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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을 선택하는 지혜 (막 0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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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의 관심은 '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엊그제 뉴스에서 모든 은행들이 주 5일제 근무를 7월부터 시작한다는 발표가 있자, 우리 사회도 서구인들의 삶의 질에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과 지혜롭게 일한다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얼마 전, 2박3일의 휴가를 돈으로 환산해 지불할테니 대신 근무하겠느냐는 제의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돈을 받지 않고 가족들과 쉬겠노라고 하는 그런 결정을 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의 의식도 '안식'의 중요성에 대하여 어느정도 자리 매김을 한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안식을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제자들이 가버나움 지역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면서 병든 자를 고칠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어쫓는 등 큰 기적과 역사가 있자, 그들은 감격하여 주님께로 돌아와 낱낱이 보고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12제자 중에 아마도 베드로부터 보고했을 것입니다. '주님, 들어보십시요. 제가 이렇게 증거 했더니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드레가 보고합니다. '주님, 귀신 들린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쫓았더니 물러갔습니다' 야고보도 보고했을 것입니다. ' 주님,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기도했더니 병든 자가 치유함을 입어 강건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의 사역을 하고 돌아온 주의 제자들의 그 감격스러운 보고의 시간이 계속되는 중에 주님께서 갑자기 보고를 중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 쉼이 필요한 것 같으니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쉬라' 고 안식을 명하셨습니다. 사실 본문 말씀에 보아도 제자들은 제 때에 음식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했습니다.

과거,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는 식사시간이 따로 없었습니다. 때가 됐다 싶으면 식사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아까와 중국집에 짜장면 한 그릇 배달 시킨 뒤, 사업장 한 구석에서 그것도 2-3분 만에 먹어 치우고 입을 닦으면서 사업장으로 들어오지요. 그리고 또 열심히 일을 하면 주인이 뒤에서 물꾸러미 바라보면서 흐뭇해합니다. '열심이야. 저렇게 열심이니 내맘에 들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직도 그런 직원을 보면서 '정말 김 대리는 열심이야. 맘에 들어....' 한다면 곤란합니다. 반면에 스스로 '나는 정말 열심이야. 나는 식사시간도 아껴가며 내 일에 충실하고 있어'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임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저희교회가 제3차 평신도지도자 성지순례를 소아시아로 갈 때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선용할 수 있었습니다만, 90년대 초반에는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회자들 조차 그렇지 못했습니다. 로마 시내에서 점심시간이 되어 버스 기사와 약속하기를 1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기왕에 이탈리아에 왔으니 그 유명한 스파게티를 먹자면서 근사한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주문하기가 무섭게 빨리 안주느냐며 마치 백화점 분식코너에서 주문하듯 재촉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얼마후, 보기에도 멋진 스파게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것을 먹는데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별루라느니, 괜찮다느니 하면서 우리는 입을 닦으며 레스토랑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태우고 온 관광버스는 굳게 잠겨 있었고 기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거의 50분을 서서 기다렸어요. 정확하게 1시간이 지나서야 기사가 도착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항의하듯 물었습니다. '왜 늦게 왔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늦게 온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너무 일찍 나온 것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었는지 몰라요. 주어진 1시간 동안의 식사시간에 그 멋있는 레스토랑에서 서로 여행에 대한 느낌을 나누면서 충분히 쉬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쉼을 옳바르게 선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리 대부분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모든 직원들이 가게 문을 잠그고 나갔다가 점심시간을 마치고 돌어와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 일이 이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아야 합니다. 직원을 두고 사업을 하시는 분이나, 여러분 자신 스스로가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서는 사실상 21세기를 적응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정부나 노동조합에서는 주5일 근무제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고, 경영자연합회 측에서는 시기상조라며 설왕설래가 있긴 하지만 주 5일 근무라는 시대적 큰 흐름을 역류시키기는 어려울듯 보입니다.

