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요 08:39-47)

첨부 1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앞뒤가 맞지 않고 논리 비약이 심한 경우를 더러 보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이율 배반, 모순, 자가 당착’ 등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도 이런 이율 배반, 모순, 자가 당착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모순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또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고 자유인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라고 믿었는데, 또한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율법,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영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며 생각하는 것을 보면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하며 심지어 그분을 죽이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생각하지 못한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유대인들의 이율 배반적이고 모순이며 자가 당착인 모습들에 대해 예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이 맞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살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맞다. 그렇다면 당신 안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먼저 39, 4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이런 문제들은 유독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며 예배에 참석해 설교도 듣습니다. 세례도 받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없고 세상 사람들처럼 말하고 생각합니다. 흥분하면 거칠 것 없이 있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점을 우리에게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의 지적을 부인함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에 따라 그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사단의 성격, 사단의 방법, 사단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직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4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님께서‘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말을 거절하고 너희 속에 분노가 있고 미움이 있으며 살인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면서 실제로 마음 속에 마귀의 생각, 마귀의 방법을 따르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확한 지적에 유대인들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부정했습니다. ‘우리는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우리 아버지는 한분 뿐이신데 곧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말을 말할 수 있느냐’며 예수님께 대항합니다. 그러자 42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법을 어기고 부도덕한 짓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오히려 곤란하고 힘들게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4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예수님께서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다만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부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못 듣는 이유
공중에는 수많은 전파가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전파를 잡아 소리를 듣거나 영상을 보려면 수신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브라운관이 있고 그럴 듯한 장치가 있다 해도, 전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내 안에 진리가 없으면 그 말씀이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헛소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답답해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무지, 어둠, 무감각, 백치 같은 모습들이 현대인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그분의 말씀이 계속 선포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해져 있습니다. 사단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여유가 없고, 영적 감성은 고장나버린 상태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진리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때 반응하게 됩니다. 내 안에 진리가 없으면 아무리 주님께서 말씀하셔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43절에서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네 마음이 세상으로 가득하고, 마귀의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을 때, 인간의 생각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판단, 경험, 가치관 등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자녀와 같습니다. 자녀는 자라서 집을 떠나갑니다. 마치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 먼길을 떠나는 탕자와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조금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탕자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탕자입니다.

현대는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식, 남편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아내, 아내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남편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땅을 치고 하늘을 쳐다봐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 둔감에 의한 벽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그런 벽이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이 반응을 보이고, 생명이 반응할 때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43절 말씀을 다시 잘 살펴보십시오.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 속에 진리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귀의 영향력
예수님께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해 주십니다. 4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예수님께서 ‘너희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참석해 예배도 드리지만, 실제로 그 마음 속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했고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마귀에게서 옵니다. 마귀의 본능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 죄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갈망, 음란하고 더러운 생각은 절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존재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번째,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입니다. 마귀는 가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죽이게 했습니다. 인간의 핏속에는 가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복수와 배신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분노하고 미워하며 보복하고 배신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약간 차이가 있을 뿐 근본은 같습니다.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우선하는 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살인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인간은 살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미워하고 복수하며 고소하고 고발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부모 자식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살이란 자신은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삶을 자포자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살은 무식한 사람들이 하지 않습니다.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합니다. 마귀가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인간은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공연히 남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내쫓으려 하며 죽이려고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분노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둘째,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마귀에게는 아예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모든 것이 거짓이고 허위이며 가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다.”
언뜻 보면 거짓말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살인과 같은 것입니다. 거짓말을 자주하면 사람들은 서로 믿지 않게 됩니다. 거짓말은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침묵도 거짓말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데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실로 가장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런 현상이 깊어지면 말을 바꾸게 됩니다. 이런 때는 이런 말을 하고, 저런 때는 저런 말을 합니다.
요즘 세상은 살인하고 거짓말하는 사회입니다. 비즈니스도, 정치도 거짓말하고 서로 믿지 않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사회입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사회는 살인하고 거짓말하는 사회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살인하고 거짓말했습니다. 우리는 살인하는 일에서 떠나야 하고 거짓말하는 일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영수증을 써주지 않아도 서로 믿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한 말은 해를 입을지라도 그대로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변명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살기 좋은 사회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가?
45, 46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예수님께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배척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진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배척 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 안에 진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4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까닭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3대째 크리스천 가정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목사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장로입니다’ 등의 말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주위 환경이나 조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마귀의 자녀입니까? 그것은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제입니다. 겉이 멀쩡하다고 해서 속까지 깨끗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당신의 학력이나 직업이 당신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 안에서 갖는 생각, 꿈, 비전 등이 당신을 결정합니다. 돈, 성공, 먹을 것, 입을 것 등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로 그런 존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이 거룩을 생각하고 비전을 꿈꾸며 하나님을 향한 생각을 갖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저는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충만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