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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 (요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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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요 11:1-4)

여러분은 생애에 있 어서 어떤 것이 가장 큰 축복 이라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어 떤 사람들은 돈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잘 산 다고 해서 보면 돈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잘 살까요? 심리학자들 의 보고에 의하면 돈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자식들 이 그렇게 슬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죽음의 슬픔 보다 내게 돌아올 유산이 얼마 인가가 더 간절하기 때문에 슬 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놓고 자식 슬퍼하지 도 않는 말년이 될 수도 있습 니다. 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받기로 작정한 사람들 은 아무리 많이 줘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자식들 의 마음이 갈래 갈래 찢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번 주간 에 있었던 현대 사건이 우리에 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 합니다.

또 좋은 집을 가진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사 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 한 칸 에서 일곱, 여덟 명이 한꺼번에 우글거리고 살았던 때부터 시 작했는데 이제는 식구대로 화 장실 있는 집을 갖고 사는 집 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넓은 집이 행복을 줍니까? 제일 처 음 전셋집에서 내 집 마련해 들어갈 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 러나 그 기쁨이 며칠 갑니까?

또 좀 잘 사는 사람 들은 보석 콜렉션 합니다. 돈이 라는 것은 늘 가져보면 그저 그렇습니다. 그래서 뭘 좀 다른 것 같고 싶다 해서 보석을 수 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친척 중에서도 보석을 수집하 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 여행 어디든지 가면 보석상에 가서 보고 못 사면 가슴 아파하고

'참 좋았는데...'하면서 몇 번이 나 혀를 찹니다. 언젠가 그 집 에 가서 사놓은 보석 좀 보자 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어떻 게 그 귀한 보석을 집에 놔둘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러면 어 디 있냐고 물으니 은행에 있답 니다. 언제 그것을 한번 목에 걸어봤느냐니까 어떻게 그것을 걸고 다니냐는 거예요. 그래서 모조품을 똑같이 만들어서 달 고 다닌대요. 그러니까 제 둘째 아들이 있다가

'이모, 바보다. 그렇게 가까이 갖지도 못할 것 같으면 그냥 하루 차 타고 나 가서 보석가게 돌아다니고 좋 다 감상하고 돌아오시지 뭘 그 렇게 돈 들여, 애써 사느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좋은 옷, 옷은 날개라 고 합니다. 그 옷 없으면 내 인 생이 어떻게 될 것 같은 목마 름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집에 서 사가지고 들어온 순간부터 그것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또 우리 어렸을 때 자동차 배 기가스가 향기인양, 뒤쫓아 다 니던 것이 엊그제예요. 그런데 이제는 모두다 차 한대씩 몰고 다닙니다. 그래서 행복하십니 까?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로 제게 무엇 이 축복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게 첫 번째 축복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어쩌다가 예수 믿었 는지 지금도 참 신기합니다. 그 렇게 안믿으려고 애쓰고 도망 다니고 항거하고 또 실제로 믿 어지지도 않았는데요. 김용옥씨 가 왜 저렇게 떠드는지 제가 잘 압니다. 홧김에 저러거든요. 안믿어지니까 그럽니다. 주님의 사랑이 바다 물결처럼 끊임없 이 밀려오는 사건, 사건마다 주 의 은총이 나를 전후좌우로 붙 잡아줍니다. 이 구원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복입니다.

두 번째로 제가 축복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 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하고 교제하며 는 것입니 다. 가족은 두말할 것도 없고 좋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습니 다. 저는 우리 성도들 정말 마 음에 이쁩니다. 이뻐 죽겠어요. 정말 좋습니다. 어디 목사들 모 임 가면 목사들이 자기 교인들 에 대해 그렇게 아프게 이야기 합니다. 기도원 가면 저와 면담 하자고 줄 섭니다. 이야기 들어 보면 자기 교인 나쁘다고 계속 떠드는데, 정말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25년 목회하면서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한 형 제, 자매들과 함께 신앙생활합 니다. 아마 천국 가도 참 반가 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서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돈이라는 것은 쓴 것만 내 돈 이지, 안 쓴 것은 어느 날 나와 전혀 상관없어집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쁨은 사람들을 얼마 나 넓고 깊게 사랑하는가에 의 해 결정됩니다. 사랑하면 반드 시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서 기쁨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 입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감동 이 있습니다. 불을 켜면 빛만 나는 것이 아니라 열이 나는 것처럼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 과 감격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 래서 여러분이 여러분들에게 질문하면 됩니다. 내가 언제 감 격했는가? 그러면 그 때 사랑 하고 있었던 나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 하면 두려움이 밀려납니다.

