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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특권2 (요 0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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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늘 이것을 점검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어떤 위치에서 서있는가?' 자기 지위를 살피며 삽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아내의 남편이고, 내 남편의 아내이고, 내 아이들의 부모입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놀라운 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면 그 이름을 진정으로 믿은 나를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자녀는 어떤 아버지를 모셨느냐에 의해서 그 생애가 첫발을 내딛고 삽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죄 사함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의 첫 번째 특권은 용서받는 특권입니다. 부모의 말 중에 믿지 않아도 될 말이 있다면 자식을 향해서 '나는 너를 용서 못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라는 말속에는 자식을 향한 한없는 용서가 있습니다.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합니다. 자식을 향한 한없는 용서를 하나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용서다.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안개의 사라짐같이 너희 죄를 도말 하였으니 너는 그저 오기만 해라. 내가 너를 용서했다.'(사 44:22) 그런가하면 우리 하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그 죄과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너희에게서 멀리 옮겼다'(시 103:12)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 앞에 우리 인생이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꼭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불신하는, 똑같은 죄 용서를 반복해서 구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심으로 그 죄를 자백했다면 주께서는 용서해주셨습니다.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께서 우리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다시 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가서 7장 19절입니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우리 죄악을 발로 밟아 짓이기셨다는 말입니다. 짓이길 뿐 아니라 깊은 바다에 빠뜨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바다 앞에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이 바다에서는 낚시질 금함' 과거에 잘못했던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해놓고 10년 전 부흥회 때나 작년에나 올해나 똑같은 죄 고백을 반복해서 회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낚시질하면 안됩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에게 잘못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러면 '목사님, 그것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럴거예요. 그런데 한 시간 후에 만나서 또 '목사님 용서하세요' 그러면 홍목사가 그간 참 겸손해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에 열댓 번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용서해달라고 한다면 차마 말은 못하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당신 내가 용서한다는 말을 믿어? 못 믿어? 내 인격을 의심해?'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죄 용서를 진심으로 빌었으면 내가 지은 그 죄에 대해서 나는 자유합니다. 무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죄 용서의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평화
두 번째는 평화를 누리는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이 평화라는 말은 '올바른 관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올바른 관계로 만난 다음, 우리들은 세상이 감당 못할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 14:27)고 주께서 말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그 평화를 풍성히 누리는데 또 다른 사람은 똑같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풍성한 평화를 못 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서 그 차이가 갈라집니까? 성경을 한번 볼까요? 시편 119편 165절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기 주의 법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이라는 말은 안 지키면 죄가 된다는 뜻으로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이라고도 말합니다. 또 이것은 반드시 따라야될 사람의 당연한 규범, 율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큰 평안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없는 평화가 가슴에 넘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Q.T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중대사태를 만나면 사람들이 허겁지겁합니다. 내가 버려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침에 하나님의 사랑 속에 눈을 뜬 사람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사건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날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해야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 축복 안에 놀라운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만 하면 되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되는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6장 3절, 4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여기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앞에 마음을 굳게 세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평강에 평강으로 내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이 말은 파도 하나가 크게 부딪쳐 와서 철썩하고 칩니다. 그것으로 끝났는가 싶었는데 다음 파도가 또 밀려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평화는 내 마음에 큰 파도처럼 밀려와 넘칩니다. 그러다가 이 평화가 끝났는가 싶으면 곧 주의 평강의 파도가 다시 밀려옵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주께 심지를 견고하게 세운 사람에게 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평화를 누립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장애물이 없는 평화로 임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심지를 굳건히 세운 사람은 반석이신 하나님 때문에 요동치 않는 인생을 살겠다고 합니다. 평강에 평강이 바다에 파도치듯 그 심령에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유나 환경, 여건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삶의 진정한 목적
