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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만찬 (마 26: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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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약속의 성취를 통해 변화된 것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모든 약속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세 가지가 우리에게 필요해졌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안식일이 변해서 주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일어나신 주님의 날을 기념하는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주일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그런가하면 유대인들에게는 몸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 아브라함의 씨라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할례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 놀라운 은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영혼 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세례증표가 새겨진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만찬에 앞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대한 민족으로 만드시기 전, 그들을 괴롭히는 무서운 원수, 바로의 세력을 거꾸러뜨린 결정적인 일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이 말을 안들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집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땅에 죽음의 사자를 보냅니다. 어느 집이든 태어난 장자는 다 죽이겠다는 하나님의 무서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문설주와 문인방에 양의 피를 칠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표가 있는 줄 알고 지나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입니다. '지나간다'(pass over)라는 뜻입니다. 아마 그 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신실하신 약속을 의지해서 양의 피를 칠해놓고 저녁 식사 끝나자마자 피곤해서 코를 골며 잤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깨어보니까 정말 주변의 많은 집에서 장자가 죽었는데 자기 집만 구원받은 것을 알고는 감격으로 찬미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양의 피를 칠해놓고도 옆집에서 아이 죽는 소리, 곡성 소리가 터지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실수해서 우리 집에도 오시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잠을 못 잔 채, 밤을 지새우는 심약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믿음인데도 불구하고 주의 약속이 있는 그 집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념해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백성이라는 잔치였습니다.

성만찬
그런데 그 잔치가 십자가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성만찬으로 바뀝니다. 한 민족을 구원해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구속해준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온 인류를 불행케 만들고 어둠 속에서 고통을 준 죄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라'고 이 만찬을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만찬은 모든 죄악이 약속의 성취로서 바뀌어진 중요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런가하면 이것은 성취일 뿐 아니라 또 새로운 약속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새크라멘툼'이라는 단어는 '맹세'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내가 맹세한 것이다. 보통 맹세가 아니라 내 피로 맹세한 약속이다.'는 새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 아래서 내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깨끗이 씻겨진 것을 믿습니다. 그 새 약속 앞에서 내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전가되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내 죄가 씻겨진 다음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영광을 안겨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게 주신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라고 말합니다.

이 약속은 고백으로 받습니다. '정말 내가 그 약속을 믿습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어떤 때는 고백을 말로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고백을 글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 전체로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몸 전체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입니다. 세례는 '예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는 것을 몸 전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이 있습니다. 그 물에 들어갑니다. 들어가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장사지낼 때 내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되었습니다.'하는 심정으로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같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에 동참해서 다시 일어납니다. 이 몸 전체의 고백이 세례입니다.

세례의 원류가 사실은 침례입니다. 형태적으로 침례가 더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침례가 복잡할 때도 있습니다. 과거에 공산권이나 모슬렘권에서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으면 세례를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호텔입니다. 저와 이동원 목사가 같이 가면 저는 간단합니다. 그냥 물로 머리에 세례를 주면 되는데 침례교 목사인 이동원 목사는 침례를 해야하기 때문에 물통에 물을 받고 옷을 벗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이런 번거러움 때문에 머리 위에 물을 뿌렸는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떤 곳에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의 명단입니다. 공개되면 위협을 느끼는 지역이 있습니다. 세례 받았다는 것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지역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침례보다 세례가 간단하니까 더 좋더라구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냈다가 부활하신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이 내게 온 것은 주께서 나를 위하여 흘리신 바 그 보배로운 피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내 몸으로 마십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육체가 세상의 양식으로 살아지는 것처럼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을 살겠습니다. 산 떡이신 주님을 인해서 내가 삽니다. 그래서 내가 이 떡을 받습니다.' 이런 놀라운 고백을 내 행동으로 하는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이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율법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것은 약속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에게 더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시기 위해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는 생명나무를 주셨고, 노아에게는 무지개의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에게는 할례의 약속을 주셨고, 새 민족으로 출발시키실 때 이스라엘에게는 유월절의 약속을 주셨는데 이제 성만찬의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우리는 고백으로 받습니다. 날마다 고백으로 기념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성만찬을 잔치로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인과응보'라는 세상의 질서 속에 삽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습니다. 씨 뿌린 데서 얻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인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그 분이 날 사랑하셨습니다. 아니 주께서 시작하셨고 완성하셔서 내게 주시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받을 뿐입니다.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잔치 밖에 없습니다. 성만찬은 잔치의 놀라운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잔치는 우리 성도들에게 생명의 잔치인 것을 알게 해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삽니다. 높은 신분으로 살아도 죽고, 부자로 살아도 죽고, 멋지게 살아도 죽고, 죽음이 생애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가진 우리는 생명을 향해 삽니다. 성찬은 생명잔치입니다.

그런가하면 거룩에의 잔치입니다. 우리는 육의 욕심 따라 이기적인 인생을 삽니다. 그랬던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주님께서 완성하신 거룩의 식탁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주의 거룩을 사모하고 주의 거룩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또 성찬은 구속의 보증입니다. 성찬을 받으시는 분은 안심하십시오. 성찬을 믿음으로 온전하게 먹는 사람은 어느 날 아버지의 영광의 잔치에 그대로 참여해서 그 기쁨을 현실로 누릴 날이 올 것입니다.

성찬은 사랑의 잔치입니다. 홀로 받는 것 아닙니다. 영원히 천국에 함께 살 우리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영광의 식탁에 둘러앉아 떡을 뗄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구속받은 자녀들이 사랑을 함께 나누는 잔치입니다. 홀로가 아닙니다. 같이 나눕니다. 그 은혜가 우리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최후를 준비시켜주는 잔치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될 것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됩니다. 우리가 가든지, 주님이 오시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최후입니다. 주께서 '내가 다시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잔치 상을 배설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영원한 잔치 상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귀한 잔치에 우리들이 이 시간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위대한 약속을 성취시켜주셨습니다. 성찬을 받으면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음미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 그 맹세를 든든히 붙잡습니다. 그것을 떡을 떼면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 몸 전체로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천국의 영광의 잔치를 믿음으로 이 땅에 누리면서, 또 하나님께서 앞으로 주실 것을 소망하며 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이미 이룩하신 이 놀라운 구속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잔치를 받으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영광의 우리 주님, 성찬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떡을 떼시고 포도주를 나눠주실 것입니다. 이제 성찬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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