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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성령님 (요 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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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주에 성령님에 대해서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시고 성령님께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며 우리를 깨우쳐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좀 더 쉽게 알아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를 좀 짓기는 했지만, 자신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죄를 지었다면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변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강퍅했던 인간의 마음은 무너지면서 스스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게 됩니다. 또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개인의 주장이나 선행이나 자기 합리화 등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 모든 일들에 대해 위선이었고 거짓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세상에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오셔서 깨닫게 하시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런 영적 깨달음은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수준만큼 점차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먼저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어린 아이는 그 수준에 맞는 나름의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크고 좋은 것을 가졌더라도 그에 대한 이해력과 판단력이 부족하고 깨달음에 대한 능력도 미약한 편입니다. 어린 만큼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학교에도 가며 세상을 경험하고 성숙해 갈수록 이해력과 판단력과 통찰력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없는 사람들
이처럼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믿음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실 말씀이 굉장히 많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알아들을 능력이 없음을 아시고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하시면서 삼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관해 말씀해 주시면서 많은 영적 진리들을 가르쳐 주길 원하셨지만, 제자들조차 그것을 알아들을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셔야, 성령님께서 오셔서 믿는 자들의 영안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셔서 영적 비밀을 알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유익이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서 자신의 이성과 양심으로 죄, 의, 심판에 대해 깨닫지도 못하고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오셔서 책망하시며 깨닫게 하실 때, 인간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죄인임을 알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해, 예수님께서 더 많은 사실들을 일러주시려 하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고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바람, 불,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성령님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바로 진리의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령님은 새로운 계시요, 하나님의 음성이요, 어떤 영적 경험이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을 받고 그런 현상이나 체험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 깨우쳐 알게 하시는 인격체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성령님의 인격에 관한 부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에 대한 체험적 요소보다 인격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인격 부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행하지만 인격적으로 결함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능력을 힘입어 많은 일을 행합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인격이라는 사실을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격의 성령님에 대해 무지한 채 예민하게 반응을 못하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진리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 가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근거되고 관계되시는 분이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떤 현상학적인 것, 능력을 힘입는 것, 체험적인 것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본문 말씀에 기록된 진리의 성령이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 말씀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오해 없이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에 대해 어떤 현상의 한 종류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현상이 방언, 예언, 능력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원래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며 진리의 말씀이시고 인격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감정이나 환상 혹은 현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진리로 우리 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우리 안에 진리가 충만하고 인격에 변화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어 성경에선 진리의 성령님이라는 표현 앞에 항상 정관사(The)를 붙여 인격체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격이시고 진리이신 성령님께서 오시면 세 가지 역할을 담당하십니다. 바로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 말씀을 통해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심을 깨닫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세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진리의 말씀인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둘째, 진리의 말씀인 성령님께서 오시면 그분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셋째, 진리의 말씀인 성령님께서 오시면 과거나 현재만 알게 하시는 게 아니라,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알게 해 주십니다.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첫 번째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가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가치란 시대, 사상, 문화, 환경에 따라서 그 기준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가치 기준이 계속 변하다 보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전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를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차이, 사고방식, 체질, 취향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이 사람은 좋다고 말하고 저 사람은 나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모두 제 각각이면 진정한 가치 기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시대를 초월하고 상황을 뛰어넘어 항상 옳고 바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 다른 기준을 갖고 있지만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평정하는 바르고 확고한 가치 기준을 확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해 왔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뀌게 되고, 세상의 상식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성령님께서 담당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옛날의 자기 고집이나 스타일대로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옛날부터 익숙했던 것을 깨뜨려 부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를 싫어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불행한 것이고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 기준을 바꿀 때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모든 잘못된 것을 바꾸시고 구부러진 것을 펴시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고 고장(故障)을 고치셔서 완전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전하시는 성령님
두 번째 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가감 없이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항상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증거하시고 예수님을 높이십니다. 성령님의 특징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시고 예수님께 집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갈등을 겪게 됩니다. 하나는 어떻게 예수님이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면 인간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어떻게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성령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에 대해선 이론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이신 것도 이해하게 되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인간의 사고 체계로는 이 말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잘못된 가치 기준과 판단 체계를 고치시고 진리 가운데로 옮겨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깨닫게 해 주십니다.
13절 중반에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철두철미하게 예수님께로 듣고 예수님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며 예수님에 관해 모든 것을 보여주시며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만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수님께 대해 눈을 뜰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인간 예수님에 대해선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깨닫게 해 주셔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은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깨닫게 해 주셔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성령님
세 번째 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과거나 현재의 일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일도 알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미래에 대해 안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불안한 마음이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예언적 의미가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기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또 진리의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진리의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미래의 일에 대해 알게 하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비전’이라고 ‘환상’이라 합니다.
꿈과 환상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 가난하고 병들어 실패 속에 있어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도 볼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은 신학교에도 가고 선교사로 자원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인생 비전을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ACTS29를 할까요? 왜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꿀까요? 왜 비전 교회를 설계할까요? 우리가 성령님으로 인해 미래의 비전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는 총 552명입니다. 올해도 연말까지 65명을 파송하게 됩니다. 왜 선교사님들이 복음의 사각지대로 떠날까요? 성령님께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고 반가운 성령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왜 그리도 방황하고 있습니까?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점점 더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고 느끼십니까? 마음에도 없는 헛된 것을 갖고 절망감에서 삶의 포기를 꿈꾸십니까?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찾아와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뜻을 알리시는 성령님
그러면 예수님이 보이고 미래가 보이며 희망이 보이고 잘못된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됩니다. 인생에 의미가 생기고 사업에 목적이 생기며 자녀 교육에 희망이 생기고 건강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매일의 삶이 항상 기쁘고 즐거우며 감동적으로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이 됩니다. 14절 말씀을 읽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에 한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은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사에 확실하게 예수님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카메라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면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님과 연합하면 예수님의 실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큰소리로 읽습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신앙의 깊이란 곧 성령님을 아는 깊이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깊이 있는 만남을 가져야겠습니다. 성령님을 더 깊이 체험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진리를 보며 우리의 미래를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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