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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로운 길을 가는 당신에게 (막 06: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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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악의 축 역할을 하는 헤롯 왕은 헤롯 대왕의 아들 '안티파스'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 베들레헴의 모든 어린아이를 죽였던 학살의 주인공은 헤롯 대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서 그의 세 아들에게 각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안티파스' '아겔라오'' 빌립'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머니가 달랐기에 형제간이면서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헤롯 안티파스 역시 아버지를 본받아 외국의 공주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모가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이유로 가정의 원만함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은 자기의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가로채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헤로디아는 조카 딸이기도 하였는데 동생의 아내로 인연을 맺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아내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헤롯가의 비도덕적인 모습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이 온 땅에 드러남을 증거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며,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온전케 하시면서 주님의 이름은 온 땅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주님께서는 12제자를 세우셔서 그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온 땅에 소문이 나기시작하였고 주님의 사역 소식은 헤롯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헤롯이 생각합니다. '이러한 능력과 권세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인데, 아무래도 우리가 얼마 전에 죽였던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17절 이하의 말씀은 헤롯이 저질렀던 세례요한 처형 사건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롯 왕가의 잘못된 처신을 알면서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로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사두개인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헤롯 왕의 잘못을 책망하거나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지적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실과 적당한 선에서 절충해 가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권위를 유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분명 종교지도자였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세례 요한이 헤롯의 잘못됨을 찾아가서 지적했습니다. '당신의 조카딸이며 동생의 아내가 되는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의 이 지적을 달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그는 세례 요한을 당대의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겼고 그래서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면 마음에 번민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달게 여겼다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이 헤롯 안티파에게 남아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헌정사를 보면, 초대 대통령부터 오늘의 대통령까지 한 분도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거나 존경을 받으면서 퇴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대했던 지금의 대통령도 또 가슴아픈 결과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 감옥에 수감되는 장면을 보았고 대통령 내외도 텔레비젼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어머니 이여사는 원로 장로이고 아버지는 천주교 신자임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오후, 아주 충격적인 신문 사설 하나를 보았습니다. 지방 신문이었는데 사설 제목이 뭐냐 하면 '홍걸씨 사건에 웬 성경?' 이었습니다. 저는 그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단숨에 읽어보았습니다. 내용은 이런것이었습니다. '지금 온 국민에게 지탄을 받는 부정한 짓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주제에 무슨 성경을 보며 위로를 받으며, 부모와 자식간에 성경을 주고 받느냐?' 는 것입니다. 정말 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읽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었다면 왜 평소에 바른길을 가지않았으며, 혹 잘못된 길을 갔을지라도 믿음의 가족과 지체들이 바로잡아주지 못하고 이제와서 법석을 떠는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심각한 도전이 됩니다. 아마 그 사설을 쓴 분은 논조로 보아서 크리스챤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그를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너희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교훈이 생각납니다. '나는 하늘에 나는 새를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자신을 향한 분명한 의지와 절제가 있다면 자기의 삶의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삶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회적인 구조와 환경 때문에 얽히고 &49445;혀서 고구마 줄기에 고구마가 줄줄이 끌려나오듯이, 부정과 부패의 스캔들이 연속되는 이 시대의 흐름과 같이, 여러분의 삶도 그와 닮은 꼴은 아니지요? 아니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벗어버리고 단호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부심과 순결함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실 이 안티파스에게도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씀으로 잘못된 삶을 지적했을 때 번민하면서도 달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가 좋아서 아내를 삼았던 조카 딸이자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가 문제였습니다. 바른 말을 하는 세례 요한을 원수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세례 요한을 죽이려고 계획을 꾸몄습니다. 남편 안티바스가 생일잔치에 수많은 귀인들을 초대했을 때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딸에게 말합니다. '분명히 너희 아버지가 흥이 오르면 이러이러한 약속을 너에게 할것이다. 그때 이렇게 얘기해라' 그리고 헤로디아는 어린 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시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고 해라........'

