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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이 비유를 알겠느뇨? (막 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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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바닷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든 것을 보시고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10절에 보면 사람들이 제자들과 더불어 비유의 말씀을 자세히 알려 주시기를 청하였고, 주님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하시며 비유를 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씨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의 말씀과 그 비유에 대한 해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씨 뿌리는 자와 겨자씨 한 알로 비유한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4가지 환경에 씨를 뿌렸다고 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마음 밭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기대하기를 길가와 같은 마음이나 돌밭이나 가시밭과 같은 상태에서 말씀을 듣기보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 밭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9절에 있는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굉장히 도전되는 말씀이지요. 귀 없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길가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 고속도로와 같이 자동차가 다니는 그런 길을 생각하기보다는 밭과 밭 사이에 난 자그마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다 보면 잘못하여 밭두렁이나 사잇길로 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다'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가와 같은 상태의 마음 밭을 주님은 '새가 와서 즉시 먹어버렸다' 고 하셨습니다.
길가와 같은 상태는 말씀을 대하기 쉬운 곳이라는 환경적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사탄으로 비유된 새가 즉시 와서 씨앗을 먹어버릴 수도 있는 약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쉽게 번 돈은 쉽게 소비한다고 말합니다. 은혜도 그런 것 같아요. 쉽게 은혜를 받으면 쉽게 쏟아버리지요. 많은 기도와 눈물이 있어서 그 말씀 하나라도 건지려고 하는 열정으로 얻어진 은혜는 쉽게 잃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의 상태를 성도로 비유한다면, 아마도 이름뿐인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명목만 있는 거지요. 그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열정과 사모함은 없습니다. 예수 안에 산다고 하지만 예수를 위해서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희생을 얘기하고 헌신을 얘기하면 제일 먼저 달아날 사람들일 것입니다.

교회가 건축을 계획하면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목회자가 제일 먼저 긴장할 거예요. 그리고 염려하며 기도합니다. '주여, 교회가 건축하는 동안 교인들이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옵소서......' 저희 교회도 3번이나 건축 과정이 있었는데 감사한 것은 건축 중에서도 계속 새가족이 등록을 하였고 선교와 봉사의 부문도 축소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봉헌까지 마친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저는 그 부분에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자기 자식은 잘못한 일로 인해 매를 들면 들수록 엄마의 품으로 기어 들어오지만, 남의 자식은 때리면 때릴수록 원망하며 멀리 달아나지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사랑하고, 내가 이 교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고난과 희생의 자리가 주어질 때 더욱 더 '이 자리가 내 자리이구나' 생각하며 다가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자세도 성도의 열정과 애정을 가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피곤해서 졸 수도 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하여 잠못 이룬 뒤의 피곤함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내 아버지 집에 왔으니까 이제는 평안히 쉬리라'며 주무신다면 어떻하겠어요?
하지만 말씀을 증거하는 입장에서는 조는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이지요. 우리 교회도 20년이 되었는데 조는 분들은 거의 습관적인 것 같아요. 피곤해서 조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습관적인 분들이 문제입니다.

과거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조는 마귀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마귀가 졸음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성도들이 생명의 말씀을 먹지 못하도록, 말씀의 자리에 가까이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하도 교인이 조니까 옆에 있는 분에게 '그 사람 좀 깨우세요' 그랬더니 옆사람을 깨우면서 '잠은 자기가 재워놓고 누구 보고 깨우래......' 그렇게 투덜대는 소리가 목사님 귀에까지 들렸답니다. 사실 설교자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조는 것을 통해서 말씀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해놓고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도록 깨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졸게 만들고 나서 뒤에서 미소를 짓습니다. '잘하고 있어. 너 잘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사람일수록 설교만 끝나면 정확하게 깬다는 것입니다. 피곤하다면 계속 주무셔야 되는데 설교만 끝나면 멀쩡한 거지요. '너 은혜 받을 시간 끝났어. 이젠 깨도 괜찮아...'


두 번째, 돌밭에 떨어진 씨를 생각해봅니다. 돌밭에 떨어진 상태를 성경은 흙이 깊지 아니함으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아지면 뿌리가 없음으로 말라버렸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는 기쁨으로 받습니다. 은혜 받았어요. 기쁨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쉽게 은혜를 버리는 것입니다.