우리 예수님에게도 이 땅에 계실 때 사랑하는 사 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 에 주께서 만족하셨고, 그것 때 문에 주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랑했던 첫 번 째 사람들, 성경에서 열 두 제 자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3 장 1절에 예수께서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구름 떼처럼 모여 드는 사람을 피하셔서 조용히 제자들과 만나 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셨고 자기를 왕으 로 삼으려는 인기 같은 것은 한 눈에도 차지 않은 채, 인간 적인 눈으로 보면 무지렁이 같 은 무식한 20대의 갈릴리의 어 부들과 사랑하시면서 기뻐하셨 습니다. 사랑은 어떤 돌맹이도 다이이몬드 보다 더 빛나는 광 채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가 졌습니다. 사랑은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어 느 분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는 확신만 있으면 내가 어떤 고통도 참겠다.' 그것이 흔들리 니까 생애가 흔들립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 서 또 확실하게 사랑했다고 성 경에 기록한 예가 있습니다. 그 것은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 11장 3절에 주께서 사랑했다는 기록 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 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 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사랑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예 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 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요 11:5)이 사람들만 사랑받는다 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도 본래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또 주변의 많은 사람도 예수께 서 그 가정을 사랑하시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35절에 나사로 가 죽은 것을 본 그 현장에서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 라'(요 11:35)고 말했습니다. 그 러니까 36절에 이렇게 기록되 어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 하였는가 하며'(요 11:36)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우리 주님은 그 가정을 그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가정 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주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가정이 있었 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수많은 예배가 있고 예배에 주 님께서 반드시 참여하시지만 어떤 예배는 우리 주께서 찡그 리는 예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예배는 주님께서 임재하셔서 기뻐서 어쩔 줄 모 르는 예배가 있다고 저는 믿습 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기 뻐하시고 주께서 이곳에 오셔 서 편하게 쉬실 수 있는, 영광 을 받으시는 예배되기를 소원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베들레 헴에서 또 예루살렘에서 성공 한 사람들, 부자들, 유명한 사 람들의 집에 유하시지 않았습 니다.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 도 주님을 좇아 다녔지만 주께 서 저의 집에 유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 한 촌 베다니에서 자기 집처럼 계신 것입니다. 주 께서 정말 남서울은혜교회가 주님의 교회다, 이렇게 말하는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점 에서 우리 교회는 확실하게 주 님 기뻐하실 점이 두어가지 정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장애를 가진 형제, 자매 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 장 관심을 많이 기울이신 분들 이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는 장애인들이 같이 예 배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그 사 실을 몹시 아프시게 느끼실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기 서 온갖 장애를 가진 형제, 자 매들과 같이 주님 기뻐하시는 영광 속에 예배드리고 있습니 다. 주님, 기뻐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 일을 위해서 예배당을 멋지 게 지어서 우리끼리 편하게 자 동차 주차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편리한 예배 드리기 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 게 복잡한 주차 때문에 5분이 나 10분 더 성의를 내어 예배 를 준비해야합니다. 환승 주차 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올 때 우 리 주님이 몹시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주님이 사랑하 시는 예배,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성도들 가정 가 정이 우리 주님께서 유하기 기 뻐하는 가정들 되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주님 오시 면 무얼 가장 감추고 싶으십니 까? 어떤 집은 화투장일 수도 있구요. 어떤 집은 비디오 테이 프 감추느라 혼나고요. 어떤 집 은 부부싸움 한 것 감추고 싶 고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 겠지요.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 이 유하기를 기뻐하시는 가정, 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가정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처 럼 사랑하는 가정에 사랑하지 않은 것 같은 증거, 세 개를 발 견합니다. 첫 번째로는 이 가정 보니까 형제들이 똑같지 않습 니다. 늘 나대기를 좋아하는 자 기 중심적이고 또 다른 사람에 게 위압적인 사고를 가진 마르 다. 이 마르다는 언제든지 열심 히 활동하고 일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얼마나 대담하던지 주님에게도 명령합 니다.
'주여 저 마리아로 하여 금, 당신 발 앞에 앉아 당신 말 만 듣게 하지 마시고 날 좀 도 와주게 하시오.'
이 마리아에게 꾸중하고 명령하면서 사실은 또 주님에게까지 명령합니다. 교회 안에 보면 이렇게 나서기 좋아하고 준 것 없이 미운 사 람이 꼭 있습니다. 늘 자기 중 심적입니다. 그래놓고 자기는 자기 결점을 모릅니다. 자기 중 심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결점 을 모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 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이 얼마 나 상처입는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 꾸중을 듣습니 다. 그런가하면 마리아는 주께 서 자기를 향해서 무슨 말씀을 가장 하고 싶으실까 생각하며 얼마 남지 않은 때, 자기를 향 해서 부어주시는 깊은 사랑 앞 에 나아갔습니다. 그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과 사랑의 눈동자 를 마주치고 주님의 말씀에 귀 를 기울이고 주님의 심장에 그 마음이 와 닿아있는 겸손한 마 리아입니다. 그런가하면 나사로 를 봅니다. 만약 나사로가 우리 남서울은혜교회에 있어도 그 사람이 누굴까 싶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 람이 그 다음에는 도무지 뭘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소극 적인 사람, 전혀 눈에 띄지 않 는 사람, 요즘 튀는 것 좋아하 는데, 튀는 것과는 정반대인 사 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 도 아닙니다.
여러분, 잘못 생각하 면 '나는 이런 이런 실수로 주 님께 꾸중을 받았기 때문에 주 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 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교회 가봐 야 도무지 표시가 안나. 할 일 도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내 능 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래서 자기를 늘 작게 생각하는 사람, 주님께서 나 같은 것은 사랑 안한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 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 서는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말 씀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 기 마음에 꼭 드는 이 마리아 를 몹시 사랑하셨습니다. 그러 나 나서기를 좋아하고 실수를 많이 하지만 자기를 향해서 온 전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마르 다를 우리 주님은 똑같이 사랑 하셨습니다. 아니, 있는 것 같 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도무지 인간적인 눈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 이 나사로를 우 리 주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사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자식이 내 마음에 들어야만 사랑이 되 든가요? 자식이 내게 고통을 줄 때, 실망을 줄 때, 더 큰 사 랑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 사랑이 중단됩니까? 마음에 들 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랑이 포 기됩니까? 우리 주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 보다 유명하지 못하고 그 사람 에 비해서 다른 모습을 가졌다 고 주께서 나 같은 것을 사랑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 오. 주께서는 그 때도 나를 사 랑하십니다. 내가 넘어져 있을 때 더 깊이 사랑하십니다. 사람 들이 나를 눈 여겨 보지 않을 때, 더 사랑하십니다. 간증 중 심의 설교가 위험한 것은 하나 님께서는 영(靈) 아니면 사랑 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 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에이 브라함 링컨이 참 재미있는 이 야기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제일 사랑하신 다고요. 증거를 대라고 하니까 뭐라고 답변하는가 하면 그래 서 제일 많이 만들었답니다. 자 기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만들 잖아요. 성공한 사람들, 잘난 사람들은 이미 자기 상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주님은 실패한 나를, 평범한 나를 더 깊이 사 랑하십니다. 이 가정이 증거입 니다.

