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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 요한의 고백 (요 03: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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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나 시대를 평가할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그렇습니다. 진리가 진리를 알아보고 의인이 의인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악인 1백 명이 모여 평가한 것보다 의인 한 사람이 평가한 것이 더 진실하고 의미가 있으며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4복음서를 썼던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외 없이 한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그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동시에 4복음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 것보다 더 값지고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장 존경하고 무서운 사람은 바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비판이나 평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생각, 믿음, 삶 그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인기나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가장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죽음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왕에게 죽임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의 삶, 인생관, 가치관은 한 마디로 예수님께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에게만 관심을 가졌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장 11절에서 세례 요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를 자세히 보십시오. 세례 요한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게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그는 온 인류를 대표해서 예수님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2-24절 말씀에 일곱 가지 고백과 그 배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미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목격한 요한의 제자들이 갈등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 대해서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세례는 요한만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예수님도 주고 있고 더구나 세례 요한에게 몰려왔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므로 질투가 나고 갈등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 세례 요한에게 와서 질문합니다.

세례요한의 증언
25, 26절 말씀입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말씀의 문맥을 보면 뭔가 불편합니다. 항의성도 있고 질투의 감정도 섞여 있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이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예수님에 대해 대답합니다.
① 하나님이 보내신 분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에서 나온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분이라고 증거합니다. 27, 28절 말씀입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세례 요한 자신도 세례를 주고 있지만 그가 볼 때 예수님은 인간에게 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메시아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아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바로 그 메시아다’라고 합니다. 굉장한 통찰력입니다.

② 진정한 신랑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진정한 신랑입니다. 29,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신부에게 있어 신랑은 중요합니다. 교회를 가리켜 신부라고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부입니다. 신부가 기다리는 신랑이 오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신랑의 친구라고 합니다. 신랑과 신부라는 단어는 곧 결혼을 의미합니다. 곧 신부가 기다리던 신랑이 와서 멋진 혼인 잔치를 벌이는데 자신은 그 잔치를 준비하는 친구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의 천국 잔치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친구가 결혼하는데 그 친구가 너무 좋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그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숨을 쉴 수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신랑의 위치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 나보다 탁월한 사람에 대해 존경하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또래 사람에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또래인 예수님에게 당신이 메시아, 신랑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③ 하늘에서 오신 분
셋째,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세례 요한은 위로부터 오셔서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란 땅에서 나와, 땅에 속해 있고, 땅에 관한 것을 말하는 존재입니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고상한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뿌리가 땅에서 나왔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은 다 땅에 속해 있는 언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며, 하늘에서 나왔고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하늘에 속한 말씀을 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위로부터 오셔서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④ 하늘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
넷째, 하늘에서 보고들은 것을 이야기하시는 분입니다. 32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예수는 어떤 분인가요?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시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하늘에서 보고들은 것을 말하시는 분입니다. 하늘에서 보고들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어려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이상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생명, 구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불경이나 유교 경전과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진리는 기독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비슷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근본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한 단어, 한 점, 한 획까지 중요한 이유는 하늘에서 보고 듣고 오셔서 이야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변화를 받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귀신이 떠나고 병이 치료되는 일이 일어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분
다섯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33,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메시아의 본질과 증거를 받아들였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사람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실감하는 사람입니다. 머리로 믿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고 믿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 증거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참되신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나를 만지시고 속삭이시며 나의 차디찬 마음을 녹이시고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게 찬양이 됩니다. 눈물의 고백이 없는 찬송 가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생의 깊은 고난과 절망과 좌절에서 하나님을 만난 파니 제인 그로스비(Fanny Jane Crosby)는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기쁨을 눈물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세례 요한이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한없이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할 뿐 아니라 성령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남자로 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으로 말씀하시고 사역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열쇠는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여 명의 사람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에 남기셨습니다. 이성주의자, 경험주의자, 과학주의자들은 이 비밀을 모릅니다. 어떻게 예수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성령의 비밀입니다. 예수 체험은 성령 체험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를 믿어도 성령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건 예수를 모른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적, 도덕적, 윤리적, 역사적인 예수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령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보내신 예수님에게 무제한으로 성령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⑥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
여섯째, 예수님은 만물을 받으신 분입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만물을 다 주셨다는 말씀은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위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 말씀을 잘 아실 겁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은 하늘의 모든 권세와 땅의 권세를 예수님 한 분에게 주셨습니다.

⑦ 영생을 주시는 분
일곱째,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3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통 사람은 나의 인생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를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영생은 감추어지고 대신 인생의 본질인 심판과 진노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진노와 심판을 주시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진노와 심판에 있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지옥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 진노가 쌓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인간은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구름이 어느 정도 모여서 떨어지는 게 비입니다. 인간이 하는 짓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쌓아 진노의 양이 차면 어느 순간 떨어지는 겁니다. 이게 심판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건 사람이 대답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대답을 하게 됩니다. ‘아멘’이라고 소리가 되어 나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이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느껴지고, 받아들여지고, 거듭남의 역사가 나타나며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례 요한이 말했던 그 예수님이 마음에 증거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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