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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를 맺는 비결 (요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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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밭에 나가 땀을 흘리며 정성스럽게 과실수를 심고 가꿉니다. 그것은 맛있고 상품 가치가 높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농부로, 예수님을 포도나무로, 우리를 나뭇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나뭇가지에 두 가지 필수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 가지는 반드시 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잘난 척하고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한낱 보잘 것 없는 쓰레기나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맙니다. 가지는 항상 나무에 붙어있어야 생명력이 유지됩니다.
둘, 나뭇가지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뭇가지를 꺾어버립니다. 가지는 언제나 나무에 붙어 있어서 공급해 주는 영양분을 받아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불량 가지 치기
예수님께서 맛있고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가지치기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과실을 많이 맺게 하려면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다른 가치들의 보호 차원에서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초등학생 때 배운 사칙연산(四則演算) 중 뺄셈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치, 향락, 거품, 군더더기 등을 빼내야 합니다.
사람은 몸속에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항상 몸이 무겁고 기분은 언짢으며, 혈압이 높고 성인병 등이 발생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외모를 서서히 망가뜨려가는 것입니다.

항상 깨끗이 하기
다음으로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나 과일에 벌레, 해충, 이물질 등이 발생했을 때 농약을 쳐서 병충해를 막아 줍니다. 주변에 잡초나 오염 물질을 제거해 줍니다. 바람이 불거나 폭풍이 닥칠 때 낙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또 과일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하나씩 종이로 싸서 좋은 상품이 되도록 관리해 줍니다. 이런 관리들을 통해 깨끗하고 좋은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깨끗이 관리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원리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기서 ‘거하다’는 것을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 ‘거하다’는 것은 ‘밖에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 밖에서 서성이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닌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에 대해 항상 방관자로 일관합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살아갑니다.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방관자들은 허무 의식과 함께 이방인의 성향을 보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방인의 특징은 한마디로 외로움이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문 밖에서 방황하면서도 문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해 아기까지 낳았지만, 부인을 아내로 생각지 않고 한 여자로 봅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프면 곧 자신의 아픔이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건만, 아내나 자녀에게 남을 대하듯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 남의 교회 말하듯 합니다. 교회의 실수가 나의 실수이고, 교회의 부족함이 나의 부족함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아내나 자식의 잘못에 대해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 나의 잘못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내를 야단치는 남편은 누구인가요? 아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가요? 자신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며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방관자들의 특징입니다.
한 남자는 한 여자의 남편이요, 한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녀는 그 열매입니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내는 서로에게 방관자의 자세를 보여선 안 됩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는 것입니다. 방관자의 병이 깊은 사람은 본인에 대해서도 방관자의 자세로 바라봅니다.
‘거하다’는 것은 문 밖에서 서성이며 비판하거나 남의 일인 양 방관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 참여자가 되고 주체가 되며, 주인 의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둘, ‘거하다’는 말은 ‘관계를 맺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접촉해 관계를 맺고 의사를 소통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면 ‘거하다’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문 밖에서 문 안으로 들어와 서로 접촉이 시작되면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셋, ‘거하다’는 것은 상호 보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거하는 것은 일방이지 않고 쌍방향입니다. 여자 없이 남자만 존재할 수 없고, 부모 없이 자식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먹이고 속을 썩이는 자식도 나의 자식이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게 하는 남편도 나의 남편이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선생만 있고 제자가 없다면 교육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목사만 있고 성도가 없다면 목회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대통령만 있고 국민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곧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주신 세 가지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첫째, 예수님을 떠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태양을 거부한 식물이 성장하지 못하듯, 부모를 거부한 자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식은 부모의 존재를 거부하면서 부모의 얼굴마저 보지 않으려고 집을 떠나 멀리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영적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동성애자들만 존재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한다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막히고 구원의 길, 축복의 길도 막히게 됩니다.
기독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만, 그 도덕과 윤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참여해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 개혁을 위한 시민 운동의 주체는 아닙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고아원과 양로원 등 구제 사업이 일어나지만, 기독교가 교육이나 의료 그리고 구제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사회의 구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 사회 활동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도 좋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식한 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6절 말씀을 읽습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불쏘시개나 쓰레기로 되고 맙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날마다 기적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께 붙어 있어서 날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 안에 거하기 = 주님의 말씀에 순종
둘째, 예수님으로 인해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주체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월적인 삶을 주시기 때문에 날마다 기적을 가능하게 합니다. 나는 한계가 있는 존재이지만, 주님께선 무한하신 존재이십니다. 나에게 불가능이 있지만, 주님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나는 실수가 많지만, 주님께선 완전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주님께선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내 안에 계시면 나의 부족한 부분까지 보완됩니다. 나의 약함도 강해지고, 미련함도 지혜로워집니다.
7절에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는 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태풍이 몰아칠 때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수술을 받기 전에 CBMC(Christian Business Men's Committee, 기독실업인회)에서 주관하는 제주 집회에 주강사를 맡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3,500명이 등록한 집회의 둘째 날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제주 실업인 700명을 초청했습니다. 1,000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700명이 참석했습니다.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전도 설교를 했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 새벽 집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중국에서 온 CBMC 회원 35명을 만났습니다. 그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몇몇 분들도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둘째 날에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순간,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교가 끝난 자리에서 세례를 받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이 거한다는 뜻입니다. 중국인들은 말씀을 듣고 주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신 것을 직접 느꼈던 것입니다.
목사로서 이처럼 기쁜 일은 없습니다. 모든 집회를 마치고 중국인 7명에게 세례를 주려는데 물이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종이컵에 물을 받아왔습니다. 그 물을 조금 넓은 접시에 옮겨 담아 세례를 주었습니다. 물이 많지 않아서 아끼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세례 받은 사실이 발각된다면 본국에서 쫓겨나는 것을 잘 알고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말씀이 들어오자 마음에 담대함을 입고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들과 한 시간 정도 설교로 만났을 뿐인데, 그들은 설교를 듣고 밤을 새워 세례를 받겠다고 결심한 것을 보면서 ‘주님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기 = 기도의 능력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잘못 구하면 어떡하지? 이기적으로 구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개인의 욕심이나 이기심으로 구할 수 없게 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도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뤄주십니다. 그래서 기적은 날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이 8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과 제자임의 표시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갖는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잘라 버리십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고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운데 그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가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1, 32절 말씀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표시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3장 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표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표시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열매를 통해 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치기를 하실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어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시도록 맡겨드려야 합니다. 잘못된 성격, 습관, 거품, 사고 방식 등이 모두 빠져나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 후에 많은 열매를 맺도록 보호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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