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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고가는 새해 (마 0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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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가는 새해(마8:5-13)

우리는 지금 묵은해를 보내고 소망의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장을 열 때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대를 갖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좀 더 나아져 보려는 희망이요, 다시 시작해 보고픈 열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새로움의 변화가 없다면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을 때 무의미한 존재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양속담에도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새해를 맞은 성도 여러분들이여! 새해는 지난해보다는 새롭게 변화된 새로운 인격,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정신을 가지고 출발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첫 출발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다'는 말처럼 출발이 잘못되면 그 과정과 결과도 잘못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인생문제는 더더욱 출발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년을 맞은 이 첫 시간에 우리의 출발이 인간적인 조건과 판단을 앞세운 출발이 되지 말고 우리를 부르신 이의 뜻을 좇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새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새사람이란 옛사람의 구습을 청산해 버리고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쌀쌀하고 교만하고 내 멋대로 살던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된 후로부터는 옛 친구들로 깜짝 놀랄 만큼 겸손하고 부드럽고 명랑한 사람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새사람이 갖는 새로운 품성입니다. 그래서 고후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다시 새롭게 창조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우리의 심령은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지음받은 상태로 변화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참된 변화는 먼저 마음에서부터 변화가 와야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결코 생활의 변화가 찾아오지 않거나 혹 찾아 왔어도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내 쏟아 엎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축복의 기회가 찾아오지 아니해서 어렵게 사는 가정도 있지만, 축복의 기회가 왔어도 그 사람의 수용하는 자세가 바로 되어 있지 않아서 축복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먼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심령의 변화를 먼저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변화를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반성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근본 마음의 상태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바뀌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까지 육체를 중심으로 한 모든 가치관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겠다는 가치관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했던 모든 생각을 버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헌신하는 자세의 변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진정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과거에서 탈피하여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과거의 모든 생각, 가치관, 세상적인 안목을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결단이라 함은 한쪽을 끊어 버리고 한쪽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맺고 끊는 결단이 없는 고로 항상 신앙의 모습이 분명치를 못함을 목격합니다.
계3:14에 보면 말세교회의 상징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하고 말씀했듯이 주님은 미지근한 신앙, 물에 물탄듯한 형식적인 신앙의 모습을 책망하시면서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었는'데 주님은 바로 말세에 속한 그의 성도들에게 '아멜신앙' '충성신앙' '참된 신앙' 증인의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새해의 여러분의 신앙은 바로 '아멘이 분명한 신앙' '충성이 분명한 신앙' '예수의 참된 증인의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인물은 잘 생긴 사람도 아니고 재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권세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믿음 있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 위에 주를 위해 살려는 사람은 많고 많았지만 정말 믿음으로 사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반드시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시고 믿음으로 사는 자를 그 시대를 주역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까 주님이 깜짝 놀라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자칭 선민이라 일컫는 유대인도 아니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서기관 제사장에게서도 아니고 전혀 타인이요 이방인이었던 무명의 백부장에게서 큰 믿음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믿음이 없는 불신의 시대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신분이 있고 역할이 있고 본분이 있는 법인데 어찌된 일인지 물질에 대한 욕심과 자기 이기심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제 신문에는 멀쩡한 주부들이 윤락행위를 했다해서 잡혀 들어갔습니다. 남편들이 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조그만 물질의 욕심 때문에 자기 가치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과거에 대도라고 일컬었던 조세형이란 사람이 회개하고 새사람 되었다고 한참 떠들더니 며칠전 일본에서 다시 절도하다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간 사회의 이런 불행과 실패는 다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믿음이 없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심각한 고통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오늘 우리 개인이 사는 길, 우리 사회와 민족이 사는 길은 다른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워질 줄로 믿는 믿음을 갖고 행할 때 비로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머리의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오늘의 크리스찬들이 아는 것은 많은데 믿음의 행함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도, 역사도, 기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기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고급 지휘관으로서 유대에 파견된 치안 부대의 일원으로 당시로서는 권세 있는 직업 군인이었습니다. 