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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님과 고난 (요 15:2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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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어떤 사건을 심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빙성 있는 증거물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물이 나온다면 판결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아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인류의 죄를 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답으로 결정적인 두 가지 증거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5장 26, 27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첫 번째 증거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시는 것이고, 두 번째 증거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곧 이웃에게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먼저 첫 번째 증거인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것에 대해 알아봅시다. 26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둘, 실제로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것입니다. 셋, 성령님은 곧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이며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란 뜻입니다. 넷,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께서 세상에 오시는 이유에 대해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에 관해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성령님께서 세상에서 질병도 치유하시고 방언도 하게 하시는 등 능력과 기적을 베푸시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곧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성령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또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놀라운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거하심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이 세상에 오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하시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으며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은 일종의 공식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질량불변의 원칙 등 세상의 많은 공식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공식처럼 되었습니다. 그 공식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굉장히 놀랍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그 공식만 받아들이고 제대로 된 결과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며 봉사 활동도 하지만, 생동감 있고 기적이 있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인간적인 판단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성령님의 역사로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의 이름 앞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동안 아무런 감정도 없이 찬송을 부르고 성경책을 읽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삶에서 예수님께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웬 일인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면서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가 터져 나오고 신령한 시, 찬송,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기도 중에 방언이 터지고 예언도 하며 질병도 낫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려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생겨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그 이상의 영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다스림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은 누군가 총을 들이대고 죽음으로 몰아가더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두 가지 방법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증거하십니다. 성경은 약 2,000년에 걸쳐 40여 명의 작가들에 의해 다른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기록된 진리의 책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실제 저자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시대마다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감동을 주시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40여 명의 작가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주제는 일관되게 흐르고 있습니다.
공저(共著)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도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 동안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 있었던 40여 명의 사람들이 글을 썼는데, 주제는 일맥상통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한 분 즉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방증(傍證)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느낀 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곧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성경은 잘 읽혀지지 않고 우리에게 수면제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만나게 되면 성경 말씀을 잘 깨닫게 됩니다. 한마디로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님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은 사람이 예수님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경 말씀을 읽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도소에서 성경을 읽다가 성령 체험을 갖기도 합니다. 인간은 절망, 고난 중에 있을 때 성경 말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령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시는 다음 방법으로 사람의 ‘내적 증거’입니다. ‘내적 증거’는 종교 개혁자들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사람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씌어진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영안이 열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곧 성령님께서 사람의 내면에 들어오셔서 말씀하시고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학교, 연구소, 직장, 사회 등에서 경험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영적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무식한 사람이든 유식한 사람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 미련한 사람이든 성령님께서 그 안에 들어가시면 모든 것들에 대해 직접 증거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의 증거에서 세 단계
성령님의 증거에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해를 시켜 주십니다. 성경은 아는 것이 아니고 알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해 연구한 다음에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가르침으로 알아지는 것입니다. 부활, 기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머리로 생각하고 연구한 후에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셔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죄에 관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만약 성령님의 임재를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죄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것은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여태까지 타인의 허물만 보고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허물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회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셋째 단계는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 받은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내적 증거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산에 가서 도를 닦아야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특별 계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경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 말씀에서 시작해 성경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해서 대답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것도, 성령을 받은 것도, 천국에 간다는 것도 모두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둬야 합니다. 개인적인 느낌, 감정, 경험에 우선해선 절대 안 됩니다.
둘, 우리는 내적으로 성령님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의 증거와 성령님의 내적 증거가 합해져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시며, 그분으로 인해 구원받은 사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함
결정적인 두 번째 증거로 사랑하는 제자들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믿음으로 따라다녔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모든 사람들이 성령님을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 불완전한 믿음도 있고, 인간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그냥 교회에 오락가락하면서 인간의 의지로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임재로 인한 믿음은 처음에 불완전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결과는 언제나 선하게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시자 제자들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있을 때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고 따를 수 있습니다.
저는 1965년에 입석이라는 곳에서 성령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체험 없이 집안 분위기로, 습관적으로, 종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체험이 있고 난 후 지금까지 저의 신앙생활에 한 번도 변질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저의 인생은 개인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결코 주님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성령 체험 이후 지금까지 믿음의 경주에서 한 번도 일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성숙하고 온전했다는 뜻이 아니라,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별로 중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항상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저는 처음 성령 체험을 했던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과 대화하는 영적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항상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영적 체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선 열두 제자들뿐 아니라 사도 바울, 빌립, 스데반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영적 체험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하고, 빌립은 전도자가 되며,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많은 핍박과 환난이 따라온다는 영적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16장 1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증거할 때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때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임재와 고난은 항상 같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 임재와 고난은 동행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고,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려면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본문에서 두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첫째, 출회를 당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소외시켜 버립니다. 소위 ‘왕따’를 시킵니다. 때로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때로 사회를 혼란케 하는 무리로 출회합니다.
둘째,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로나 하나님을 핑계 삼아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죽이려 합니다. 기독교는 한마디로 순교의 역사입니다. 현재까지도 순교의 역사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나 세계 기독교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공허한 이유는, 교회 안에 진정한 순교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출회를 당하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순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진정한 순교가 없기 때문에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핍박이나 환난을 당했을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 충만 뿐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다’라는 사실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 건강해지고, 모든 일들이 잘 풀렸다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핍박과 환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어떤 고난, 좌절, 두려움 등도 능히 뚫고 나아가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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