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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신 들린 자의 치유 (막 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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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서울대 의과대학과 국립 서울 정신병원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의 6,1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역학조사에 의하면, 과거에 정신질환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사람들이 31.4%가 된다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그 말은 우리 국민의 ⅓ 가까운 사람들이 정신질환이라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이 사회를 진단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 치고 정신병에서 자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저를 포함해서 여러분들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아니면 가정이나 직장에서 생활을 할 뿐이지 모두가 이 부분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더 구체적인 통계를 보면, 현재 우리 나라의 알콜 중독자는 227만명에 이르고, 니코틴 중독자는 210만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니코틴 중독이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우울증이 생기며 일에 집중력이 생기지 않아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는 단계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우리가 옳바로 인식하면서 오늘 마가복음 5장에 나타난 거라사의 한 귀신 들렸던 사람의 치유과정을 통해 큰 은혜의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의 바로 앞장인 4장 후반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다가 광풍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심한 풍랑이라고 그럴 때 '미칠 광(狂)' 자를 써서 광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광풍을 만난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피곤하여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자,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꾸짖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시간을 절약하고 선용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중에 우리는 주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역 후 다른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잠깐 눈을 붙이시곤 하였는데, 그럴때 제자들이 주님의 휴식을 좀 도와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시시콜콜 주님을 의지하려하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하는 것은 웬만한 일은 담임목사가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갈 정도로 부서마다 책임감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주어진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작은 것 하나도 담임목사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않되는 시스템이라면 결코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되어지고 믿음도 꽤 있다고 생각되었던 우리가 어떤 중요한 삶의 위기를 만나면 그 믿음이 간데 온데 없어요. 그리고 방황하고 당황하고 엉뚱한 일을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위기에서 제대로 발휘할 수 있습니까?
오늘 광풍을 만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나서 광풍을 바라보고 명하셨어요. '잠잠하라' 광풍이 멎은 줄 믿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우리는 광풍에 연속해서 그 이미지를 그렇게 연결한다면 광인(狂人),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14장에 광풍을 머물게 하신, 잔잔하게 하신 주님께서 15장에 오시면서 광인을 치료하신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광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주님께서 이 미친 사람을 만나면서 제자들과 함께 그것을 치료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시면서 주님은 아마도 새로운 산 체험을 그들이 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경우에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그 가정을 방문해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지 않습니까? 말씀을 하는 사람은 목회자 한 사람이지만 거기에 함께 동참한 사람들이 다같이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심방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심방을 함께 섬기는 이들에게도 같은 은혜가 주어질 줄 믿습니다.