쉽게 믿고 쉽게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런 것이지요. 아주 사소하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신앙적인 것과 결부를 시켜 시비를 일으킵니다. '어느 교인과 다투었는데 그 인간 보기 싫어서 교회 안다니겠다'든지,' 교회 와보니까 말씀도 좋고 다 좋은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다리 아파 못 다니겠다' 든지, '더워죽겠는데 선풍기 밖에 없어서 못 다니겠다' 든지, '헌금하려고 성경책에 넣어두었는데 화장실 갔다 와보니까 누가 그 헌금을 가져가 버려서 기분 나빠서 못 다니겠다' 등등....
이런 신앙 외적인 일들이 그로 하여금 말씀의 자리에서, 기쁨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만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주님은 돌밭에 떨어진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 가시밭입니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음으로 결실치 못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상태를 설명하실 때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과 정욕의 욕심 때문에 결실치 못하였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세상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세속적인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도는 성도입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함께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세상 냄새가 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성도들과 대화하면서 언어를 통해서도 그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를 가늠해 볼 수 있어요. 언어는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이 김집사, 이번 일요일날 뭐해?' 그 짧은 말속에서 우리는 아직 그가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영장 카운터에서 표를 끊으면서 '자매님, 한 달치를 끊으면 얼마인가요?' 그 한마디만 물어봐도 '목사님이신가 봐요?' 라고 물어옵니다. '왜요?' '지금 자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단 한마디의 언어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인격을 다 담아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시떨기라고 하는 것, 그것을 늘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우리가 결실치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속에는 우리의 세속적인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3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첫째가 세상 염려입니다. 온갖 세상의 근심 걱정은 자기 한 몸에 다 지고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모든 일이 걱정과 근심뿐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예'라고 하는 말, 긍정적인 말은 들어볼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부정적이고 언제나 회의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재리의 유혹이 그로 하여금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대단히 강한 유혹이지요. 물질의 유혹입니다.

요즘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있어요. 이 직장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돈을 번다고 하는 말인데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많이 도전이 돼요. 내가 가야 할 자리, 내가 섬겨야 할 그 자리에 그 돈 때문에 가지 못하고 마음뿐인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것만 아니면 벌써 가있을텐데 그 돈 때문에, 그 수입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재리의 유혹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유보시키고 있는 거예요. 믿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이 물질이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의 신앙을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주 5일 근무제가 된다고 하면 더 우리는 사실 주일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는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일에 성도들이 더 많이 출석할 거라는 기대는 사실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삶의 결단의 문제이지 환경적인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마음을 먹으면 공무원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속회를 드리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가진 자유업을 하는 사람들도 속회를 못 드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 거예요. 무엇의 차이입니까? 환경으로 보면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예배할 어떤 중요한 시간과 공간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은 그저 자기를 환경에 방임해 놓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되 말씀으로 자라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결국 우리의 욕심입니다. 우리는 환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백그라운에는 나의 욕심이 가득 나를 주관하고 있는 거예요. 내 욕심이 나로 하여금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조금 덜 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래 일한다고 많이 버나요? 제가 스위스를 가보니까 4시30분이 되니까 '이제 문 닫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급 시계를 파는 곳에 구경을 갔는데 4시30분이 되니까 주의를 주는 거예요. 곧 문 닫을 시간이 되었으니까 빨리 구경을 하고 나가라는 거예요. 그리고 5시가 되니까 우리가 구경하는 사이에 주변이 이상해서 보니까 종업원들이 하나도 없이 다 없어졌어요. 문 입구에 경비원 한 사람 빼고는 싹없어졌어요. 자기들끼리 슬며시 가버렸어요. 주인 없는 손님들만 가게에 가득 차있는 거예요. 많이 일한다고 많이 법니까? 오래 붙잡고 있다고 많이 수입이 생깁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3배나 많은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말씀의 자리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은 우리가 여기서 여러 가지 환경을 얘기합니다. '가시가 자라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욕심 때문이예요. 욕심을 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욕심인가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욕심인가요? 그것도 아니지요. 그저 내 인간적인 육신의 욕심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도 냄새가 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망에 이르는 썩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나야 합니다. 죽음 냄새가 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좋은 땅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좋은 땅이라고 하는 개념은 밭에 제대로 뿌리어진 씨를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땅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땅이라고 할 때에 얼른 우리가 생각할 때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도 중요하지요.
우리 교회도 사실 환경으로 보면 좋은 부분도 있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성전에 오기에는 이 계단이 너무나 크지요.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이 지난해 장로 수련회 하면서 몇 시간을 토론한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하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을까? 하면 어느 곳에 할 수 있을까?' 별의 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어 보았는데 결론은 좀 어렵다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래요. 저는 그 부분이 연세 드신 분들한테 제일 죄송합니다.
멀리서 차를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왔지만 차를 대려고 한 바퀴, 두 바퀴 돌다보면 마음도 상하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은 상태에서 교회를 오실 수도 있습니다. 넉넉한 주차장, 아무 때나 와도 주차할 공간이 있는 그런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식사하시고 나서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저 멀리 동산이 내다보이는 소래산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은 카페를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기도하고 있어요. 또 우리 성도들이 신앙적인 교양적인 서적들을 언제든지 와서 보거나 빌려갈 수 있는 그러한 도서실, 뭐 거창하게 도서실은 아니라도 독서실 정도라도 갖출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또 준비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또 반면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 많아요. 역곡에서 가장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앞에 공원이 있어서 교회가 탁 트이고 모든 행사들이 어린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 와서 공원과 연결되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를 찾아오는 분들은 첫 마디가 '너무나도 좋네요' 환경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20년 역사를 아시는 분들이 생각할 때 우리 평안의교회 위치는 가장 나쁜 최악이었어요. 만나는 사람들이 교회를 옮겨야 한다라고 권면할 정도로 이 지역은 최악의 장소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가지 분명한 확신은 장소도 중요하지만 환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식당이 아무리 좋은 시설이 되어 있고, 아무리 넓은 주차장 공간이 확보가 되어 있어도 텅텅 비어 있는 식당들 많이 보시지요. 환경은 그 다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저 좋은 환경을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들을 귀'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지난 10일에 서울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인 '베다니 성전'의 천장이 무너졌어요. 우리는 그 뉴스를 들으면서 우리의 마음도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어요. 2층 천장이 무너지면서 약 700여명의 중고등부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가 한 선생님이 소리침을 들&50744;습니다. '천정이 무너지고 있으니 빨리 피신하라'
2층 난간에서 그 선생님은 무너져 내리는 석고보드를 등에 받치고서 안간힘을 다 쓰고 있어요. 그동안 700명은 정신없이 빠져나갔어요. 결국 기진맥진한 그 선생님은 그 석고보드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아래층으로 같이 무너져내렸어요. 병원에 옮겼지만 6시간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는 서라벌 고등학교의 교사였던 이원형 집사님입니다. 저는 그분이 순직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 한 사람의 희생이 수많은 학생들의 생명을 살렸어요. 자기가 피신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는 당연히 피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천장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한 집사님, 한 고등부 선생님의 희생으로 인해서 수많은 생명이 생명을 얻었어요. 저는 오히려 그 교회가 그 일로 인해서 더 은혜가 되고 더 부흥의 계기가 될 줄로 생각합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그 선생님을 기리자고 하는 그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으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좋은 땅이 어디입니까? 그 선생님이 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그 선생님의 좋은 땅은 그 석고보드라고 하는 엄청난 죽음의 짐을 지는 것이 그에게는 좋은 땅이었어요. 여러분에게 있어서 좋은 땅은 어디입니까?

