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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초점 (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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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떠드는 소리들을 요약하고 종합해보면 간단하게 이렇게 귀결됩니다. 첫째는 '나 잘났다.'입니다. 뭐라고 많이 떠들어도 자세히 보면 나 잘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로는 '어디 돈 벌데 없나?'입니다. 어디 가든지 돈입니다. 목장 모임 끝나고도 뒤에 앉아서 오늘의 시세표를 보면서 받은 은혜를 다 까먹는 분들도 계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술 한잔 먹자.' 이 말 외에 더 있습니까? 386이고, 486이고, 586이고 똑같아요. 더 웃기는 것은 술 잘 먹는 사람들이 술 마신 것 비판하며 나쁘다고 신문에 글을 썼더라구요. 오히려 술을 입에 안대는 저는 아무 말도 안했어요.

삶의 초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인생에 결국 이 세 가지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돈이 많든지, 없든지,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똑같습니다. 초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 가족이 모여서 가장이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까지를 큰 소리로 낭송했습니다. 그 구절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매일 아침 낭송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뜻으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이시다.' 둘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허상이 아니라 진짜다.' 가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역사상 독재자들마다 그리고 이단들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짜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 분만 참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저들은 이것, 저것 선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을 사랑하는 것에 날마다 초점을 맞추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결혼 대상자가 둘, 셋이 되니까 복잡해져요. 세상에 그 남자, 그 여자 하나만 있다면 선을 볼 것도 없을 겁니다.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 선을 한번도 못보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선 보러 다니고 야단 법석 하는 것은 둘, 셋, 넷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더 없습니다. 허상이 아니라 참이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그 분을 향해서만 사랑으로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한 율법사가 우리 주님께 그 말씀을 물었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수많은 계명을 가지고 삽니다. 그 중에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 때 예수님이 이 신명기 4장 6절 9절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다시 반복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니라. 네 삶에 정확한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나라의 법도 왕을 사랑해야된다고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정치가도 대통령을 사랑해야된다는 법을 저는 본 적이 없ㅅ브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터키만 케말파샤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헌법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이 터키의 아버지인, 아타 투르크인 케말 파샤는 어찌된 영문인지 헌법 조항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 분을 욕하면 일단 경찰에서 구속합니다. 알라를 욕해도 괜찮은데 케말파샤는 안된다는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걸인 알렉산더 대왕을 그처럼 흠모하고 사모합니다. 그렇지만 마케도니아를 돌아다녀보면서 알렉산더를 사랑하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몽고 사람의 피에는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이 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기스칸을 사랑하라는 글을 저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라고 요구하시는 그 분은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을 창조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그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성경 전체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4067번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이름이 7020번 나옵니다. 11000번이나 되게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계속 기록되고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행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말을 종합하면 하나님 사랑이라는 큰 글자가 서집니다.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사랑을 마음 속에 지어주신 그 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치가가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 못봤습니다. 제가 중국 가보니까 내 봉을 따르자 그래서 모텍동 어록을 열심히 읽었던 내봉이라는 사람을 따르자는 말은 봤어도 모택동 주석을 사랑하자는 말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랑을 요구하는 독재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충성도 요구하고 복종도 요구하지만 사랑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요구되는 인간관계는 세 부분입니다. 첫째로 부부 사이에 사랑이 요구됩니다. 둘째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사랑이 요구됩니다. 셋째로 친구들 사이에도 사랑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양자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에 한할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독재자들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

