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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두 제자 비전 (마 09:3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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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끝나가던 1896년 초여름 새벽에 33세 된 한 사나이가 미국 미시간주 자기 집을 개조한 실험실에서 지난 몇 달에 걸쳐 만든 자전거 바퀴에 자신이 직접 만든 2기 통 짜리 휘발유 엔진을 장착하고 4륜 마차의 차대를 얹은 괴물 자동차를 끌고 나와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그는 이 자동차의 이름을 포드1호라고 명명했습니다.(그가 바로 헨리 포드이었습니다) 이 역사적 발명에 대한 축하연이 열렸을 때 그는 인사에서 '앞으로 한 세기 내에(20세기) 미국의 모든 집집마다 한 대씩 이런 자동차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 말만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만일 우리가 대량생산과 생산 기술 혁신을 이루어 낸다면 한 세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국 디트로이트 포드 뮤지엄의 현관 입구에는 '헨리 포드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의 꿈의 결과를 누리면서 교회에 오셨을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꿈을 실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을 견몽이라고 말합니다. 비전과 개꿈의 차이는 비전의 결과가 이웃에 대한 유익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고 비전의 실현을 위한 전략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헨리 포드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비전의 사람(비저나리)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발명의 결과가 이웃에게 축복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활용한 대량생산의 전략을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 세상은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또 한 분의 비저나리(visionary)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일 곧,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받아드리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일을 위해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을 훈련시켜 그 제자들을 재생산하시기로 전략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 비전'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 비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과 제가 그의 제자로서 할 일은 무엇입니까?--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의 마지막 명령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또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명령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순종을 위하여 세 가지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믿습니다.

1.무엇 때문에 열두 제자를 부르셨는가?
9:36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고--' 정치가는 사람을 볼 때 한 표로 보고, 사업가는 돈으로, 의사는 환자로 보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병들고 약한 자들로 보신 것입니다.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민망하다 는 단어는 영어로는 compassion입니다. 상대방의 상태를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합니까? 35절에 의하면 병들고 약해진 상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6절에 의하면 돌봄을 경험하지 못하고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의 상태가 무엇입니까? 목자 없는 양은 방황합니다. 보호받지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쉽게 더럽혀 집니다. 이런 양들의 상태는 목자만 곁에 있어주면 해결됩니다. 목자가 방향을 지시합니다. 보호합니다. 씻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자가 될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방황하는 양들에게 목자 되어 주도록 12제자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즉각적으로 내 한 몸 추스르기에도 힘들고, 나도 상처투성이인데 어떻게 다른 영혼들까지도 책임 질수 있느냐고 할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본문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이일을 순종하여 하고자 한다면 나머지는 내가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10:1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가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그 일 감당할 능력을 주신다는 약속이 아닙니까? 그래서 헨리 나우엔은 이런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을 가르켜 '상처받은 치유자'라고 불렀습니다. 유명한 인도 칼카타의 성녀 테레사가 미국 순회중 자살을 생각한다는 자매와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자매가 묻기를, '혹시 수녀님은 그런 생각을 해보신 일이 없으신지요?'했을 때 테레사는 '저에겐 그런 사치하고 한가로운 생각을 여유가 없습니다. 자매가 정 그런 미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저 있는 인도에 와서 한달 만 저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제의 했다고 합니다.

2.왜 하필이면 열두 제자를 부르셨는가?
이 중요한 사역을 위해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왜 하필이면 12명을 부르셨을까요? 13명도 아니고 120명도 아니고 12명을 부르셨을까요? 저는 숫자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하심에는 분명한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확실한 성경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가 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우선 성경적 의미를 생각해 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12 지파로 나누어 다스린 것이나, 솔로몬 왕이 통일 이스라엘왕국을 통치하기 위해 12관장을 두신 것(왕상4:7)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일찍이 일년을 열두 달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에 보면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갈 새 하늘 새 땅은 모두 12개의 수로 이루어진 나라인듯한 인상을 받습니다.--열두 보석, 열두 기초석, 열두 문--그 위에 열두 지파 의 이름과 열두 사도의 이름을 기록되어 있다고 묘사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열두 수를 대표 수 혹은 충만 수라고 일컫습니다.

