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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예배 (요 0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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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을 만나 볼수록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겉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본질은 타락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만날수록 새롭고 감격스러우며, 보면 볼수록 희망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 본질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인에게 나타난 변화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유대인 남자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 대해 점차 눈을 뜨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은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 오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인을 구원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고백하는 순간,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 더 크게 눈을 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단순히 유대인 남자이거나 야곱보다 큰 자가 아니라, 신비스러운 존재인 선지자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여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큰 변화가 옵니다.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 자신을 사로 잡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여인은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인에게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수록, 대화를 나눌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이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인은 예배에 대해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자신의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라고 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라고 했다며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질문을 던진 것이 여인에게는 기적같은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물을 길러 온 여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배 문제로 관심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대화의 화제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세상적인 관심에서 기도, 섬김, 헌신 등 영적인 관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성이란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정보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물을 이해, 해석,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그분을 믿고 경배하며 찬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해 따지고 연구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이성적인 관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사람은 지식으로 변화되는 게 아니라 예배할 때 변화가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찬양할 때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닫혔던 마음이 열리며 움츠렸던 인생이 펴지기 시작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
예수님은 혼란스러워 하는 여인에게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산에서 예배하든지, 예루살렘에서 하든지 상관없다. 그것은 예배의 핵심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예배에서 분위기나 형식, 느낌이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예배의 과정일 뿐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란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장소, 분위기, 제도, 형식이 예배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많이 받으면 좋고 받은 것이 없으면 싫어합니다.
예배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드립니다. 세상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또 시간을 드립니다. 참된 예배를 아는 사람은 예배 시간에 늦지 않습니다. 주일을 위해 토요일부터 정성스럽게 예배를 준비합니다.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분께 잘 보이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참된 예배는 아는 것을 예배합니다. 거짓 예배는 모르는 것을 예배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전통적, 본능적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왜 예배를 드리는지, 누구를 예배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제한되어 있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순서에 따라 춤추고, 송아지를 잡아 피 흘리는 것을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용이 없습니다. 형식이 가득할수록 내용은 형편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형식을 답습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예배란 그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매우 광범위한 말입니다. 많은 종교가 나름대로 정한 절대자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절대자 즉,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떻게 인간은 절대자인 하나님을 알고 예배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여자에게 짧지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참된 구원자는 이방인에게서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들을 때 좀 당황스러운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입니다. 메시아는 유대인에게서 납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계시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때, 이방인을 통하지 않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즉 유대인의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으로서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났지만, 유대인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져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함축하여 말씀하십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여인은 예수님에게 예배의 방법과 장소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방법, 장소, 형식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예배의 핵심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육체나 이성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의 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찬양하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예배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예배는 성령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 예배는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충만한 예배, 말씀에 근거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예배의 방법은 성령과 말씀입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우리가 이런 예배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 내 안에 강물처럼 흘러 넘칩니다.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진리가 없는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유대인의 예배는 영이 없는 진리의 예배입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반쪽짜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성령과 말씀이 하나가 되는 예배,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통적인 예배, 유대인의 말씀 중심의 예배, 사마리아인의 열정적인 예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배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 완성의 때가 이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는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물쇠입니다. 이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단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열쇠로 하나님의 자물쇠를 열면 문이 열려 하나님이 보이고 능력이 나타나 구원이 선포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메시아에 눈을 뜬 여인
여인의 생각이 명확하고 분명해졌습니다. 여인의 생각은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26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아마 이 대답을 들은 여인은 기절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만나다’하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와 졸면서 설교를 듣습니다. 헌금을 하면서도 짜증을 내게 되고, 구제도 남들이 하니까 마지못해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메시아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정말 나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난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예수님께서 조용히 대답하십니다. “내가 그다.” 어느덧 눈에 눈물이 흐르고 마음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분이 살아계신다. 나는 그분을 만났다. 그분은 나의 구세주 메시아다.” 오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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