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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막 08: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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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께서 6장에 '오병이어'와 8장의 '칠병이어'의 엄청난 기적을 베푸신 후에 제자들이 서로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들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라고 권면하였을 때 그들이 서로 모여서 하는 말이 '우리에게 떡이 없도다'라고 그들은 전혀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무척 답답해 하셨고 주님께서 17절에서 하신 말씀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리고 주님께서 조금 그들에게 심한 말을 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둔하냐?' 이 말은 좀 우리말로 풀어서 한다면 '이 답답한 친구들아!' 그런 뜻일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것으로만 적용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주님은 무척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것도 바로 직전에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라고 하는 엄청난 기적의 현장에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들은 그 '오병이어'와 '칠병이어'가 주는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그저 눈앞에 떡이 없음을 염려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주님은 더구나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대상이었던 오천명과 사천명에는 사실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어요.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렇게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주님의 역사의 주인공들로서 주님이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주님이 기대하셨을까요? 당연히 훈련되고 준비되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조차 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떡이 없습니다'하면서 근심하고 염려하였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이렇게 주먹으로 머리통이라도 쥐어박고 싶었을 거예요. '이 답답한 친구들아! 지금 내가 그 기적을 이룬 의미도 모르겠느냐?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이 말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15절에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을 때 누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누룩이란 술이나 빵을 만들 때 사용되는 것이고 그것은 밀가루를 부풀게 만들어주는 곧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누룩에 대한 예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으로 사용된 적이 있는데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누룩의 영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지만 아주 작지만 주변에 영향력을 강하게 미칠 수 있는 누룩을 주의하라'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그 누룩은 바리새인과 헤롯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외형적으로는 신앙적으로 틀을 가진, 전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너희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지니라' 경건의 모양도 중요하지만 경건의 내용, 경건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경건의 내용은 포기하고 경건의 모양만을 늘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속은 썩어져 가고 있는데 겉은 여전히 깨끗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바리새인들의 영향력은 당시 사회에 대단히 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 영향력은 은혜로운 것이 아니요, 경건의 능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요, 외식적인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것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헤롯 왕가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흔히 헤롯 왕을 로마의 분봉왕이라고 하는데 왕에 의해서 황제가 왕을 임명해 주는 국민에 의해서 존경 받아진 왕이 아니라 로마의 황제에 의해서 임명되어진 그런 왕인데 그 분봉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로마의 황제에게 많은 뇌물을 받쳐야 했습니다. 로마의 원로원들에게도 수없이 많은 뇌물을 받쳐야만 자기의 자리가 유지되는 그러한 모습이었어요.

당연히 헤롯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없이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세금으로 인하여 많은 원성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많은 비리와 부정이 저질러졌어요. 뇌물을 즐겨하고 물질의 탐욕을 즐겨하며 그것으로 분봉왕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했던 헤롯 왕가였습니다.

