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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넉넉한 하늘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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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이 예수를 믿는 가장 중요한 까닭 즉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여러분들의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리는가 하면 그와 같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일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이 예수를 믿는다면 그와 같은 사람 의 신앙은 습관적인 신앙이 되어 믿어지는 열심히 믿는 듯 하나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유익과 축복들은 별로 받지를 못하는 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착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부자가 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그와 같은 일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어도 얼마든지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예수를 안 믿어도 얼마든지 부자도 되고 건강하게 살수도 있습 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일들은 꼭 예수를 믿지 않아도 이룰 수 있지만 구원은 예수를 믿지 않고 는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 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아멘.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당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들 이 살아야 할 궁극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망쳐 놓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새하늘과 새땅을 준비해 주시고 궁극적으로 그 새해 늘과 새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을 우리는 천당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당은 꼭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구원이란 미래 적인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포함하여 미래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오늘 속에서 영원을 살고 이 땅에서도 하늘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천당 즉 하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는 이 땅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땅과 현실을 중히 여기며 긍정적으로 여기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과 세상은 우리들의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은 아닙니다.

땅과 세상은 우리가 축복해야 할 소명의 대상이지 우리가 즐기고 누려야 할 축복은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축복은 하늘이고 땅은 우리가 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땅을 하늘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땅에 살든 하늘에 살든 상관없이 언제나 하늘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하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행복과 구원을 논할 때 땅은 우리들에게 그다지 중요한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에 살지만 땅을 초월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땅을 초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 던 것입니다. 저들은 땅에서 살았고 땅을 사랑하여 땅을 축복하는 삶을 살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들은 땅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들은 땅에서도 늘 하늘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하늘을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땅은 저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없었습 니다. 그러므로 부하면 부한대로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언제나 기뻐하며 언제나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땅이 흔들리고 어려워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초월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땅에 얽매여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땅에 얽매여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인 하늘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죽어서 살 천당을 이 세상에서는 살아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땅이 편안하고 형통할 때에도 우리의 삶은 제법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삶에 점점 익숙해지면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을 살게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땅에서 얻을 수 없는 만족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고통하며 외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세상은 편안해도 문제고 편안하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땅과 세상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본시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 얻어도 만족하지 못할 세상에 욕심을 두고 그것 때문에 싸우고 다투고 범죄하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음이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원죄 때문인데 원죄란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할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입니다. 그 어리석은 원죄적인 욕심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땅 에 얽매여 땅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 원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 살아도 땅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땅에 얽매이게 하는 그 모든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죄사함을 받아야 하고 죄사함을 받는다면 마땅히 땅에서 풀려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땅에 묶어 두는 것이 바로 죄의 뿌리가 되는 죄된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 우리는 땅에서 자유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땅의 결박을 풀어 이 땅에서도 하늘을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후에도 땅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서만 땅 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죽 어서만 천당을 가려고 한다는 것입 니다. 땅에 살면서도 누릴 구원의 축복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어도 다 천당에 갈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죽음으로 이 땅을 떠나게 될 때 여러분은 모두 하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죽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어서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이 땅에서도 땅을 떠나는 삶을 살라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하늘을 살라하시는 것입니다.

땅을 떠나세요. 땅에 대한 욕심을 끊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땅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복된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땅을 버리지 못하면 평생 피곤합니다. 땅에서 편히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꾀가 있어야 하고 적당히 죄도 지으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봤자 행복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와 같은 것들을 언제나 성공적으로 확보할 수 없습 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다 출세를 하고 세상적으로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땅에 얽매여 산다면 예수를 믿는 것이 별로 소용이 없고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은 천국은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출세를 해야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과 전혀 다릅니다. 하늘은 오직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그 누구도 갈 수 없습니다.

돈은 내 맘대로 할 수 없지만 믿음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돈은 지키려고해도 지킬 수 없는 때가 많지만 믿음은 지키려고만 하면 누구도 내게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땅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니지만 하늘은 언제나 마음만 먹는다면 내 것입니다.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늘을 살 수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살면, 그 믿음으로 살 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높은 산도 하늘이고 거친 들도 하늘입니 다. 부하면 부한대로 비천하면 비천한 대로 능히 자족하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IMF로 세상은 잃어버렸지만 IMF를 만나도 우리의 믿음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돈을 잃어버렸음으로 땅은 놓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늘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땅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하늘을 살 수 있습니다.

그 하늘 때문에 기뻐할 수 있고 그 하늘 때문에 감사할 수 있고 그 하늘 때문에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천국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 다.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은 사람답게 사십시다. 세상은 세상대로 극복하여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그것과 관계없이 구원의 삶을 사십 시다.