'신한국인'이라는 책을 쓰신 '이어령'박사는 과거의 한국인과 현대의 한국인을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과거의 한국인이 기다림에 익숙한 세대라면, 현대의 한국인은 기다릴 줄 모르는 세대, 그래서 '빨리 빨리'라는 말이 대표되는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밥을 짓고도 나아가 뜸을 들일줄 알았던 세대와 라면을 끓여 얼른 먹고마는 '패스트푸드'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는 세대간의 정서를 이렇게 비교하여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과거의 정서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였다면, 요즘의 정서는 '엄마야 누나야 간편 살자'라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제자들의 전도의 열정과 기적의 감동적인 보고를 들으시다가 그것을 멈추게 하시고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지도자로서의 주님이 판단하셨을 때 동역자인 제자들에게 안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왕 쉬려면 아예 배를 타고 이곳을 떠나서 쉬라고 하셨어요.

성도 여러분, 우리 아빠들이 하루를 쉰다고 집에 계시면 쉼이 제대로 되나요? 할 일이 더 많지요. '차라리 오늘 회사 가는 것이 나을 뻔했어' 아마 그런 말이 나올 지 모릅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집안일 때문에 제대로 쉼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쉴때는 떠나야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쉬라고 하시면서 배를 타고 떠나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이해합니다. 멋있는 주님이지요. 벌써 2000년 전에 쉼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쉬어야 하는가를 이미 알고 계셨던 주님이셨습니다. 그 당시에 배를 타고 떠난다는 말은, 요즘으로 말하면 자동차나 기차 등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이 필요할 때 삶의 자리를 잠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성경에서 안식이라고 하는 표현은 창세기 2장에 제일 먼저 나와 있어요. 거기에 놀라운 표현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7일째 쉬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번 질문해 보지요. 우리 하나님을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무슨 쉼이 필요하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슨 쉼이 필요하십니까? 이건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이렇게 이해했어요. 우리는 그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지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마지막으로 지으신 후에 안식하셨다고 하는 것은 곧 오늘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당신의 삶을 본받기를 원하셔서 모델 케이스가 되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분이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쉼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하는 것이지요. 모범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도자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똑같이 일을 합니다. 일꾼을 3-4명 데리고 일을 합니다. '나는 건강해요. 나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2-3시간 일을 해도 끄떡없어요' 그렇다고 2-3시간 곡괭이질 하고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을 생각해야지요. 그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그들을 위해서 1시간 일하고 10분은 쉬어주는 지혜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좀 쉬시지요' '나는 아직 멀쩡한데 쉬자고?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사람을 부릴 자격이 없는 거예요. 지도자가 될 마인드가 없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당신 중심이 아니라 일하는 일꾼 중심으로 주님은 쉼을 말씀하셨고 쉼을 명령하셨어요. '너희들 쉬어야 되겠다'

두 사람이 숲속에서 도끼로 나무를 찍는 일을 합니다. 한 사람은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정말 주인이 보기에도 열심히 했어요. 반면에 또 한 사람은 한 두 시간 정도 일하고는 또 쉬고, 또 두 시간쯤 일하고는 또 쉬고, 여러 차례를 쉬었어요.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그 일꾼이 쉬는 사람을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 저렇게 자주 쉬어 가지고 무슨 일을 하나?' 그리고 일이 마쳤습니다.