두 번째로는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쉽습 니다. 이 가정에 병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보통 병이 아 니라 죽을 병이 들었어요. 우리 들은 실패했던지 병들었던지 고통당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증거라 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 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 다. 그 하나님의 큰 사랑은 어 떤 때는 나를 아프게도 사랑하 고, 어떤 때는 슬프게도 사랑하 고, 어떤 때는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으로도 사랑하십니다. 잘못 된 신앙은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합니다. 그 소리는 귀신 같은 소리예요. 성경에 어 디 그런 말이 있어요? 성경에 는 귀신들린 자 있다고 했습니 다. 그러나 연약한 자도 있고 각색 병든 자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몇 가지 증거를 가지고 강조를 하니까 사람들이 모든 질병은 귀신으로부터 오고 병 이 든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라고 잘못 오해합니다. 이 단들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께서 질병으로 그 분의 큰 사 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큰 병을 몸에 지녔습니 다.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기도 했습니다. 그 간절한 기도를 세 번이나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 나 하나님께서는 안 고쳐주셨 습니다. 그리고
'내 은혜가 네 게 족하다'(고후 12:9)고 하나 님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 러자 아무 것도 안 변했는데, 이것을 도리어 크게 기뻐하였 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한 달 쉬면서 혈당을 체크해 보니 150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당뇨 병 환자라는 거예요. 자각 증세 가 없었으니까 도무지 몰랐습 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받고보 니 참 마음에 기쁨이 몰려오는 데, 첫 번째 기쁨은 우리 하나 님께서 주님 앞에 갈 예비초청 장 보내주셨구나 하는 것이었 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들은 하 나씩 무너지쟎아요? 부품 고장 이 나기 시작해요. 어떤 것은 고칠 수 있는데, 고쳐지지 않으 면 그대로 주님 앞에 가야 됩 니다. 그런데 내가 건강한 줄로 착각하고 준비 없이 갈 뻔 했 어요. 주께서 경고를 보내주셨 습니다. 어제 밀알 음악회때 어 떤 분이 거룩한 성을 찬양했습 니다. 그러면서 관중들에게 따 라 부르라고 해서 따라 불러봤 습니다. 30년 전에 제가 그 노 래 잘 불렀거든요. 불러 보니까 가사들이 모두 생각이 나더군 요. 거룩한 성이 세 scene으로 불려졌습니다. 첫째로는 나 어 젯밤에 잘 적에 꿈을 꾸었네. 호산나! 주께서 입성하시는 것 을 찬양하는 노래가 첫 번째입 니다. 두 번째 scene입니다. 주 께서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의 비참을 노래합니다. 세 번 째는 그 꿈이 변합니다. 이 땅 은 무너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이 다가섭니다. 거기는 유리 같 은 바다가 있고 밤이나 낮이 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있습니다. 제가 30년 만에 그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와 함 께 그 은총의 보좌 앞에 가는 감격을 누려보았습니다. 제가 가야할 곳이 거기거든요. 이 곳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모르 고 살았다가 초청장 받고
'하 나님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생활의 규칙이 가져지더라구요. 과거에 는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별수 없이 먹어야 되었습니다. 그런 데 이제는 혈당이 높아서 음식 못 먹는다고 양해를 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억지로 하루에 1시간씩 운동하려고 애 를 씁니다. 운동 끝나고 나면 혈당 지수가 한 20-30정도 줍 니다. 참 재밌더라구요. 그러니 까 몸 전체의 컨디션이 좋아지 고 건강해져요. 게으르고 바빠 서 운동 못하다가 이제는 운동 안 할 수가 없으니까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분도 좋고 진작 운동할 것을 게으른 놈이 운동 안하니까 하나님께 서 별 방법으로 운동시키신다 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질병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 니다. 고통 속에 주시는 하나님 의 축복은 알 사람이 없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역사 상 주께 영광 돌린 사람들은 대부분 순교를 비참하게 당했 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공과 상관없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여러분, 그렇기에 내가 질병 때 문에 고통받고 고통 당하는 것 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 아니 라고 외면하지 마십시오. 하나 님은 사랑이십니다.

