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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년과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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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과 7범.

지금은 리어카를 끌고 주택가 골목마다 그리고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고물들을 사다가 고물상에게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는 쉰 일곱의 중년노인.
그는 오늘도 무거운 고물들이 실린 리어카를 끌고 비탈길을 힘들게 오르고 내리면서 어렵게 이만여 원을 벌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살 난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에 돌아온다.

집이라야 낡고 허술한 가구 몇 가지가 방안을 차지하고 나면 둘이 바듯이 누울 수 있는 단칸방이다.
집에 돌아오면 여느 때처럼 그는 피곤한 몸으로 바쁘게 빨래하고 밥짓고 반찬을 만드는 등 아들을 위해 어머니 역할까지 해야만 한다.

얼마 전까지 만도 그에게는 여생을 같이 살고싶어 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들의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을 보고는 아들의 대학교육을 위해 저금해오던 통장을 털어 그녀에게 주고 헤어졌기에 그는 오늘처럼 어머니 역할까지 해야만 한다.

아들은 친아들이 아니라 담 밑에 버려진 아이를 주어다 키운 아들이었다.
그날 밤은 무척 추운 겨울밤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양공주가 약이 없어 사경을 헤메는 것을 보고는 그는 또 한 번 미군 PX 털이를 위해 담을 넘기로 결심했다.

깊은 밤 담을 막 넘을려는 때 담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내려와 그는 담요에 싸인 어린 핏덩이를 발견한다.
태어난 지 두 세 시간 된 것으로 짐작했다.
그는 거사를 포기하고 바로 아이를 집에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

우유로 키우고 때로는 심청이 아버지처럼 젖을 얻어 먹여 키우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삶도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수 없이 다짐하면서도 결국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미군 PX 담과 교도소 문을 계속 번갈아 넘나들던 그의 삶은 아기를 키우면서 미군 PX 담을 넘는 유혹을 쉽지는 않았지만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가 교도소에 가게되면 그 아이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주는 책임감은 옳게 사는 길을 쉽게 알려주는 것일까?
아들이 커감을 보는 것이 그에게는 유일한 기쁨이요 보람이다.
올해는 아들이 자신의 최종 학력인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내년부터는 자신보다 학력이 높아질 것을 생각하니 그는 기뻤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이 가끔 불안감으로 무거워지는 때가 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것이 요즈음엔 전과 같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욱 힘에 부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렇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힘에 겨웁더라도 감당해 나갈 수 있는데 자신이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할 때면 더욱 그렇다.
아들을 대학에 보낼 때까지는 아프지 않아야 될텐데... .

그때까지 과연 기력이 남아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 이런 걱정보다 훨씬 감당하기 어렵게 그의 마음을 슬프고 아프게 하는 것이 있다.

지난 가을 학교 체육대회 때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가 함께 와 어머니가 만들어 준 김밥을 먹지 못하고 아들이 소세지 반찬으로 된 도시락을 먹는 것을 보고서는 그는 학교 화장실에서 홀로 얼마나 울었던가!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오랜 망설임 끝에 아들에게 그 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해주기로 결심하게 된다.
행여나 아들이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될까 보아 그는 수십년 살아온 정든 곳을 떠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머니를 찾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가슴속 깊이 밀려드는 슬픔과 외로움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많은 시간 수 없이 홀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는 아들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보다 그에게 더 소중하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그 날밤은 10년 전 추운 겨울밤에 미군 PX 담을 넘으려다 담 밑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던 날, 아니 그가 아들을 갖게 된 날이었고 그는 이날을 아들의 생일날로 정했다.

노인은 오늘 아들의 생일날을 기념해 주었다.
어둠침침한 전등불빛 아래 낡고 허술한 가구들로 둘러싸인 좁고 누추한 단칸 방안에서 노인과 어린 소년이 낮고 자그마한 상위에 열 개의 촛불이 박힌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노인의 애잔한 눈길은 오늘따라 정이 더욱 그득하다.
이윽고 노인이 무겁고 쉰 듯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깊어 가는 겨울밤 적막감 속에 노인의 목소리뿐 아니라 들릴 듯 말 듯한 소년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그가 언제부터인가 울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의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는 차츰 슬픔을 억제하기 힘든 듯한 흐느낌으로 커지면서 노인의 가라앉은 무겁고 쉰 목소리와 섞이어 침침한 불빛아래 방안을 슬픔으로 무겁게 가득 채우는 듯 했다.

얼마 후 노인은 일어서더니 낡은 장농 깊은 곳에서 소중하게 간직했던 듯 싶은 물건을 꺼내 아이 앞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담요였다.
그 날 추운 겨울밤 어린 핏덩이를 감싸준 담요였다.
노인은 그 담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언젠가 아이의 어머니를 찾아줄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되리라 믿으면서.

담요를 바라보는 소년은 슬픔을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던지 흐느낌은 슬픔에 복 받힌 울음이 되어 방안을 메운다.
얼마나 울었을까?
노인은 이윽고 소년에게 어머니를 찾게되면 어머니와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듯 하다.

소년은 울먹이며 단호히 고개를 내 젖는다.
긴 세월 지난 삶의 온갖 고달픔으로 깊게 패인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한 노인은 소년더러 자신의 무릎 위에 앉으라고 한다.
노인은 그의 무릎 위에 앉은 소년을 꼭 껴안는다.

운명이 그리고 사회가 가없이 착한 이들의 삶에 지운 그 모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마저도 그들의 포옹 속에서 녹아 내리게 하려는 듯.
어느 듯 소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온다.
갑자기 방안도 밝아지면서 방안의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듯하다.

-생일 선물인 아기 곰 인형도 미소짓는 듯 -

포근한 겨울밤이 깊어가고 있다.
창 밖은 하얀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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