여러분 하늘을 살면 참으로 근사합니다. 참 자유 하는 삶, 참으로 평안한 삶, 참으로 만족하고 감사한 삶, 용기 있는 삶, 담대한 삶, 아름다운 삶,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 니다. 그러나 땅에 얽매여 살면 우 리의 삶은 참 초라해집니다. 자유 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잠시 편안함을 혹 누릴 수 있을는지 몰라도 참 평안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만 족과 감사 대신 끊임없는 욕심과 탐욕 때문에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겁해 져야 하고 더러워져야만 합니다. 땅 에 얽매여 살면 절대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땅은 언제나 좁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은 언제나 늘 넉넉하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땅은 열심히 침노하여도 얻지 못하는 때가 많지만 천국은 침노만 하면 언제나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땅의 일을 위하여서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천국을 침노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천국을 살면서 땅얽매이지 아니하고 땅에 대하여 자유하는 삶을 사십시다. 그리고 땅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십시다.

물론 우리가 땅에 살기 때문에 땅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을 그대로 당해야 하지만, 그리고 그 어려움을 당할 때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고 통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하늘은 품고 사는 사람이 되자는 말씀입니다. 땅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늘까지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이 되겠습니까?

땅에서의 인간적인 삶이 편하든 불편하든 하늘은 늘 품고 살아 하늘이 주는 축복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땅에 얽매여 땅의 종노릇을 하지 말고 하늘을 품어 늘 자유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가 함철훈 선생의 사진에 글을 써서 출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라는 책에 '하늘을 하는 사람'이라 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신천옹 (信天翁) 이라고 하는 새가 높은 하늘을 비상하고 있는 사진에 대하여 글을 쓴 것인데, 신천옹이란 영어 알바트로스 (albatros)라고 부르는 새입니다. 모양은 갈매기와 비슷하지만 갈매기보다 큰 새이고 높은 하늘에서 기류를 타고 비행을 함으로 가장 멀리 나는 새중의 하나입니다.

하늘을 사는 사람

고려대 기독 학생들의 채플에 갔다가 사진가 함철훈씨를 만났다. 한번 얼굴을 익힌 적이 있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찍은 슬라이드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슬라이드의 주제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주제만 듣고도 감동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세상을 창조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 다. 시간이 없어서 그의 사진은 한장도 보지 못하였지만 본 것만큼이나 감동을 받았다. 흥분된 어조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는 사진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러나 분주한 일상에 묻혀 나는 그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기독 교수들의 수련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엘 갔다가 거기서 그를 또다시 만났다.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여전히 흥분하며 나의 설교와 자신의 사진에 대하여 설명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의 사진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그 사진을 좀 볼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응했고 드디어 식구들과 함께 거의 세시간 가까이 그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평소 늘 만나 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왔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을 만났던 것이다.

그는 실력 있는 사진 작가다. 큰 맘 먹고 일하지 않아도 적당히 사람들이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얼마든지 넉넉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신이 찍어야 할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였기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찍고 싶어하시는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사진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거의 3년 가까이를 한달에 6만원하는 창고 같은 방에서 생식을 하며 버텼다. 모세와 바울 그리고 다윗과 예수님의 광야 생활을 그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고집을 통하여 그의 사진들이 나왔다. 그의 사진 속에 메시지가 실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사진에 나타나면서 그는 흥분했다. 세상에 없는 부유함으로 부유해지고 세상에 없는 기쁨으로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자신의 가난함과 인간적인 외로움을 말하기 전 까지는 그것을 전혀 눈치도 챌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찍은 사진 중에 하늘을 비상하고 있는 신천옹(信天翁)의 사진이 있다. 그는 그 사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붙여 놓았다. 그 글과 사진을 통해 우리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다 알아낼 수 있다.

하늘은 이미 내 안에 살아
하늘 위에 더 높은 하늘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모든게 하찮아졌어
두 번씩이나 접히는 내 크고 고운 날개도
더 높이 날아서 더 멀리 봐야 한다는 의지도
그래. 이름 석자를 위해 퍼덕이기엔 난 너무 늙었어
신천옹. 내 이름만큼이나
하늘 위에 더 높은 하늘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난 자주 여기서 살아
날개를 접고 부리를 땅에 박고 있을 때조차 난 이곳에 떠 있지
약해진 두 발목을 노리는 올가미로도, 약 먹인 낟알로도
단 한발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총알로도 날 여기서 끌어내릴 순 없어
난 이미 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을 내 안에 넣어 뒀거든
하늘은 이미 내 안에 살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던 바울, 많은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여 있는 모든 굴레를 훌훌 털어 버리고 참으로 자유로운 삶,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그 바울의 삶을 오늘 그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쁨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참된 부요학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이 땅에서도 천국 즉 하늘을 하는 사람이다. 천국은 죽어 서만 가는 곳이 아니다. 예수를 아 는 순간, 그 분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는 순간, 하늘을 믿는 신천옹이 되는 순간, 그가 믿는 하늘이 자신의 것이 되어 땅에서도 하늘을 사는 기막힌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삶은 부유할 수도 가난 할 수도 있고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며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땅에서도 하늘을 사는 사람을 만나서 기쁘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땅에서의 삶은 힘듭니다. 그것은 우리가 견뎌내야만 할 시련입니다. 땅에서의 삶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큰 차이가 없는듯 싶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땅에 살면서도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하늘의 소망 때문에 힘든 세상을 살면서도 그 세상을 능히 이겨내며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땅에서도 천국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힘든 세상 믿음으로 품은 하늘로 이겨 사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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