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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를 위한 부르심 (막 0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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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최고의 영성 지도자인 '헨리 나우웬'이 쓴 책 중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적어도 우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주님을 생각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치료하심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는 주님의 붙드심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 중에 많은 부분을 병을 고치는 데 할애하셨습니다. 각색 병든 자들을 주님께서 밤이 늦도록 돌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집을 심방하셔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자 즉시 소문이 번져 주변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옴으로 인하여 마치 베드로의 집이 병원처럼 사용 되었습니다.

각색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사람을 귀신의 사로잡힘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실 뿐 아니라 심령의 병들도 치료하여 주신 후, 주님은 평소 마음에 두셨던 곳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주님을 기도하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그곳까지 찾아온 제자들이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환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시고 '우리가 다른 마을로 가자' 라고 하셨습니다.

'고든 맥도널드'는 '현대인들은 대개 두 가지 종류의 삶을 산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충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소명에 의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충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때 그때의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환경에 이끌려 다니는 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명에 의하여 사는 사람들은 철저한 계획과 준비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것이 우선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주님의 모습은 바로 사명에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주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주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마을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로 가시기 전, 주님께서는 먼저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효과적인 기도 생활을 위하여는 어느 시간대가 가장 좋을까요? 여러분들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주님께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낮에도 가능하겠지만 사실 그 시간은 온갖 세상의 소리로 인해 우리들을 온전히 기도하도록 가만 놔두는 환경이 아니지요.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요람을 보면 나이가 젊을수록 휴대폰을 소유한 계층이 많아집니다. 청년, 중고등부까지 내려가면 거의 100%입니다. 그 휴대폰들이 여러분들을 가만 놔두지 않지요. 심지어는 예배시간에도 울려댑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는 예배실 안에는 휴대폰이 울리지 않도록 전파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한 곳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절제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혹 실수로 휴대폰이 울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즉시 끌 수 있는 우리의 자제력이 중요합니다만 휴대폰이 울린다고 그것을 들고 나가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명의 노예, 기계의 노예가 따로 없는 모습이지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복잡한 환경들이 우리를 기도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최선의 시간이 바로 새벽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능력의 백성들로 쓰임을 받으려면 충전이 되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내가 요즘 점점 바빠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더 기도해야 되겠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인생이 더 분주해지십니까? 그럴수록 더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가장 기도하기 좋은 시간은 우리 주님께서 선택하셨던 새벽입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던 주님을 본받아 기도생활을 잘하는 국가 중에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앞서있습니다. '한국 교회' 하면 새벽기도가 특징으로 선택될 만큼 그렇게 우리는 새벽기도를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습니다.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시간에 입을 열어 고백하는 찬송, 귀를 열어 듣는 말씀이 바로 새벽시간입니다.

이 새벽에 우리가 필요한 영적인 모든 영감을 얻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귀중한 복을 누리는 복된 시간이 새벽인 줄 믿습니다. 우리 평안의교회는 새벽시간에 이웃과 민족을 위해 기도할 120명의 기도의 용사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새벽기도이지만 이 새벽기도가 율법화 되고 형식화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분들은 새벽 기도회에 나와서 은혜 받고 말씀으로 충전하려고 하기 보다는 '누가 나왔나?'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느 권사가 안나왔구나. 어느 장로가 안나왔구나'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해서 유난히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의 영적인 재충전을 위해서 오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챙기고 그리고 비판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그런 분들은 새벽에 푹 주무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선 내 자신의 영성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내 영성이 충만해 지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 주고 중보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가 깊어지면 중보의 기도가 많아집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점점 다른 사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세계의 정세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분주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그 전갈을 들으시면서도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오히려 리드하셨습니다. 환경에, 주변에 이끌려 가시는 분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오히려 주님이 목적하신 사명을 따라 삶을 살기 원하는 주님의 그 강력한 리더쉽이 거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병을 왜 고치셨습니까? 왜 주님이 새벽에 기도하셨습니까? 왜 귀신을 내어 쫓으셨나요?

이 모든 것은 오직 한가지 목적, 전도를 위해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사막의 땅 애굽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땀흘리시고, 주님께서 기도하시고,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주님께서 어루만지신 줄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처럼 빛날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 그것은 전도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올해 여러분, 요람을 보시면 우리 교회의 전도의 목표가 나와있지요. 12제자를 삼기 운동입니다. 12명의 백성을 제자 삼는 일인데 구체적으로 대상이 나와 있어요. 3명의 어린이를 전도하는 일, 3명의 중고등부 학생을 전도하는 일, 3명의 청년 대학부를 전도하는 일, 그리고 3명의 장년들을 전도하는 일, 어른이 어린이를 전도해야 하고, 어린이가 어른도 전도해야 합니다. 12명을 올해 여러분들은 전도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평안의교회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대상의 모든 대상에 빠짐없이 전도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12명입니다. 이 12명의 전도 대상자들을 여러분들은 놓고 기도하시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여러분들의 전도의 열매가 주님 앞에 상달되기를 원합니다.

저 뒤에 가면 각 선교회별로, 속회별로 전도하신 분들에 대한 그 기록들이 나와있습니다. 이제는 한 해가 지나가도록 텅텅 비어있는 부끄러운 선교회와 속회가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이 전도하시면 여러분 속회와 여러분 선교회가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여지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이것을 위해서 왔노라'라고 사명을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사시는 주님의 모습처럼 바로 우리들도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 주의 복음을 전하므로 전도를 위해서 살기 원하시는 주의 뜻을 우리도 이루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병만 고쳐도 유명해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명은 병고치는 것이 사명이 아니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주님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귀신을 내어쫓는 일도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도 주님의 오시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병을 고치셨고, 말씀을 가르치셨고, 귀신을 내어 쫓으셨고, 연약한 자를 붙잡아 주셨고, 세워주셨고, 일으켜주셨지만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 전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건강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얼굴을 보면 모두가 다 평안하고 건강하고 아주 좋아보입니다. 그 건강을 무엇을 위해서 주로 사용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물질을 주셨습니다. 상대적이겠지만 여러분들은 적어도 옛날 임금님보다는 더 잘먹고 살고 계십니다. 우리 여성들은 옛날 그 유명했던 왕후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바르고 살고 계십니다.

주님은 또한 여러분에게 많은 재능들을 주셨어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달란트를 주셨어요. 그것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을 통해서 주님은 주님의 치료하심이 생각나기를 원하시고, 여러분들을 통해서 연약한 자를 붙들고 섬기고 세우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시고 주님이 그러셨듯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길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이 목자되신 주님을 만나는 진정으로 이 시대의 인도자들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만 바라보면 그 주님의 인도하심과 치료하심과 붙드심이 생각나야 됩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 아니라, 진정 주님의 치유하심과 붙드심과 인도하심이 생각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소유한 자, 진정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날 수 있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고 말씀하시듯 목적 의식이 분명한 사역을 하셨습니다. 왜 치료해야 하는지, 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어요.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이 시대에 평안의 성도들도 분명한 목표가 정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만 따라가면 분명히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놀라운 은혜들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셔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언제나 그 사명, 그 사명의 의한 삶을 살아가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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