나님께서는 우리를 버튼을 눌러서 마음대로 컴퓨터 프로그램에 집어넣어 놓은 로봇으로 우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랑의 눈동자를 서로 맞추는 인격적인 대상으로 부르시면서 너는 나를 사랑하라고 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독재자라도 자기 자식을 향해서는 사랑의 눈을 가지고 눈 높이를 자신과 맞추면서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법입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고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라고 명령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다른 공관복음에도 다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히브리 말에서 그리스 말로 번역된 구약 성경의 세투어제트라는 70인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책에서 어떤 단어로 예수께서 가장 중요하게 말한 신명기 4장 6절부터 9절 말씀을 기록했는가 찾아보니까 각기 그 단어가 다릅니다.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요약해보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네 마음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번은 네 모든 표현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세 번째로 네 삶의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시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배 때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가대 찬양과 함께 시온성에 올라가서 영광의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 나 사랑합니다. 이 찬송과 함께 그런 뜨거운 사랑이 용솟음 칠 수 있습니다. 또 여기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사랑의 눈동자를 마주치고 주님,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오늘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에 임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설교를 들을 때 울컥하는 감격으로 눈물 지으면서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잇습니다. 그러다가도 직장에 가면 하나님 일주일 동안 안녕히 교회에 계십시오. 다음 주에 와서 다시 사랑해 드릴께요. 이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 돌아가면서 주님, 내가 집안 일 볼 때는 잠간 쉬시고 그 다음 다시 와서 사랑해 드릴께요. 아닙니다. 모든 시간을 마음을 다하고 열심을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나는 육신이 연약하니까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내 육신으로 사랑하는 것은 못하겠습니다. 성경에도 그랬지 않습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꼭 그 구절만 알아요. 그 사람은. 다른 구절 알아야 되는데 그 구절만 알아서 그리고 주님, 내가 육신으로는 사랑 고백 못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주께서는 내 마음 뿐 아니라 육신도 우리 주님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내가 몸으로 헌신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고백하게 됩니다. 헌금으로는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정반대입니다. 내가 헌금으로만 주님 사랑을 고백하고, 바쁘니까 일군 시켜서 하나님 일하십시오. 이럴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경주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천국 가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했던 일을 고백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 내가 남의 집 담을 뛰어넘어 도둑질했습니다. 그래서 얼굴 못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요, 또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 내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이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도둑질이 무엇이냐구요? 말라기 3장 8절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천국 가도 내가 도둑놈이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되는 부류 가운데 하나님께 드릴 것을 돌리지 못해서 수치를 당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하여튼 모든 시간에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장소 뿐 아니라 직장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들은 내 마음 뿐 아니라 육체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되고 내 몸의 수고와 헌신 뿐 아니라 내 물질로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되고 모든 시간,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초점을 인생은 가져야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해야 되냐고요? 무신론자들도 하나님 사랑해야 됩니다. 어떤 무신론자는 만났더니 하나님 믿으려면 나를 믿으시오. 이런 분 내 주먹 믿으라는 사람 참 많이 봤습니다. 제가 중국 다닌 지가 12년인데, 중국 공산당은 예수 못믿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은 미신을 믿는다고 너무 많이 가르쳐놨어요. 그래서 제가 어떤 분이 이야기 하다가 당신 보니까 배우기도 배운 것 같고 알기도 안 것 같은데 어떻게 예수믿냐고, 무식하게. 이런 분 참 많이 &48419;어요. 여러분, 하나님 계시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평생을 보냈던 철학자 볼테르가 마지막 임종 때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나는 저주받았도다.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버림을 받았도다. 마지막 외침이었습니다. 뭔가 깨달았는데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잔소리 말고 하나님 안믿는 분 하나님 믿으세요. 우리의 삶의 포커스가 하나님이 아닐 때 초점이 아닐 때 그 인생은 흐트러 집니다.

또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계시나 안계시나 나는 별 의미 모른다. 내가 그렇다고 예수 믿는 것 해방도 안하고 하나님 욕도 하지 않고, 또 가끔 나도 기도하다 너무 화급하게 하나님 이것 해주세요. 천지 신명께 비옵나니. 그래서 응답을 받으면 야, 운이 좋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는 법도 있나? 이런 분 계시지요? 잔소리 말고 하나님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 사랑하십시오. 생애가 달라집니다. 또 이런 분이 있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깨끗하게 살기를 평생 노력했다. 내가 이제까지 나쁜 짓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교회 가보니까 교회가 얼마나 위선자가 많은지, 그래서 교회 싫다. 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 너 도덕적으로 착한 생활했느냐고 말하지 않고 나를 향해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인생을 향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향해 감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간밤에 구름이 끼어서 별을 못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이 쏟아질 것처럼 별이 반짝 거리는 밤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지금부터 10몇 년전에 백두산 처음 올라갔는데 하늘이 쏟아지는 것 같아요. 별이 많아서. 언제 그랜드 캐년을 저희 아버님 팔순 잔치한다고 제가 시간을 내어서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가다가 차가 펑크가 났습니다. 그래서 잠간 바퀴를 갈아끼우는 것 때문에 밖에 나와보니까 별이 그렇게 많은지, 서울에서는 별 볼일 없지않아요. 예수 안믿는 사람도 그 때 야 대단하다고 우주를 연구하는 어떤 박사가 우주의 질서에 대해서 예수 안믿는 사람인데 그렇게 놀라면서 이건 창조주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의 강의를 들어보았습니다.

