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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가진 것이 없어도 더 행복해진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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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좀 내려 주세요.'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택시를 세웠다. 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던 택시가 멈췄다. 단지는 무척 넓어서 눈 가는 데까지 아득히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건물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문마다 밝은 빛을 내뿜고 있어서 마치 밤하늘에 뿌려진 별무리같았다.

“몇 동이신지 집 앞까지 가시죠.”

아까 종로에서 택시를 잡아 날 태우며 친구가 실제 요금의 두 배 이상되는 액수의 차비를 대신 준 탓인지 운전사는 친절하려고 애썼다.

오는 도중에도 내가 “운전면허 따서 이렇게 택시를 운전할 수 있게 되려면 한참 걸리겠죠?”하고 묻는 말에, “그러믄요” 한 마디로 대답해 버려도 그만일 텐데 운전사는 운전 교습기간 동안의 요령, 면허시험 볼 때의 요령, 주행 수련기간의 필요성과 그에 드는 비용 등을 친절하고 세세히 대답해 주었다.

운전을 배워 택시운전사가 되는 게 지금 처지로서는 가장 확실한 취업의 방법일 것 같다고 난 생각했었다.

“됐어요. 여기서 걸어가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식구가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은 단지의 정문에서 15분 쯤 걸어야 하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택시로 그 건물의 현관 앞까지 갔어야만 옳았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가 태워 준 택시라지만 택시로 집 앞에 도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우리 집안 형편을 뻔히 알고 있는 수위나 다른 누군가가 오해를 할 것 같아 일부러 멀리 정문에서 내린 것이다.

작년 이맘 때 쯤 나는 대학 졸업 후 15년 청춘을 다 바쳐 일한 신문사에서 해고되었다. 적잖은 액수의 퇴직금을 받긴 했지만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의 위 수술 비용을 대고, 나머지로 몇 달 생활하고 나니 빈털털이가 되어 버렸다.

출판사를 차린 친구들이 도와 주는 뜻으로 번역 일거리를 주었지만 그것도 항상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가는 정신없이 뛰어오르고 수입은 없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사이에 이웃 집과 아파트 단지 앞 식품 가게에까지 한푼 두푼 빚만 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매달 내야 하는 아파트의 관리비가 석 달째 밀리게 되자 관리실에서 직원이 나와 전기를 끊어 버렸다. 바로 어저께의 일이었다. 앞으로 일 주일 내에 관리비를 완불하지 않으면 수도마저 끊겠다는 것이었다.

전기가 끊기고 보니 죽음같은 침울한 어둠 밑바닥으로 우리 집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젠 가동되지 않는 냉장고 속의 음식물이 당장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오후 다섯 시면 시작하는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를 기다리는 재미로만 살고 있는 듯한 아이들은 시간이 되어도 켜지지 않는 텔레비전 앞에서 “아참, 전기가 끊어졌지.” 하고 억지로 참는 표정이 처참했다. 밤이 되어 어둠에 싸이게 되자 양초를 몇 개 찾아내 불을 밝혀 놓고, 그 작고 답답한 불빛 밑에서 아이들은 숙제를 했고, 아내는 설거지를 했고, 난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새로 맡은 일거리를 위해 영한사전을 뒤적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캄캄하고 답답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전기불이 있어 집안이 밝은 동안엔 비록 당장 버스값이 없을지라도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내일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착각이라도 하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캄캄한 어둠과 맞닥뜨리고 보니 난 도대체 여태껏 뭘 하고 살아 왔던가 하는 인생 전체에 대한 회의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나만을 믿고 살아가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돗물을 소리나게 틀어 놓고 울기도 했었다.

우리 식구를 굶겨 죽이려는구나 하고 회사를 원망하다가 그러다가 지금 내 능력이 우리나라 경제형편에선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전등불도 사용해선 안 되고 촛불을 간신히 허용하는 그 정도의 중요성밖에 없는가 보다 라고 하는 깨우침 비슷한 생각에 잠겨들곤 했다.

하지만, 난 수돗물 틀어 놓은 캄캄한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울면서 이내 ‘참자. 참고 우선 가진 것을 탈탈 털어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을 가려 쓸 수 없는 것은 버리고 쓸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새출발해야 한다’ 그런 결론에 이르렀었다. 그러자 마음이 평안해지고 두려움도 절망도 사라졌다.

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 앞에 다다라 9층을 올려다 보았다. 모든 창문들이 밝은 불빛을 쏟아내고 있는 중에 우리 집 창문들만 캄캄하게 숨죽이고 있었다. 아니, 눈물로 흐려지는 눈에도 유리창을 간신히 통과하고 있는 불그레한 촛불의 작은 빛은 있었다. 가족들이 보내는 생명의 신호같아서 난 반가왔다. 살아 있다는 것을 이토록 기뻐해 본 적이 전에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일초라도 어서 가족들이 보고 싶어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하여 걸어갔다. 문을 열어 주는 아내가, 그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 주고 남편을 기다려 준 아내가 그토록 든든해 보인 적도 이전엔 없었던 것 같다.

“늦어서 미안해. 친구녀석이 어찌나 잡아끄는지 말이야. 애들은?”

촛불 하나만 동그마니 켜져 있는 어두운 거실엔 “아빠!” 하고 외치며 달려나와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요.”
“벌써 자?”
“이제부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대요. 애들이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어요. 햇빛이 있을 때 숙제해 버리겠다구 학교에서 오자마자 숙제를 해치우고요, 아까 해질 녘에는 창가에 앉아서 아, 햇빛이 이렇게 고마운 줄 처음 알았다면서 해지는 걸 그렇게 안타까와 할 수 없었어요. 앞으론 해 지면 자고 새벽에 동틀 때 일어나겠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이제 겨우 큰애가 열한 살, 작은애가 여덟 살이었다.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중에서도 내 가슴은 알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찌하여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전기불이 없어졌는데도 우린… 더 행복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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