그 헤롯 왕가와 결탁하여 권력을 유지하던 한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사두개인입니다. 어용 종교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그들은 현실 정치와 결탁을 해서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에 가장 앞장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대에 잘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실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년대에 유행했던 상황윤리가 아마도 그들에게는 제일 반가운 윤리의식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그들에게 있어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러한 그들의 삶의 도구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은 분봉왕 헤롯 일가와 그들은 결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언제나 그들에게는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정치의 눈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신앙의 길을 어둡게 하고 굳게 한다면 이것은 결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와는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본'이라고 말씀했던 내용을 기억합니다. 왜 그랬을까?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랑의 대상은 유일합니다. 인격을 가진 존재여야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남편,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자녀, 여러분의 부모, 여러분의 형제 자매와 같은 인격을 가진 이들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돈은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돈을 사랑함으로서 가지는 수없이 많은 불행들을 우리는 바라봅니다. 왜? 그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돈은 우리에게 있어서 관리의 대상입니다. 잘 관리해야 합니다. 지혜롭게 관리해야 합니다. 규모있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관리의 대상인 돈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날 가정이 행복해지고, 부부가 불행해지면서 가정의 행복이 빼앗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펄벅 여사의 '대지'에 보면 그 부부가 어느날 도시에 가서 돈을 벌고 돌아와서 남편의 사랑이 점점 떠나면서 그 아내가 이렇게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옛날이 좋았는데...' 돈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그들의 행복을 보태주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을 그 소설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거예요.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그것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사람에 의해서 가정이 깨지고, 행복이 깨지는 그런 현장들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는 말씀의 속에는 그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모습을 포기하고 물질과 결탁하고 부정과 부패에 길들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가 그들의 영향력에서 주의하고 깨어있기를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의 주위에서 무너져 가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결국은 물질입니다. 결국은 돈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일시적으로 세워주고, 그들을 일시적으로 크게 만들어 주었지만 결국은 뿌리째 그들을 뽑아내면서 그들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는 교훈 받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으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신앙의 사람으로서의 신앙스러움을 여러분들이 표현하지 못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와 그 자부심을 누리지 못하고 늘 초조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자녀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이 질문을 여러분 기억하시면서 '내가 떡 5개를 오천명에게 떼어줄 때에 몇 바구니를 거두었으며, 7개로 사천명에게 떼어줄 때에 몇 바구니가 남았느냐'라고 주님이 그들에게 반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두 광주리가 남았나이다. 일곱 광주리가 남았나이다' 아직도 그들은 기억하고 있지만 의미는 모르고 있었어요. 역사의 현장에 기적의 현장에 있었지만 그들은 그 기적이 주는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답답해 하셨어요. '너의 마음이 둔하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에게는 많은 군중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는 수많은 군중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 한 사람,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뜻을 내가 말씀을 바로 깨닫고 행함으로서 나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이루어져 갈 때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열두 광주리가 남았거나 일곱 광주리가 남았거나, 혹은 오천명을 먹였거나 사천명을 먹였거나 이런 숫자와 의미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리고 부족한 중에서도 그들에게 주님 은혜 베푸시기를 원했고, 더구나 제자들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200데나리온의 돈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말했을 때에 주님은 '너희들이 먹을 주라'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오늘날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먼저 주님을 영접한 우리들이 이 사회를 향해서 섬김의 의무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가 샬롬 복지센타를 우리가 많은 돈을 들여서 우리가 준비하고 그것을 통하여서 수익사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향해서, 이 지역을 향해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의 빛을 섬기고 갚겠다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왜 그것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에 우리가 분명한 동기가 우리가 분명치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 일에 동참하지도, 그 일을 감당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바로 당신의 제자들,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지금 이 시대를 사람들은 물질만능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역시 돈이 좋아' 그러나 그 위력을 발휘하는 돈도 분명한 것은 사랑의 대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사랑하는 순간 남편과 아내를 잃을 것이고, 가정을 잃을 것이고, 결국은 믿음도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헤롯의 누룩들, 수많은 바리새인의 누룩들이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끼쳐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향력에 알게 모르게 묻어 가면서 우리는 그들의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그리고 외식주의에 길들여져 가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보고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지 않는 한 이런 세상의 누룩과 같은 부정적 영향력에 결국 우리는 포위되고 말 것이고, 결국은 삼손과 같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그 힘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상 우상숭배자들 앞에서 apt돌을 돌려야만 하는 수치를 우리는 감당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우리에게 다가올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합니다. '깨어라. 깨어있어야 한다' 세상의 누룩이 우리에게 스며들고 우리에게 영향력을 끼치려 할 때 너희는 이 누룩을 주의하고 이 누룩을 경계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정적 영향력을 끼쳐가는 세상을 향해 여러분의 믿음과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이 세상을 향해서 보여주기를 원하는 주님의 그 뜻을 말씀을 통해 기억하며 실천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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