요즘은 정말 우리 동네 살만합니다. 문만 열면 아카시아 향기가 어떻게 진동하는지, 우리 하나님께서 언제 샤넬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를 아카시아에다 하나님이 먼저 집어넣어 놓으셨더라구요. 아침 마다 문을 열면 대모산 아카시아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가 이리로 와서 크게 누리는 축복 중의 하나가 대모산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천명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이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있습니다. 찬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만든 것이 그처럼 즐기는 사람을 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 만든 것에 놀라고 있느냐? 찬탄을 보내느냐? 찬사를 보내느냐? 찬양하느냐? 그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고 너는 나를 사랑해야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랑해야될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내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술가가 됩니다.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학자가 됩니다.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가가 됩니다. 이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업가가 됩니다. 내 생애를 결정해봅니다. 그러면 사랑은 엄청난 부를 얻습니다. 그 어느 날 여러분 모두 그랬지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한마디 고백했다가 오늘 내가 되었지요? 옆에 있는 사람 자세히 보세요. 내 생애가 바뀌어버렸어요. 그 말 한마디가. 사랑은 나를 바꿔버립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저급한 것을 사랑하면 그 인생은 저급한 인생이 됩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고상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고상한 인간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 엄청난 소리입니다. 내 생애가 영원을 두고 엄청난 변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사랑하고 살아야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의 사랑의 초점은 바로 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한, 너에게 나의 영광이 임할 것이고 너에게 나의 아름다움이 전달될 것이고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는 한, 너희의 생애는 영원을 행복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내 모든 것 다 뺏겨버리고 나는 초라해진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사랑해 보십시오. 복종하면 그의 모든 에너지가 뺏길 수 있습니다. 충성해도 뺏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놀랍게 그 사람의 사랑의 능력까지 내게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세바스챤 바하는 하나님을 사랑했던 음악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 사랑을 모두 쏟았습니다. 그랬더니 그에게 역사상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랬기에 성 시스틴 성당의 벽화를 7년 동안이나 그려냈습니다. 천장 도배를 한번 해보세요. 하루만 해도 목이 힘들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7년 동안이나 그 거대한 그림을 그려서 나중에 목에 혹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건 사랑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로마의 시스틴 성당 가면 다른 데는 많이 그냥 다니다가도 그 그림 앞에서는 소리를 못지르게 합니다. 거기가면 쉿 합니다. 사람 떠들기만 하면 쉿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 조용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그 앞에 옷깃을 여며야 되는 그 걸작, 하나님 사랑했기 때문에 쏟아져 나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말했습니다. 과학과 수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진리라고 증명했다 할지라도 나는 예수 편에 서겠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 내 피로 글을 쓰고 싶다. 예수 그 분을 그리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노트에 나온 글입니다. 그 분은 주정뱅이였고, 그 분은 도화꾼이었지만 예수님 사랑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에게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문학인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되었습니다. 단테는 하나님을 무지무지하게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성경 시편 다음으로 아름다운 문장인 신곡이 그의 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문학가, 예술가들만 그런가요? 아닙니다. 어니 브리지라는 분은 GM사를 SONY사 보다 더 발전시켜서 미국의 제일 기업으로 만든 경영자였습니다. 그 분이 TWA로 가니까 TWA가 미국의 제일 항공사로 자랐습니다. 하여튼 그 분이 손만 대기만 하면 그 기업이 미국의 제일 기업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우리 회사에도 어니 브리지만 있다면 하고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분이 쓴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대학교 2년 중퇴자입니다. 내 모든 지혜와 내 모든 삶의 경륜은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성경읽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서 얻어졌다. 내가 그 분을 사랑했던 그 사랑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니, 5대양 6대주의 해질 날이 없는 강한 영국을 만드는데 초석이 되었던 사람은 그랜드 스톤이라는 재상입니다. 그 분은 목사 보다 더 경건한 정치가였습니다. 저는 이 정치와 경영에는 신앙이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한국에 참 많은데 이 신화가 우리 남서울은혜교회 성도들에게서 깨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 분들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럽의 조그만한 나라인 네덜란드가 세계 어느 나라에 꿇리지 않는 강한 국가가 되었던 그 배경에는 에이브라함 카이퍼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그 분은 원래 목사였습니다. 신학자였습니다. 가장 경건한 국가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 삶이 윤택해집니다. 