세 번째로 기도가 응 답되지 않을 때 우리들은 하나 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지금 병들자 마자 예수께 사람을 보 냈습니다.
'주여, 사랑하는 자 가 병들었나이다.'
그랬는데 주 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여러 분,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 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지 않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절망감을 갖습니다. 이사야 40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 와께서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 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40:27) 이 세상의 수많은 사건 가운데 내 사건 같은 것은 하나님의 눈에 안띄는가? 그래서 절망합 니다. 아니, 간절히 기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 중에 내 기도는 미약해서 하나님이 귀 를 안 기울이시는가? 이렇게 우리가 좌절할 수 있단 말이예 요. 그것이 아닙니다. 여기 성 경은 참으로 이상한 말씀을 하 십니다. 5, 6절에 이렇게 말합 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 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 을 더 유하시고'

그런데 영어 성경에는 'Therefore'(NASB)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 수께서 이 가정을 사랑하시더 니 이틀을 더 유하셨다. 이상한 말 아닙니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면 그냥 맨발로라도 뛰어가서 허 준처럼 살려내야 될 것 아닙니 까? 그런데 이틀이나 더 유했 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 시오. 주께서 달려가서 그를 병 석에서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 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저를 병 석에서 일으키시기 원하지 않 고 무덤에서 일으키기를 원하 셨습니다. 엄청난 차이 아닙니 까? 엄청난 비교 아닙니까? 그 냥 아픈 자리에서만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죽어서 나흘 되어 썩은 시체, 그 가운데서 일으키 시기를 원했단 말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생애 속에 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 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고 주께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주 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너희 중 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 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 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 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 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 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시는 것 이 아니라 아버지의 좋으신 대 로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이런 일은 우리 생애 속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 다. CCC에 있을 때였습니다. 모일 장소가 없어서 하나님께 건물 200평 짜리 달라고 목이 터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안주시 더라구요. 모든 것이 끝났습니 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 어서 오기가 나서 하나님께 기 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500평 주셔야겠습니다. 그랬는 데 하나님께서 5000평 주셨어 요. 시시한 것은 안주시더라구 요.