세 번째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삶의 진정한 목적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삽니까?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없이 삽니다.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안 죽었으니까 삽니다. 그런데 중학생들에게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고등학교 입학이지요. 고등학생은? 대학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학 졸업한 다음에는 무엇하지요? 취직합니다. 취직한 다음에는 시집, 장가가고... 그 다음에는 아이 낳고... 그 다음에는 아이 키우다가 죽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는지 모르니까 허우적거리고 삽니다. 그래서 유명한 시인, 이화여대 김상용 교수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량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모를 때는 웃는 것이 최고이더라구요. 석가모니도 누가 질문하니까 연꽃 하나 들고 웃고 있었어요. 하여튼 모르면 웃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총괄한 신앙고백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43장 7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셨고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는 불쾌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들어놓고 영광을 받아 잡수시겠다고? 버러지 같은 연약한 인생, 아니 혼자 사는 것도 허겁지겁인데.. 그 인생을 붙잡아다가 영광을 받아 잡수셔? 하나님도 쩨쩨하다.'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 하고 입을 벌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라는 젊은 청년이 레슬링에서 한국의 태극마크를 달고 최초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선명합니다. 다음 날, 영광을 그 부모들이 받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라디오, TV, 신문에 양정모 부모 이야기로 꽉 찼습니다. 양정모 아버지에게 묻기를 '양정모가 어릴 때 어떻게 자랐습니까?' 물으니 골목대장으로 자랐다고 합니다. 사실, 대한민국 남자 쳐놓고 골목대장 한번 안 해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 평범한 내용이 일간지 기사로 크게 났습니다. 또 엄마에게는 '무얼 많이 먹였습니까?'하고 물으니까 콩나물 먹었대요. 우리 어렸을 때는 먹을 것 없어서 항상 먹는 것이 콩나물이었습니다. 사먹기나 했나요? 그냥 집에서 항아리에다 물 부어서 키워 쑥쑥 뽑아서 먹었던 것이 콩나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고 기사가 났습니다. 정말 그 부모님들이 영광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양정모는 비참해졌습니까? 영광을 다 부모님이 받아 잡수셨기 때문에 양정모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까? 제가 그 때 무릎을 치면서 '아, 이것이구나!' 했습니다. 자식이 잘못될 때 누가 욕 듣습니까? 부모님이지요. 자식이 잘 될 때 누가 영광 받습니까?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아버지께서 '너, 멋지게 살아라. 걸작으로 살아라.' 말씀하십니다. 미켈란젤로가 그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하나님 영광 위해서 그렸으니까 미켈란젤로는 비참한 사람입니까? 그가 얼마나 걸작의 생애를 살았습니까? 세바스챤 바하가 그처럼 아름다운 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으니까 불행해졌습니까? 초라해졌습니까? 진짜 영광을 누리는 것은 세바스찬 바하입니다. 우리들은 날마다의 사건과 시간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위신과 관련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너 멋지게 살아라. 네 삶이 최선의 삶이 펼쳐지기 바란다. 내 영광과 직결된 삶을 살아라.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삽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놀라운 특권을 누리고 산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무엇이지요? 죄 용서 입니다. 두 번째로는 올바른 관계로 얻어진 평화, 세 번째로는 삶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능력있는 삶
그리고 네 번째로는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 믿고 나서 참 힘들었던 것이 산상수훈을 읽는데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기록되기를 오른 뺨을 때리면 어떻게 하라구요? 왼뺨까지 내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심정은 어떻습니까? 오른 뺨 맞으면 왼뺨을 열 때 때려도 시원치 않을텐데 왼뺨까지 내밀라고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요?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라고요? 원수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 해도 내가 나를 칭찬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데 성경은 '네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며 축복하라'고 합니다. 제가 그 말씀을 읽고 성경을 던졌습니다. '하나님, 이것 참 좋은 말씀이긴 한데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절망스럽더라구요.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인간으로서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 믿고 나서 신앙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배웠던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배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개, 돼지처럼 그냥 먹고, 남이 물면 보복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인생에서 부르셔서 예수님이 살았던 높은 차원의 삶으로 초청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못산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처럼 멋진 초청에는 감사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런 초대를 한번 받고 당황해 본적이 있습니다. 항상 저 혼자만 여행하다가 제 아내가 안되었어서 아내에게 처음 외국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 속으로는 초청장 와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여권을 부부에게 동시에 안 주던 때입니다. 