주인이 와서 보니까 한 두 시간씩 일하고 쉰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나무를 찍었어요. 종일토록 땀 흘리며 쉬지 않고 일한 사람이 묻습니다. '아니 나는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토록 일했는데 어찌 당신이 더 많이 일을 했습니까?' 쉬면서 일했던 사람이 말합니다. '나는 쉬는 동안에 도끼 날을 베르고 있었지요' 쉰다고 하는 것과 논다고 하는 개념이 정리가 안된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가 이해가 안될 거예요. 쉬는 시간은 재충전하는 시간입니다. 도끼를 써야 할 일꾼이 쉬는 시간은 도끼 날을 다시 베르는 시간이예요. 도끼 날을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일에 능률이 있었고, 열심히 일했다고 하지만 그는 일의 능력이 없었어요.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쉬기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재충전을 주님이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쉼이 없는 우리의 일, 쉼이 없는 우리의 삶은 곧 탈진할 것이 뻔합니다. 한번 탈진하면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우리 목회자 세계에서도 40-50대에 쓰러진 분들이 많아요. 간경화로, 황달로, 혹은 여러 가지 당뇨로 오는 합병증으로.. 이번에 우리 지난 감리사님도 과로로 인해서 감리사직까지 사임을 했잖아요. 그리고 목회도 못하고 나머지 1년간 안식을 억지로 하게 되었어요. 그냥 앞서서 교회가 '목사님, 안식년을 좀 하시지요'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큰 병이 들고, 눈을 수술하고, 간에 대해서 심각한 병에 대한 진단이 있고 '당신 더 이상 일을 하면 큰일 난다'는 경고를 받고서야 감리사직도 내어놓고, 담임목사직도 내어놓고 지금 억지로 안식년을 하고 계십니다. 본인이야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지혜로웠다면 그분을 좀 쉬게 해드렸어야 하는 거예요. 많은 분들을 보니까 한번 쓰러지고 나서 안식년을 하고 무슨 치료를 하고 법석을 떨어도 한번 쓰러진 분들을 보니까 죄송한 표현이지만 얼굴에 생기가 없어요.

제가 존경하는 서울의 선배 목사님 한 분도 너무 너무 훌륭하신 분인데 한번 쓰러지고 나서 강원도에서 1년을 안식을 하셨는데 이제는 설교도 하시고 일상생활을 하시지만 참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분을 뵈니까 눈동자에 생기가 없어요. 그전에는 그분 눈을 보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강한 흡인력이 있었는데 눈동자에 생기가 없어졌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야, 가장 중요한 생기를 잃어버렸구나' 치료되면 뭐합니까? 목회자에게서 생명과 같은 그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회복되면 뭐해요.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쉼이라고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 장로님들도 쉼이라고 하는 것을 잘 모르는 분들인데 너무 열심히 일만 하시고 작년에 비로소 장로수련회를 갖기를 제가 원했고, 제가 동남아의 한 곳을 가기를 원했는데 교인들에게 미안해서 그러셨는지 가긴 가되 국내로 갔으면 그러셔서 작년에 제주도로 갔어요. 사실 제주도나 동남 아시아는 이제 여행 경비가 거의 비슷합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는 외국에 간다고 그러면 굉장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외국에 가는 것을 옆집 가듯이 해요.
이제 우리도 세계화, 세계화 그럽니다 만은 이 사고의 세계화가 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생각이 넓어져야 됩니다. 올해는 우리 장로님들, 좀 더 좋은 곳으로 수련회를 모시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이제 가능하면 우리 교역자들도 교회 안에서 지방 교육자 수양회가 있기는 합니다 만은 '우리 교역자들도 자체적으로 수련회를 해야 되겠다' 왜? '그냥 쉬기는 어려우니까 '교육자 수양회'해서 명분을 만들어서 쉬게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져요.

우리 교회만 해도 이제는 안식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어요. 여러분 가정 주일을 한 달에 한번씩 갖는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오래 전에 여러분에게 그런 제안을 드렸고 장로님들에게도 그런 제안을 해서 처음에는 '교인들이 좀 부정적이지 않을까요?' 염려해서 1년을 늦추고 작년에 다시 한번 의논해서 만장일치로 다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회에서 통과를 보아서 올해부터 매달 한번씩 가정 주일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저녁예배를 2-3시로 옮겨서 오후 예배 드린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거예요. 출발점이 다른 것입니다. 저녁의 예배는 충실하게 정말 충실하게,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주어지는 가정 주일은 정말 여러분 가족이나 선교회가 삼삼오오 정말 은혜롭게 여러분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도 시내산선교회를 통해서 소래산 등반이 있는데 저는 이 소래산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어요. 교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참석은 자유이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어린아이들까지 다 삼삼오오 손을 잡고 등반을 하는 그런 시간들, 좋은 시간을 선용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교회를 주시고, 이러한 생각들을 주시고, 이러한 계획들을 주신 것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말씀합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신다.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신다' 많은 것을 주어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도 점점 커지는 줄 믿습니다.