감동이 있느 생애를 삽니다. 여러분, 왜 내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까? 간단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감동이 없습니다. 지루합니다. 그것 잊기 위해서 또 5.16인지 5.18인지 상가네 술 잡수셔야 되요.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감동이 있거든요. 또 사랑한 감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을 주거든요. 그래서 미켈란젤로나 다빈치는 그래서 세바스챤 바하는 그래서 여기 말하고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의 능력 보다 10배나, 100배나 그 생애가 아름답게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누립니다. 잠언 8장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 사랑을 더 풍성히 누리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노래부르면서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의 넓이와 그 높이와 길이와 깊이를 우리는 알지 못한 채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했고 어떤 때 문득 문득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언제 부모의 사랑을 압니까? 저도 자식 새끼 나면서 사랑해보면서 내가 사랑하면서 그 때 부모의 사랑을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 하나님, 사랑하면서 그 분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무엇인고 하니, 사도 바울이 기도했던 기도의 목표는 너희가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날마다 알기를 원한다. 이것은 평생 가도 좇아갈 수 없는 가장 큰 목표요, 영광입니다. 얼마나 그 분이 신앙이 성장했는가는 얼마나 열심인가가 아닙니다. 사랑의 깊이를 그 넓이가 얼마나 더 온전하게 느끼는가, 누리고 있는가가 사실은 신앙 성장의 본 모습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살아가면서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하여 사랑하라. 다하여 사랑하라. 남김없이 사랑하라. 그렇게 그 분은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다 주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어디 그런 말이 있습니까?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는가? 그 분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흉악한 도둑놈이 흉기를 들고 와서 위협하면 돈 줄 수 있습니다. 금, 패물도 줄 수 있습니다. 더 요구하면 유가증서도 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은 못줍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은 사람들을 모두 뺏어다 자기 호의호식합니다. 모택동도 보면 인민을 위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황제 보다 더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내 눈높이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나를 위해서 고생하시고 그 분은 내 잘난 것이 아니라 내 죄악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세상의 모든 권력가, 독재자, 심지어 기업의 총수도 수탈하는 사랑입니다. 눈높이 맞춰서 내게 찾아오시고 다 주셨습니다. 다 주신 분은 다 요구해야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다 사랑했으면 당신은 나만 사랑해야된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다 사랑했으면 당신은 나만 사랑해야된다고 말해야 됩니다. 다 주었으면 다 요구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열심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니라. 내 사랑의 초점이 주님의 사랑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이 때만 인생은 인생이 됩니다. 제가 이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본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많은 문화도 접해보았습니다. 많은 나라, 많은 민족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민족에게 인권이 없습니다. 사람이 개 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라에는 사람이 사람 대접받습니다.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느니라. 힘이 없어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이셨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원수의 포로로 잡혀간 왕이 자기 눈 앞에 왕자가 죽는다면 심장이 터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전능의 손을 스스로 묶으시고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견디셨습니다. 그 분이 외쳐댑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나를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그 시간에는 그처럼 밝은 귀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음 소리도 듣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소리를 청각 장애가 된 것처럼 안들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모습을 우리 하나님은 보실 수가 없어서 청각장애자처럼 우리 시각장애자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둠으로 온 땅을 캄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들을 희생하신 사랑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무엇을 사랑하느냐는 무엇을 희생하느냐와 비례합니다. 희생하지 않는 것은 사랑 아닙니다.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내게 오늘 요구합니다. 잔소리 말고 나를 사랑해라. 내가 너에게 주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라. 그 놀라운 사랑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랬기에 우리들은 내 삶의 초점이 어디 모아져 있는가를 보십시다. 다음 주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이 땅에 드러나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겠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6월 한달 동안은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속에 심겨놓으신 사랑을 우리들이 발견해나가면서 하나님의 부요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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