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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 (요 0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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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모든 말씀이 예수님 한 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기자들은 예수님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기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들
요한복음 1장 2-4절 말씀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17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1장 2-3절에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알려주십니다.

또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예수님께 향한 경배와 찬양이 물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먼저 9-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그리고 12-14절 말씀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 존귀와 영광을 올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천군 천사들, 네 생물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성도들 모두가 일찍 죽임을 당하시고 존귀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다양한 반응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때로 예수님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며, 때로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의심하고 미워하며 저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분을 향해 덤덤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아직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분의 실존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냐?” “좋은 사람이다.” “아니다, 민중을 선동하는 자다” 등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말씀을 가르칠 때 사람들은 세 가지를 질문합니다. 25,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첫째 질문은 25절에서 ‘이 사람은 저희가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 권력자들, 기득권자들은 왜 예수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죽이려 했을까요?
둘째 질문은 26절에서 ‘만약 나쁜 사람이라면 왜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있을 때 체포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정말 그리스도로 여겼을까”하고 의문을 남깁니다. 셋째 질문은 31절 말씀에 있습니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앞의 두 가지 질문이 예수님께 빈정대는 것이었다면, 셋째 질문은 그분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 사랑과 희생 등을 종합해 보면 진짜 메시아가 온다고 하더라도 ‘예수보다 더 뛰어나겠느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2천년이 지난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예수님보다 더 위대하고 온전하며 큰 사람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신앙은 관념이 아닌 실재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함께 성장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이 사람의 고향이 어디고 아버지가 누구며 어떻게 자랐는지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 있는가’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진짜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28, 2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의심하는 사람들,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애써 설명해 줘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로 대답하십니다. 먼저 ‘너희들이 나에 대해 안다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고 대답하십니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보내신 분이 따로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너희는 나를 보내신 분이 누구이신 줄 모르지만 나는 안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뜬구름 잡기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신앙은 잡히기 전까지는 뜬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이 잡히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보 같이 보이고 믿음을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포기하고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주위를 맴돌며 자꾸 기웃거리게 됩니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틈만 보이면 사람들을 보내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흠을 잡으려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그들의 의도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3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자신들의 불의로 진리를 거부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아다가 죽이려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게 아니라, 자신들이 잘못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진리이기 때문에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불의하기 때문에 진리를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3, 3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33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네 가지를 설명하십니다. 첫째로 “내가 너희와 조금만 더 있겠다”고 하십니다. 둘째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갈 것이다”고 하십니다. 셋째로 “그때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고 하십니다. 넷째로 “너희는 나 있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메시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는 말씀을 이해합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말씀을 이해합니까?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에 기쁨, 자신감, 용기, 희망, 확신이 생깁니다. 천국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질병, 실패, 절망 등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주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걸림돌이 되고 갈등과 혼돈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과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35-36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니고데모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고 종교 지도자이며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당황했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게 아니라, 말씀에 담겨 있는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겠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물을 먹으면 다시 목마르겠거니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의 뜻을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말씀을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생, 천국, 구원이 보이고 축복이 전개됩니다.

예수님을 반대하고 조롱했던 많은 사람들, 예수님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보고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해 구원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서에 “너희가 보아도 못 보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도 모두 이런 연유입니다. 제자들도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 함께 생활하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영적 진리는 어느 한 순간에 깨닫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씩 자리 잡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한 순간에 깨달을 수 없다고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 옆에 붙어 있으면, 꾸준하게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듣는다면 자연스럽게 눈과 귀가 열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은 천지개벽과 같을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대해 매우 익숙해 있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한 채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새벽 5시에 혼자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말씀하세요. 이런 덤덤한 신앙 말고요.” 그때 주변에 예수님을 만나 감격과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그들은 거짓말하는 것 같고 과장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모든 프로그램을 내팽개치고 혼자 산에 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만났던 예수를 나도 만나게 해 주세요”라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어떤 계기로 인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제게 임하신 것입니다. 당시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을 통해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도 은혜가 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지나가기에, 기도 부탁을 했는데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기도 중에 말씀이 들어오고 성령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힘들고 답답하며 괴롭던 마음에 주님께서 오셔서 저를 만지시고 붙드시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마음이 녹아 부드러워지고 눈물 콧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음에 큰 감동과 변화가 있었던 그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덤덤하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 생활에 마침표를 찍기 바랍니다.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게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던 것들이 어느 날 눈물, 감동, 기쁨, 충격 등과 함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신앙
그때 저는 확신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덤덤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예수님을 경험하게 되면 밤을 새워 성경을 읽고 찬송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밤을 새우는 축복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때는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게 하는 어떤 힘이 생겨납니다. 놀라운 영적 실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경험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삶의 목표, 시간 관리, 찾아가는 장소 등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저 사람 예수에게 미쳤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감동의 실체 그대로입니다.
새해에 여러분에게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기쁨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병들고 실패하여 좌절해도 다시 얼어나는 영적인 도전, 능력, 감동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성만찬을 나눕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그냥 먹지 말고 예수님의 실체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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