잔치가 무르익어가자 헤롯의 딸이 등장하여 멋진 춤을 추어 흥을 돋았습니다. 아버지인 안티파스는 어린 딸에게 제안합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요구하면 들어주마' 아마 이런 생각이었겠지요? 우리로 말하면 보통 때는10만원 짜리 장난감 사달라면 비싸서 못 사주었는데 오늘은 아빠 기분 좋으니까 좀 비싼 거 얘기해도 사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딸이 사람들 앞에서 불쑥 내놓은 제안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빠, 세례 요한의 목을 주세요....' 헤롯은 그말이 아내 헤로디아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헤롯이 고민합니다. '이게 아닌데... 세례 요한은 내게 있어서 정말로 양심을 깨워주는 이 시대의 의로운 사람인데....' 하지만 결국 헤롯 안티파스도 자신의 정욕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세운 왕으로서의 체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때로 여러분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체면 때문은 아닌지요? 성전에 들어오면서 '주님, 제가 주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나옵니다'라는 자세로 나오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대우받던 그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그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지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사의 중견간부를 전도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가고는 싶은데요 그 교회는 못 갑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는 우리 회사 부하 직원들이 많이 다니고 있기 때문에 과장인 제가 어떻게 창피하게 갑니까?' 자기 부하 직원과 어떻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냐는 말이지요. 과장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내노라 하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자세는 어떠하겠습니까? 체면이 사람을 잡는 거예요. 체면이 세례요한의 생명을 앗아갔고 한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한 것입니다. 지금 이 헤롯 안티파스가 '이건 아니다'라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세례 요한은 죽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도 그 일을 계기로 하여 자신의 잘못된 삶을 정리하는 축복의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18년 전에 우리 교회가 교회학교 교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교육적 사명과 비젼을 보다 분명히 감당하기 위해 제정한 교사주일입니다. 18번째 모범교사가 선정이 되었고, 10년 근속한 교사와 성가대원들이 제주도 왕복항공권과 호텔숙박권을 부부가 수상하는 뜻깊은 시간이 있습니다. 부부를 표창한 뜻은 교사 혼자서 아무리 충성하려해도 배우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배우자의 공로도 50%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학부모님들, 선생님들에게 선물 좀 하셨나요? 유치부에서 청년부까지...... 여러분의 자녀들을 맡아 수고하는 선생님들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작은 사랑의 선물은 그들로 하여금 자긍심과 기쁨을 갑절이나 느끼게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비량으로 봉사하는 그들이기에 교사들의 헌신은 더욱 빛이 나는 줄 믿습니다.

교육의 아버지라고 하는 '페스탈로찌'는 모든 교육의 첫 출발은 가정에서, 그러므로 최초의 교사는 부모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교사인 줄 믿습니다. 기독교교육 교사요,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할 삶의 교사인 줄 믿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교무실이나 교정에서 담배를 뻐금뻐금 피우는 것을 보면서 저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본이 되지 않으면 교육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최근 모든 학교가 금연구역으로 지정이 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 우리 교사들은 가르치는 것보다 보여주는 삶이 중요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말씀처럼, 교사나 부모들의 권위는 보여주는 인격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네바의 양심' 이라고 불리웠던 중세 종교개혁 지도자 존 칼빈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힘도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이나 경험이 아닌 인격에서 우러나온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휘청거리는 이유는 한가지라고 봅니다. 그것은 지도자들의 도덕적 수준이 일반 시민들보다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를 왜 살기좋은 사회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사실 환경이나 인종문제, 가정문제등은 우리보다 심각한 수준입니다만, 그러한 나라들을 살기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도층의 엄격한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유지되기 때문이라는데 모두가 동의합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부정과 부패로 인한 사회적 혼란, 아르헨티나 메넴정권의 부정과 부패로 인한 경제적 혼란, 그리고 이 땅에서의 대통령 일가의 부정과 부패로 인한 혼란은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지도층의 윤리적, 역사적 의식의 부재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정말 별처럼 깨끗한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그들 사회속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상원의원 후보가 되려면, 어린 학생시절의 생활부터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평범한 시민으로 살려면 무슨 짓을 하고 살아도 용서할 수 있지만, 지도자가 되려면 달라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길을 가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길은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자신의 유익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세례요한과 같은 양심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체면이나 정욕에 인격과 미래를 팔아먹을 헤롯이 아닌, 진정으로 민족과 교회를 사랑하는 의의 지도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진정으로 원하시는 그 길을 선한 양심을 가지고 말씀의 지혜로 이 세상을 리드하며, 어둔 세상의 등불처럼 의의 길을 걸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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