남서울교회 초창기의 일입니다. 교인들이 모이기 시 작해서 예배 처소가 필요했습 니다. 그 때 교인이 300여 명 모일 때였는데, 거기에 맞춰서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땅을 물 색하다가 지금 반포 한신 15차 아파트 앞에 큰 정자나무 하나 가 있습니다. 그 옆의 땅, 220 평을 계약했습니다. 계약을 하 고 보니까 그 땅 지분이 어떻 게 복잡하던지? 도무지 우리 것으로 가질 수도 없고 언제 지어질지도 모르고... 일종의 사 기처럼 되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계약금을 떼었습니다. 하 나님의 교회가 손해 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정말 가난한 목사 가 죽을 노력해서 그 손해나는 것을 조용히 갚아 놓았습니다. 그 때는 220평만 되도 300명 모이는 교회는 예쁘게 지을 수 있겠더라구요. 그런데 한 두 달 있다가 어떤 분이 453평을 가 지고 와서 '목사님, 이것은 암 만 생각해도 남서울교회 것입 니다.'하며 거저 주시더라구요. 그것이 지금의 남서울교회 터 입니다. 안주면 더 좋은 것 주 시더라구요. 시시한 것 안주셔 요.

여기 중동교회 때부 터 계셨던 분들 여러분이 증인 입니다. 중동학교가 부도가 났 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그 것을 사라고 종용했기 때문에 사려고 계약까지 다 했습니다. 그런데 중동학교 동창들이 일 어나서 우리 학교는 민족사학 이지 미션스쿨 아니다 반대를 열심히 해서 결국 그것을 삼성 이 사갔습니다. 그 때는 참 마 음이 안좋더라구요. 계획을 다 세웠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셨어요. 서울 시내에 서 이 땅 보다 좋은 땅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요. 그리고 이 건물 주셨어요. 저는 이 건물 볼 때마다 우리 하나님 정말 얼마나 멋쟁이 하나님인가 하 고 생각합니다. 시시한 것 안 주셔요. 안심하세요. 노처녀들 도 안심하세요. 시시한 것은 안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주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좋 으실 대로 주십니다. 기도가 응 답되지 않을 때 절망하지 마십 시오. 기도하는 심령을 하나님 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 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 십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어.'하십니 까?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 드 릴게요. 주께서 말씀하셨습니 다.
'너희가 나를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주 님을 사랑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먼저 사랑하셨 던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사랑 으로만 대답이 됩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연결이 됩니다. 이 세상에 멋진 언어들이 많습니 다. 그 중에 충성이라는 언어도 있고 성실이라는 언어도 있습 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느 냐?'는 말 앞에 '나는 당신을 향해서 충성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대답 아닙니다. 그것은 사 랑 앞에 모독입니다. 당신을 향 해서 성실하겠다는 말, 충성하 겠다는 말은 사랑에 대한 치욕 입니다. 그것 자체는 좋은 말이 지만 사랑에 대한 대답이 아니 라는 말이예요. 주께서 말씀하 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가 큰 사랑을 베풀겠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사 랑하기로 작정하면 그 주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가 날마다 더 알아집니다. 주님 사랑하기를 시작하십시오. 그 때, 우리들은 '주를 사랑하 는 자에게 해가 힘있게 돋아나 게 하시옵소서.' (삿 5:31)하는 드보라의 고백을 알게 될 것입 니다. 또 '우리가 알거니와 주 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 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롬 8:28) 무엇을 이룹니까?
'...선을 이룹 니다.'
그 대목은 좋아하시네 요. 뒤만 좋아하시지 말고 앞부 터 좋아하세요.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 을 입은 자입니다. 고린도 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 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 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 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제까지 본 적 도 없고, 그 소문을 들은 적도 없고, 상상력의 날개를 펴서 하 늘 끝을 가고 온 세상을 돌아 다녀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랑하 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 의 놀라운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처럼 크고 놀라우신 삶으로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사랑으로 나아가십시오. 플렌티스(E. P. Prentiss) 여사 가 전염병이 돌 때,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 잃었습니다. 자녀 가 감기만 들어도 부모의 가슴 이 찢어지는데 전염병에 아이 를 모두 잃고 나서 그가 하나 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여러분, 하 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싶으면 사랑으로 나가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등지고 살았던 삶을 돌 이켜서 사랑으로 나가면 아직 도 포기치 않고 나를 사랑하시 는 그 사랑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 그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찬송가 511장을 우리 함께 찬 양하겠습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 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 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 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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