그의 신분상 사람이 교만하고 안하 무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일개의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간구하며 도움을 요청한 모습에서 그의 겸손한 인간 됨됨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백부장이 큰 믿음이 있기 전에 큰 인격이 있었습니다. 큰 사랑이 먼저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분명히 하인을 사랑하는 인간애에서 나온 믿음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탕이 되어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3장2절에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믿음이 없다는 것은 곧 참사랑이 없다는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여기 백부장의 이와 같은 종 하나에게 쏟은 그 사랑이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이와같은 믿음으로 한 해를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말씀의 권능을 믿은 신앙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만 우리의 귀에 명언이나 교훈이나 좋은 말로만 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내가 죽고 사는 인생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 말씀을 굳게 의지할 때 여기에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권능을 얼마큼 내 마음속에 받아 드리고 신뢰하는가? 가 바로 믿음입니다. 여기 백부장은 말씀대로 될 줄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새해를 살아간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런 분명한 믿음이, 이런 말씀의 확신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백부장은 말씀의 권능을 믿었기 때문에 말씀만 주시면 내 하인이 나을 것인데 집에까지 수고하시면서 오실 것 없습니다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주의 종의 안수기도를 받아야만 병이 낫는 줄 알고 어느 기도원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던 안수를 받지 못하고 매우 낙심천만하게 앉아 있는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 백부장의 믿음은 말씀의 권능을 믿은 신앙이었습니다.

2. 백부장의 믿음은 시중을 초월해서 고쳐 주실 것을 믿은 신앙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요청에 대해서 주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하였습니다.
백부장은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집에까지 가시겠다고 하니까 너무나 폐를 끼쳐 드리는 것 같아서 겸손하게 사양을 합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만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하였습니다.
여기 백부장은 주님이 어디계시든 말씀만 하시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나을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는 백부장이 예수님의 전능성을 믿은 신앙이었습니다. 여기 이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시간이 문제가 아니요 거리가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곳의 나의 가족을 생각하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곳의 나의 가족을 붙들어 주시고 혹 가족이 위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록 거리가 멀고 갈수가 없어도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시고 그 위경에서 건져주십니다.
그 백부장이 이런 훌륭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 데에는 그가 어떤 신학 공부를 해서 깨달은 지식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에서 깨달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에 어떤 공식이나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갖게 하는 동기는 우리 생활 주변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 백부장은 자신의 군 생활 속에서 믿음의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9절에 보니까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또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하였습니다. 이 백부장의 말속에는 아주 평범한 일상적인 생활을 말한 것이지만 거기에서 귀중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업이 군인입니다. 군인의 생명은 명령과 절대복종입니다. 명령을 생명처럼 여기고 상관의 지시를 따라 행동합니다. 이처럼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 드리겠다는 자세였습니다. 군인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듯이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기만 하면 그 말씀이 어느 곳에서든지 역사 하심을 믿었고 말씀으로만 '낫겠다'고 말씀하시면 자신의 하인의 병도 즉각적으로 나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백부장이 가진 믿음은 복잡한데서 찾은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도 평범한 데서 깨달은 것입니다.
흔히 기도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청중을 의식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 보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의 영의 아버지께 내 마음의 심정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마치 자녀가 아버지에게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는 지금 여러 가지 인생문제, 경제문제등으로 인해서 험산준령을 넘는 듯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말씀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새 날을 향해 도전하는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여기 백부장처럼 말씀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들은 마음이 뜨거워지고 위로부터 주시는 힘을 체험하고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올라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백부장에게 있었던 '이만한 믿음'이 올 한해에도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이여!
새해에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축복된 한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해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월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이 한해에 분명히 나의 영육을 주장하시고 축복해 주리라는 긍정적인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믿고 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5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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