듯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이 가까이 오면 그 징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24:3 이하를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환난과 재난과 전쟁과 사람들의 악함으로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살아가기가 어렵고 세상이 어지러워져도 계속해서 복음은 전파될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면 그때 비로소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죄와 싸워 이겨야 하고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타락하게 만들어 멸망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있을 큰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믿음의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신앙생활하다가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환난과 핍박을 허락하시는이유는?
1.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3:12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다 알곡 신자는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가라지 신자도 많습니다. 평안할 때는 누가 알곡 신자인지 가라지 신자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오면 알곡 신자인지 가라지 신자인지 확연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2. 거룩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가 온몸을 정결케 하듯이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게 하기 위해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는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 앞에 범한 죄가 무엇인지 자신을 살펴보며 회개하고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로인해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거룩한 신자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정금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살기가 좋고 평안할 때는 믿음이 별로 크지 않습니다. 자연히 열심으로 기도하지 않게 되며, 은혜 받는 일에 힘쓰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병약해지고 잠자는 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환난과 핍박이 오면 목숨걸고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기도 하며 때때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능력 받아 정금 같이 굳건한 신자가 됩니다.

4. 세상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무나 살기가 어려우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천국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죽을까봐 걱정하며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세속화되어 안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 사도 바울처럼 그 나라에 가기를 사모하고 소망하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는 순교자가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고생이 너무 심하다보니 예전같으면 비밀리에 숨어서 적당히 믿던 사람들도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죽어서 순교자의 명단에 올라가고 영광스럽게 주님 앞으로 가기 위해, 노골적으로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전도하며 자신이 예수 믿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순교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을 겁내고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더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한다면 예수를 믿어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무서운 환난과 핍박이 있게 하여 성도들이 세상에 대한 소망과 미련을 다 버리고, 오직 천국에 대한 소망만을 가지고 살다가 주님 맞이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환난과 핍박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영광의 날이요,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멸망의 날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 고생이 다 끝나는 날이며 환난과 핍박이 끝나는 날로, 너무 좋아서 기뻐 뛰며 춤을 추고 행복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심판의 날이므로 이를 갈며 슬피 울며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통곡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37-44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이 임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노아의 여덟 식구를 방주에 들이고 나서 시작하셨습니다. 홍수심판 때에 노아의 가족 외에는 살아난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으로 들리어 올라갑니다. 그러나 들리어 올라가지 못한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옛날 소돔,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셨듯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0-43을 보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같이 일을 했으나 그 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남은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니 그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가 역시 한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이처럼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또는 집에서 일을 하다가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갑자기 주님 오시면 그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들리어 올라간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러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언제 오시더라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두 가지 때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죽을 때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 죽더라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어느 때 재림하실지라도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평소에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45-46절을 보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떤 직분이든 맡아서 충성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이렇게 교회에 일군이 많은데 나 하나쯤이야 안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예배만 잘 드리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날 복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충성, 봉사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수영로교회 성도들이 모두가 다 기쁨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일에 성공하기 위한 우리 교회의 목표가 있습니다. &51569;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등불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처럼 성도 한 분 한 분이 은혜 받은 성도들로 가득찬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51570; 충성스러운 헌신된 일군으로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받은 대로 갑절로 남겨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은 것처럼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하고 사랑방을 만들어 부산과 민족을 복음화 하는 일에 헌신하는 성도로 가득 찬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51571;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의 심판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선행을 베풀며 살았던 양과 같은 사람을 향하여 네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처럼 귀하게 여기고 서로 높여주고 나누며 사랑하고 아껴주며 살 때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권위있는 갤럽조사에 의하면 교회생활에 깊숙이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4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감을 느끼며, 훨씬 더 견고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다른 인종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나 이웃들에게 관용도와 이해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몸과 시간과 돈을 들여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밝게 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남의 도움이 필요한 미자립 교인과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는 잘 하는 자립교인과 헌신된 일군신자들이 있습니다. 헌신된 한 사람이 헌신되지 않은 사람 백 명 천명보다 나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IMF때였지만 300억 이상을 들여 성전을 건축할 때, 건축헌금 작정도 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믿음따라기도하며 성전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내놓기까지 한 헌신된 성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평범한 대중에 의해서가 아닌 헌신된 소수에 의해서 진행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헌신된 그 사람들을 통해 교회가 부흥되고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신된 일군을 찾으십니다.

구 소련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든 레닌은 “나에게 헌신된 사람 백 명만 주십시오. 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라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헌신된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무신론을 주장한 공산주의가 하나님에 의해 일 백년도 안되어 무너졌지만, 오랫동안 전세계의 반을 붉게 물들였던 적이 있습니다.

1945년 독일의 뮌헨 스타디움에 운집한 10만 명의 젊은이들이 브라운 색의 셔츠를 입고 어깨동무를 한 채로 “아돌프 히틀러,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비록 잘못된 헌신이었으나 그들의 힘이 독일을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의 젊은이들도 독일을 본받아 천안문 광장에 모여 “모택동이여,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아직도 중국에는 네 사람중 한 사람이 철저하게 헌신된 공산주의자로 세계 최강의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전국 언론인 클럽에서 “존경하는 언론인 여러분! 저는 늙은 젖소와 같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가진 모든 것을 국민 여러분과 미국을 위해 다 바치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연설을 듣고 있던 그곳의 모든 언론인들이 감동을 받아 기립 박수로 그의 연설에 화답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님을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다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복이 있는 사람으로 주님으로부터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모두가 다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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