외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퇴근하면 그 아들을 보는 기쁨으로 그는 삶을 살았는데 어느날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그만... ' 아내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어요. 알려준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까 이미 그 아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어요. 눈물로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 방에 들어가서 아들의 여러 가지 소품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보고 있었는데 아들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의 일기장을 보다가 이 아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기장에 이런 글이 씌여져 있었어요.

'우리 아빠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면.. 하나님 우리 아빠가 예수를 믿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가 예수를 믿을 수만 있다면 제 생명을 드려도 좋아요' 아들의 일기장에 그렇게 씌여져 있었어요. 아버지는 더 이상 그 일기를 읽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아들이 다녔던 교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다녔던 교회에 성실한 신자로 신앙을 시작하며 주님을 영접한 줄 믿습니다. 이 아이가 선 땅은 좋은 땅이었어요. 그는 죽음으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이미 그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예수를 믿을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은 아깝지가 않아요......' 그 아버지가 이제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자기 아들과 같은 젊은이들을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C.C.C. 부총재인 스티븐 더글라스의 좋은 동역자로서 밀알이 된 것입니다.

좋은 땅은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다. 사실 그 좋은 땅은 알고 보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가 좋은 땅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것이니라' 저와 여러분, 오늘도 주님에게 '주님, 내가 선 자리가 좋은 땅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좋은 땅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좋은 땅이라고 하는 것은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요,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요, 좋은 땅이라고 하는 것은 곧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땅, 한 영혼이라도 건질 수 있는 땅, 그 땅이 좋은 땅인 줄 믿습니다.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좋은 땅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평안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밭이 좋은 땅이 되어 한 영혼이라고도 구원코자 아무쪼록 내가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바울처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주님 말씀하실 때 그것이 여러분에게 뿌리를 깊이 내리고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고, 여러분의 삶을 감동시켜서 또 하나의 밀알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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