거라사라고 하는 데가볼리의 한 작은 마을에 주님이 가셨을 때 그 동네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한 사람이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를 권면도 해보았을 것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도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물리적으로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 보면 쇠고랑을 그에게 내어놓았지만 쇠고랑이나 쇠사슬도 끊어버리고 깨뜨려 버렸다고 했습니다. 보통 우리가 큰 힘을 가진 장사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형사들이 손목에 채우는 수갑 하나 당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쇠고랑을 채웠어도 그것을 깨드려 버리는 대단히 강력한 힘을 가진 이 사람, 주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군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군대라는 말은 헬라어로 '레기온'이라는 말인데 6,000명이 되는 군대의 집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사단의 규모입니다. 이런 집단적인 그런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의 힘을 가지고 혹은 쇠고랑을 채워도 그를 제어할 수 없어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5절에는 그가 산에서 혹은 무덤 사이에서 밤낮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어도 어느 누구 하나 그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없었어요.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이 사람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다른 외부 세력에 의해서 그가 지금 주장되고 있다고 하는, 지배받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귀신 들렸다고 하는 것은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서 그가 지배받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거라사 마을로 들어가셨을 때 그 동네에서는 누구도 그를 제어할 수 없어서 이제는 모두가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주님께서 그 마을에 들어서시자 마자 그가 멀리서 주님을 바라보고 달려와서 엎드려 절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사렛 예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시고 이 마을에서 떠나가십시오'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는데 멀리서 주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그가 달려와서 엎드려 절하면서 나사렛 예수 하나님 아들이라고 주님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이 거라사 마을은 지배하고 있으니까 이쪽은 신경쓰지 마시고 주님은 다른 동네로 가보시지요' 그런 얘기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은 더럽지요. 사람으로 하여금 옷을 벗게 만듭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무덤 사이에 거하게 만듭니다. 자기 몸을 자해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줍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인격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인생을 망가뜨려버리고 그 때문에 그의 가족과 친구와 그의 사회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귀신은 더러운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주님께서 명령하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귀신 들린 자들을 향해서 선포하는 가장 전형적인 교과서적인 선포가 되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선포할 때는 거기에 반드시 첨가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이 말씀에서 여러분, 무엇을 느낍니까? 지금 귀신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정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서 지금 나올 수 있나요? 좀 나오면 좋겠는데요? 지금 그 가정이 얼마나 어려움 당하는데 좀 사정 좀 봐주실래요?' 그런 분위기가 아니지요. 주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도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얼마나 주님을 잘 알고 있습니까? '나사렛 예수여,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마가복음 1장 34절에 보면 '주님께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어쫓을 때에 귀신이 자기를 앎으로..' 했습니다. 귀신은 너무나 정확하게 주님을 알아요.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자녀들도 알아보는 줄로 믿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에게 두려운 일이예요. 귀신이 힘을 쓰고 난리를 칠 때 여러분이 성령에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이 그 장면에 그 자리에 가셨을 때 귀신이 첫째로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고 여러분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눈동자를 아래로 내린다는 얘기는 굴복한다는 얘기입니다. 함부로 귀신 들린 곳에 가기가 쉽지 않지요.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테스트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무당이 그 맨발로 작두 위에서 날 뛸 때 여러분이 거기에 구경 삼아 갔을 때 무당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어서 굿이 되지 않으니까 당장 이 자리를 떠나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가슴을 쥐어뜯어야 해요. '나는 성령에 속해 있는 예수의 사람이 아니구나' 돼지 머리를 칼로 꽂아서 비탈길에 세워놓는 장면에서 여러분이 그 장면에 갔을 때 여전히 그가 자기의 귀신 들림에 대한 역사를 행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를 바라보는 부분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원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있는 한 귀신의 역사는 계속될 수 없기 때문이예요.

여러분이 무당에게 가서, 혹은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칠 때도 여러분이 성령에 속한 사람이면 이 점쟁이의 점이 통하지 않아요. '당신 예수 믿는 사람이지? 내가 복채 안받을테니까 빨리 가' 집사, 권사가 되어서도 가서 거기 복채 내고 점을 쳐도 점이 된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 머리를 쥐어뜯어야 합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

우리는 분명 한 세력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야 하는데 성령의 지배를 받든지, 아니면 악령의 지배를 받든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악령의 지배에서 놓임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나아가서 악령의 세력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해서 그들을 내어보내시면서 말씀합니다. '나가서 전도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마가복음 3장 15절에 보면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능력과 무기를 주셔요. 군인에게 무기를 주듯이... 여러분들이 세상을 향해 나갈 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 곧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거라사 귀신 들린 자에게 말씀합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지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예요? 정확하게 이 말씀을 보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 마귀에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귀신이 내가 들렸을 때 내가 귀신이 아니라 귀신이 나를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사탄의 세력을 향해서 주님께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님께서 이 놀라운 권세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줄 믿습니다. 자녀에게 주신 권세 중에 권세는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주님이 물으셨을 때 그가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군대입니다' 이미 군대 귀신은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멀찌감치 오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자기가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 사람과 이 마을 지배하는 그 지배에서 떠나지 않도록 주님께서 떠나기를 요청했어요. 떠날 수 있습니까? 귀신 들린 사람, 귀신을 통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은 그가 떠나기를 원한 거예요. 그는 산비탈에 돼지떼에 들어가기를 원했을 때 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2,000마리가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해서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우리가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그를 묶어도 그가 끊어 버리는 힘을 가진 그가 어떻게 예수께서 그 사람을 그렇게 제어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가?'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밤낮으로 무덤가에서 소시를 지르면서 돌로 자기의 몸을 해하던 그 사람이 얌전히 제 정신이 돌아와서 주님의 옆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크게 놀랬습니다.

