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 01:1)

첨부 1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은 우리말 성경에는 똑 같이 번역되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여기의 ‘태초’라는 말은 인간의 용어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역사로 들어오셨지만 하나님이 계신 시간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중국 성경에는 창세기 말씀을 ‘기초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 세상을 창조할 때’에 라는 것입니다.
태초라는 말은 인간의 용어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때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통해 저는 최근에 급박하게 마음에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예배답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다운 예배에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메시지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 선교사로 갈 때 중국말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국에 가나서 그 나라의 말을 모르면 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요한복음 말씀을 하셨는데 보혜사 성령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은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에 대한 이야기를 인간의 언어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
어떤 분들은 말씀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배울 수도 없습니다. 내가 골방에 들어가 받은 것을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하용조 목사의 설교에는 감동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 감동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하용조 목사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같은 감동을 주실 때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받는 것입니다. 특별히 복음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결코 인간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보혜사 성령님이 감화를 주실 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 “스스로 계신 이가 보냈다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 분입니다. 과거에만 계신 분도 아닙니다. 과거를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예배 때마다 와서 주의 종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받으십시오. 메시지는 웅변, 이야기, 교훈, 훈계, 철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영으로 받으십시오. 그 때 비로소 은혜가 있게 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