시편 50편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동기와 여러분의 모든 삶의 출발점은 언제나 감사이어야 합니다. 오늘 나로 하여금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 오늘 나로 하여금 직장을 다니게 하신 하나님, 오늘 나로 하여금 공부하게 하신 하나님, 오늘 나로 하여금 건강을 주신 하나님, 오늘 나로 하여금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 모든 것이 감사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백합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

무엇이 불평이 되고, 무엇이 원망이 되겠어요. 감사가 동기가 되면... 오늘 이 감사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 찬송의 고백처럼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감사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그 안식을 향한 명령,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배를 타고 가서 쉬어라' 스스로는 제자들 스스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실은 지혜로운 것입니다. 왜? 재충전을 한, 충분히 쉼을 가진 그 제자들은 다시금 가르침과 병고침과 천국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그들이 더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고, 우리에게 삶의 탈진을 예방하고, 우리의 지금까지의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쉼을 우리가 선용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사역도 더욱 새 힘을 얻을 줄 믿습니다. 쉼은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여행하는 방법입니다. 개인이 여행하는 것도 좋아요. 가족이 여행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에는 부부가 여행하는 시간,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 뒤돌아보세요. 부부가 정말 오붓하게 여행할 시간을 여러분 가지고 계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10년 근속한 분에게 제주도 부부 여행을 가시라고 하는 것도 억지로라도 제가 시간을 내서 가시도록 돈을 드리지 않고 그 여행 티켓을 드리려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어요.

쉼의 방법에는 충분한 수면도 중요합니다. '정말 하루종일 마음껏 잠 좀 자봤으면..' 그런 분들 계시지요. 그런 분들에게는 수면이 제일 좋은 쉼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목욕하는 방법도 좋은 쉼의 방법이예요. 우리 목회자들에게 쉬는 방법이 다른 것은 없어요. 유일하게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는 것, 그것 밖에는 우리 목회자에게는 쉬는 방법이 없어요. 등산을 하는 방법도 좋은 쉼의 방법입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늘 혼자 등산을 가는데 혼자서 비가 오는 날, 그분이 그래요. '목사님, 비가 오는 날 우비를 뒤집어쓰고 그리고 등산 장비를 갖추고 설악산 대청봉을 혼자 올라가는 맛을 아시나요?' '저는 모르는데요' '후득 후두둑 후둑' '그 우비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묵묵히 설악산 대청봉을 저녁에 설악산을 가서 하룻밤 자고 새벽 5시에 대청봉을 올라가는 그 기분, 목사님! 이건 안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제가 짐작을 해보았어요. 혼자서 비를 맞으면서 우비를 쓰고 그 새벽에 대청봉을 올라가는 기분이 어떨까? 멋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목회자라면 목회를 위해서 그달의 목회를 다음의 목회를 위해서 적어도 7-8시간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 시간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많은 생각에 잠길 거예요. 그분은 그런 모습으로 자기를 재충전하는 일을 매주 월요일이면 그렇게 하신다고 그래요. 멋있는 재충전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나름대로 재충전의 노하우를 가지셔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선용할 수 있는 좋은 안식의 방법들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정에서, 여러분의 일터에서 더 멋있고, 더 능률적이고,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 방송의 한 인터뷰에서 주5일 근무를 벌써 2년 전에 시작했던 직원과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주5일 근무를 하니까 더 시간에 대해서 아끼는 마음이 들고 일에 능률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길목에 왜 휴식이 필요할까? 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휴식이 필요할까? 충성된 주의 제자들도 쉼을 필요로 하셨고, 주님조차 당신께서 우리를 향해서 쉼의 모범이 되어주신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가 좀 더 나은 사역과 열매를 위해서 안식을 선택하는 지혜를 갖고 여러분의 삶을 살아가시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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