주님께서 그곳을 떠나기를 원하셨을 때 배를 타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오르실 때 치료받은 그가 주님에게 요청합니다. '주님, 나도 주님과 같이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귀신 들렸다가 치료받은 그에게 같이 동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본문 말씀 19절에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저는 이 장면이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이 가정은 완전히 깨져있는 거예요. 결혼했다면 결혼생활이 깨져있는 것이고, 가정이라면 가정이 풍비 박산 나있는 거예요. 그의 동네조차도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완전히 가정이, 집안이, 마을이 지금 깨어져 있는 상황이예요. 주님께서 그를 치료하지 않았으면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의 그 모습으로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된 그에게 주님은 제일 먼저 그에게 요청하신 말씀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너를 기다리고 있는 너의 아내에게, 너의 자녀들에게, 너의 부모들에게, 너의 이웃들에게 돌아가라'고 하는 거예요. 가정을 회복시키시려는 주님의 뜻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가정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가정에게 부담이 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지요. 때때로 잘못된 교회들은 가정을 오히려 원망하고, 오히려 행복한 가정을 깨뜨려 버리는 일들을 합니다. 교회 때문에 가정이 행복하지 않고, 교회 때문에 피곤해서 못살겠다고 그러면 그 교회는 정상적인 교회가 아니지요.
주님을 따라다녀서 주님께서 그를 간증자로 세워서 '내가 거라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를 통해서 간증하게 하신다면 전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은 주님은 그가 따라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어요. '더 시급한 일은 너의 가정이 회복되어지는 거다. 너의 가정에 잃어버렸던 기쁨을 회복하고, 너의 가정에 잃어버렸던 그 안정을 다시 되찾는 일,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이라고 하는 말은 구호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두 가지 부탁 중에 '네가 마을로 돌아가거든 하나님께서 어떻게 너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 주셨는지를 그들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그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도 가능하겠지만 주님은 그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셨고, 그를 온전케 하셨고, 그의 가정과 그의 마을에 새로운 기쁨을 주신 주님이 그로 하여금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은혜 받았으면 나누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치료되었고, 회복되었고, 은혜 받았고, 축복 받았으면 그것을 여러분의 입으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그냥 간직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제가 어제 제주도에서 2월말 집회한 교회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목사님, 건강하신가요?' 얼마나 목소리가 밝은지 몰라요. '좋은 일 있습니까?' '목사님, 2월말 집회하고 나서 우리 교회가 매주일 새가족이 등록하고 있습니다' 큰 교회에서 새가족이 등록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50-60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매주 새가족이 등록한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기쁨을 여러분 아십니까? 부흥회는 부흥회 할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고 나서가 중요합니다. 부흥회하고 나서 시험든 교회가 많고요, 부흥회하고 나서 부흥되는 교회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가 정상이예요? 부흥회한 후에 부흥이 되는 교회가 그것이 정상이예요. 저도 보람이 생겨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내가 할 도리를 다했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이 귀신 들렸던 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고, 큰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면 여러분 가정과 그것을 나누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회복될 때에 진정으로 주님의 축복이 완성되는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 마을에 가서 주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실 뿐만 아니라 보내사 전도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전도인 줄 믿습니다. 땅끝까지...

오늘 우리는 P.P.M 선교센타 봉헌을 감격적인 광고를 광고시간에 드릴 것입니다. 지난해 4월에 기공예배를 드린 이후에 1년만에 봉헌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선교에 중심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뜨내기 선교가 아니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하는 선교가 아니라 중심을 가진 아시아 선교, 세계 선교의 교두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에 동참하셨고 우리는 이 일의 열매를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님의 나라를 증거하기를 원하시고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고 '네가 병이 나았으니 돌아가라' 그것으로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되었으면 은혜 받았으면 주의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줄 믿습니다.

귀신들린 자도 치료받고 건강해졌으면 이제는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감당하기를 원하셨던 주님, 오늘 우리 자신이나 혹은 우리의 모든 이웃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고통받고 사탄 마귀의 지배를 받으면서 억압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이 나가기를 선포하고, 그를 치료하고, 온전케 하셨을 때 그와 더불어서 참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평안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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