그런데 여권 신청을 했더니 여권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 단계, 미국 가기 위한 비자를 받아야 됩니다. 미국 비자 받기가 당시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 중에 제일 어려운 직업이 목사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7명의 교인만 모아놓고 미국에서 교회를 시작할 수 있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미국특별이민법에 의해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목사들이 미국만 가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당시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비자도 쉽게 나왔습니다. 할 수 없이 제 아내를 모시고(?) 미국에 갔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살고 있는 볼티모어에 아내를 맡겨두고 저는 제가 할 일들, 선교집회, 목회자 수련회, 학생 집회를 다 하고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뉴욕에서 사업하시는 남서울교회 성도 한 분이 제게 이렇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그럴 수 있습니까? 아니, 미국에 오셔서 사모님을 관광 한번 안 시켜드리고 그냥 보낼 수 있습니까? 이틀만 더 시간 내서 뉴욕에 오시면 저희가 관광시켜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일정을 이틀 연기해놓고 뉴욕에 갔습니다. 그 분들이 마련해준 호텔에서 그들의 보살핌 따라 제 아내를 맡겨놓고 또 저는 제 볼일 보러 돌아다녔습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밤인데 이 분들이 쌍둥이 빌딩 전망대 옆 식당에 저희를 초청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쌍둥이 빌딩에 전망대만 있는 줄 알았지, 한 쪽이 '뉴요커'라는 음식점인지 몰랐습니다. 거기 가니까 음식점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습니다. 그 앞에 갔더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안 되느냐고 했더니 넥타이를 안 맸다는 것입니다. 그 음식점은 넥타이를 안 매면 못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럽의 어떤 음식점에서는 넥타이를 안 매면 못들어가는 데가 꽤 있습니다. 달라스의 어떤 음식점에서는 오히려 들어오는 사람이 넥타이를 맸으면 그 넥타이를 가위로 무조건 잘라서 벽에 쾅쾅 박아놓습니다. 그래서 거기 음식점에 가보면 멋모르고 넥타이 매고 온 사람들의 잘린 넥타이가 못에 박혀서 한 벽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식당은 넥타이 안 매면 못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했더니 넥타이를 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셔츠도 없이 맨 목에 넥타이를 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올라가니까 정말 뉴욕의 야경이 멋있었습니다. 한 30분만에 한번씩 자리 전체가 회전합니다. 뉴욕의 그 호화로움을 멋지게 돌면서 보니 얼마나 즐겁습니까?. 그런데 제가 화를 내면서 '못된 사람, 나를 우습게 만들기 위해서 이 못된 데를 초대했어?' 그랬겠습니까? '초청은 참 멋지게 했는데 내 자격이 없다'고 했겠습니까? 멋진 초청을 받았지만 내가 무식하고 자격 없어서 하마터면 못 들어갈 뻔했어요. 형편없이 살 수 밖에 없는 내 인생을 우리 주님이 사셨던 그 높은 생애로 초대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그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해주십니다.

손양원 목사님 생애 속에서 그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가 사회주의 운동하는 친구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그 후 군인들이 다시 폭도들을 진압한 다음 공산주의에 가담했던 그 친구들을 모두 감옥에 잡아넣었습니다. 그 중에 자기 아들 죽인 원흉인 안재선도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냥 누워서 신음만 하시는 것입니다. 온 애양원에 나환자 식구들이 모두 자기 자식같이 여기던 동인이, 동신이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누워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때 <사랑의 원자탄>을 썼던 안용준 목사님, 당시 전도사님이었습니다. 안전도사와 김전도사가 있었는데 김전도사가, '안형, 우리라도 목사님께 가서 위로합시다.' '할 말이 있어야지?' '그래도 가야될 것 아니겠소?' 하고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저희들 왔습니다' 그랬더니 손양원 목사님이 눈만 한번 힐끗 떠보시더니 '자네들 왔나?' 그리고는 또 눈을 조용히 감고 '음... 음...' 신음하시더래요. '목사님, 저희들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성경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28-39)'
이 말씀을 다 낭송했더니 손 목사님이 '아멘!' 하시더래요. 그리고는 미음을 가져오라고 하시고는 돌아오는 주일날 '나는 이래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설교하신 다음,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던 안재선을 석방시켜서 자기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인간 손양원! 일제 때 목숨을 내걸고 순교까지 각오했지만 자기 자식이 죽은 이 슬픔 앞에서는 그 분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이 믿음으로 아멘하고 순종하며 일어설 때 그는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순종할 때 자기 아들 죽인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할 뿐 아니라 양아들까지 삼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남서울교회 장로님 중에 유복자로 태어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말만 나오면 그냥 땅에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말씀을 붙잡고 일어섰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분이 이 말씀을 붙잡고 온 밤을 통곡으로 지새우면서 아버지를 힘껏 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 앞에서 내 인생에 용서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만 삶의 진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십니다. 믿으십니까? 그 분 앞에 돌아오십시오. 일주일 동안 염려, 근심, 걱정 많았지요? 망할 것 같지요? 안 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밖에 못하는 아버지입니다. 잘못할 때도 용서밖에 못하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사랑 앞에 나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 분을 부릅시다. 우리 모두 찬송가 317장을 같이 부르십시다. 그 분 앞으로 우리 마음을 모읍시다. 그 분 앞으로 내 인생이 나아가십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 분을 찾기 원하는 내 마음 보다 내가 돌아올 때 그 분이 갖는 기쁨이 훨씬 더 큽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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