더 중요한 의미는 사회적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심리학자들은 소그룹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그룹은 12명 미만이라고 합니다. 12명 이상이 되면 상호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다고 합니다. 저는 초대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킨 저력이 집집마다 모인 12명 미만의 가정교회들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모인 이유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본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하나의 실제적인 이유는 당시 예루살렘 유적지를 보면 부자들만이 2층이 있는 다락방 가옥을 소유했고 그밖의 평범한 가옥들은 10-12명이내의 사람들만 수용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모임에서 세상을 바꾸는 역사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셀목회 연구가들은 이런 12명 이내로 구성된 소그룹 교회를 성경의 기초공동체(basic community)라고 부릅니다. 저는 최근에 이 평범한 12제자 비전을 적용하여 세상을 주목시키고 있는 한 비범한 교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교회의 이야기가 'G12 이야기'로 번역 되었습니다. 마약, 부패, 살인, 게릴라 전투로 알려진 나라인 남미 콜롬비아 보고타에 존재하는 ICM선교교회(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 Church)의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의 지도자는 쎄자르 카스텔라노스 목사인데, 그는 전통교회의 한계를 느끼고 1990년에 셀교회 전환을 선언합니다. 당시에 셀 그룹이 70개였는데 8년만에 24,000개에 달하게 됩니다.(10명이 모이면 24만명)(토요일 청년예배에만 18,000명) 그러나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교회를 통해 이 나라가 변화의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조엘 코메스키가 이 교회를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왜,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에 모입니까?'고 물었을 때 믿지않는 택시기사가 '그 교회가면 사람들이 변화됩니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최근에 이 교회 교인들은 적극적으로 나라의 치유와 변화를 위해 정계로 진출을 시작하고 있다고 알려 집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교회 교인들은 모두가 12제자 비전을 꿈꾸며 살고 있고, 이 교회 목자들은 평균 1년 1회의 셀을 배가하고, 지도자들은 2회이상의 배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12제자 삼기'에 인생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지구촌 식구들이 저와 함께 동일한 12제자 비전을 꿈꾸게 되시기를 도전하고자 합니다.

3.그는 어떻게 열두 제자를 훈련하셨나?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선포하고 가르치시는 일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중적인 방법말고 12명의 소그룹 제자를 훈련시키신 주목해야 할 그분의 방법이 있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그것은 '기도함'과 '함께 함' 이었습니다. 본문9:38에 보면 이일을 위해 먼저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라고 기록합니다. 눅6:12-13에 보면, 그는 밤이 &47583;도록 기도하신 후 12제자를 선택하십니다. 다음 마가3:14에 보면,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었습니다. 함께 하시면서 어떻게 기도하는지, 사랑하는지를, 전도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주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라면 어렵게 느끼실지 모르지만 '기도하고 함께 하는 일'-그것도 못하시겠습니까? 하다보면 저는 여러분이 가르치는 일도, 선포하는 일도 배우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선, 내가 사랑하고 함께 할 12제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교회에서 배당될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들과 마음으로, 삶으로 함께 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것이 제자훈련의 시작입니다. 전부입니다.

어느 소년이 자기 집 근처에 목공 실이 있어서 자주 놀러가서 목수 아저씨가 일하시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소년의 눈에 제일 신기한 것이 있었다면 목수 아저씨의 정확하게 못박는 모습이어서 자기도 흉내를 내어 보았습니다만 빈번히 빗나가 자신의 손등을 때리게 되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와 제가 일하는 차이가 무엇이에요?' 목수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못질할 때 이 못과 네 손을 번갈아 보고 있지만, 난 못밖에 보지 않아!'--이것을 집중의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음악가(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요 작곡가) 루빈스타인에게 누군가가 '당신의 성공의 원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뜻밖에 '무관심이지요'했답니다.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그에게, '난 음악이외의 모든 다른 일에 무관심하기로 했습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직 음악에만 열중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 에 오신 목적은 한마디로 제자 삼는 일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목회도 이제 오직 한가지 목표에만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즉,'셀교회를 통하여 제자 삼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외 없이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 드라마에 참여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물론 우리가 목자가 되고 목장 사역에 참여한다고 해서 갑자기 하늘에서 축복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약속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서시는 그 날 후회 없이 인생을 마무리하며 하늘의 영원한 상급을 받으실 것을 약속해 드릴수가 있습니다.--자, 그러면 열두 제자의 비전을 함께 꿈꾸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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