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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매일 매일 결심하며 사는 새해 (마 26: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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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결심하며 사는 새해(마26:31-35)

유명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결심을 하고 실행한다는 공통성을 발견 할 수있습니다. 미국 이리노이즈 한 지방의 농장에서 흑인들이 백인들의 채찍에 매를 맞으며 혹사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그 광경을 보고 '언젠가 기회가 오면 저러한 노예 제도를 없애리라'고 하며 굳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흑인 노예해방을 이룩한 링컨대통령입니다.
일제치하 때의 일입니다. 평양 대동강 모란봉에서 도산 안창호선생이 연설을 하고 있을 때 거기 한 사나이가 참예하였습니다. 그 밤의 연설속에 그 사나이는 굳게 결심을 하였고 다음 날 그는 머리를 삭발하고 도산선생을 찾아와 자신이 나라를 위하여 살겠노라고 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오산학교를 창설하고 33인의 민족의 대표중 한사람인 남강 이 승훈장노님입니다.
감리교파의 창시자인 영국의 웨슬리 목사는 1738년 3월 2일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결심을 한바 있습니다.
1. 말을 주고 받는 모든 사람에게 흉금을 다 열어 놓고 간격없이 할 것.
2. 언제나 진실하도록 힘쓰고,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가볍게 행동하거나 떠들썩하게 웃어대며 지꺼리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아니, 잠시라도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할 것.
3.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는 말을 하지 말 것. 특히 세속에 관한 것을 말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말할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무슨 소용이 있는가?
4.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은 쾌락을 피할 것. 자기의 받는 쾌락은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는 모든 쾌락을 거부하도록 할 것.

여러분, 이상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우십니까? 결심의 중요성과 실천성입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금 여러분들은 각기 나름대로 크고 작은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한 해를 시작하고 계실줄 압니다.
늘 새롭게 결단하고 결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좀 더 나은 삶으로의 향상을 위해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짐승에게는 미래발전을 위한 꿈이나 자기들 세계의 향상과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한 새로운 도시 예술 기계 등등의 발명을 위한 연구와 계획 그리고 결단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움직여 가는 인간존재의 한 복판에는 의지가 있고 이것이 결심을 만들면서 삶을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심은 삶의 추진력이요, 목표요, 에너지인 것입니다.
아프리카 흑인의 친구로 불리우는 슈바이처박사는 21세 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습니다. '30세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공부하자. 30세 이후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바치자'라고. 청년 시절에 이렇듯 봉사의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30세가 된 그는 아프리카를 위하여 필요한 것은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 슈바이처박사는 이미 신학교수이며 목사이며 파이프올겐의 대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위하여 의사공부를 시작할 것을 결심합니다. 30세부터 6년간 정식으로 열심히 의학공부를 합니다. 물통을 발밑에 갖다놓고 발을 담궈가며 공부를 하는 그의 열심은 굉장합니다. 그는 드디어 정식 의사가 되어 마침내 아프리카로 가서 사랑의 성자가 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계획과 결심을 가졌겠지만, 특별히 신앙인으로서도 여러가지 결심을 하였을 것으로 믿습니다.
신앙적 결심의 구체적인 것들은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그 본질은 아마 다 같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 부인하지 않고 늘 동행하며 따르는 삶, 그리고 예수 닮아 가는 신앙의 인격으로 사는 삶을 결심하였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말씀도 읽고 기도하고 선행도 하고, 전도하려는 결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결심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성공자가 많지 않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성자가 많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갈등이 있습니다.
차라리 결심안한만 못한 후회와 좌절과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여러분들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음으로, 항상 끊어야 되겠는데, 끊어야지 결심하면서도 계속 담배와 술을 놓치 못합니다. 이 때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신앙적으로도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면 안되지 하면서도 자꾸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비참함을 느낍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속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좋은 결심과 결단을 하게 됩니다.
31절에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3절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35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또한 요 13:37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결심이 대단하고 장담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몇시간이 못되어 이 결심은 무참히도 무너지고 맙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뿐아니라, 저주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늘 주님앞에 나와서 말씀듣고 기도할 때면, 주님을 따라서 어디든지 가겠으며,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던 우리가 문밖을 나서면 아주 값싼 일들에 주님을 부인하고 오히려 저주 정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서슴치 않는 우리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가 그렇게 결심이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역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의 결심을 어떻게 지속시키고 실천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 예수 부인하지 않고 따라가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히 생각지 못하고 호언장담했기에 그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결심하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지불해야 될 댓가가 무엇이라는 것을 깊히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댓가를 지불하고, 희생과 수고와 장애를 예상치 아니하고 이루어지는 결심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따라 가는 길이 영광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를 져야 할 고난스러운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을 아주 쉽게 생각하고 치뤄야할 댓가를 무시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 20:20-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우편에 좌편에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요11: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닮아 가는 삶, 예수믿고 그를 따라가는 삶!
아주 아름답고 선하고 거룩하고 좋은 삶입니다. 그러나 그를 위하여 치뤄야 할 댓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계산에 확실히 넣어야 합니다.

올 한 해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미워하고 갈라서고 다툽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렇고, 저래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줄을 몰랐다는 말입니까?
친하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허물없이 내가 한 이야기를 뒤에서 하고 다닐 줄을 몰랐단 말입니까?
사랑하겠다는게 좋고, 사랑할만할 때만 사랑하겠다고 한 것입니까?
사랑하겠다고 시작한 내가 과정도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하며 살기로 결심했으면 끝까지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중간에 가면 꼭 변질됩니다. 그리고 말이 많습니다. 이래서 순종못하고 저래서 순종못하고!
그런 것도 예상 못했으면 왜 순종하겠다고 했습니까?

약자는, 패자는 항상 변명이 많습니다. 잘못됐으면 깨끗이 회개하고 다시 결심하고 시작할 일인 것입니다.

내가 결심하는 내용이 무엇이며 어떠한 희생과 수고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예)결혼 맞선이야기-많은 경우 결혼하면 사랑과 행복이 샘솟을 줄 생각합니다. 사실 행복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기 위하여 땀과 눈물과 때로는 피를 흘려야 하는 수고도 해야한다는 것을 예상하고 각오해야 합니다.

2. 베드로의 결심이 무너진 이유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연약함을 몰랐기는 커녕 쓸데없이 매우 교만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2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아 그렇습니까? 저는 너무 약합니다.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약합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는 착각했습니다. 말하고 결심하면 그것을 이루는 힘이 자신에게서 온통 나오는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니 남들은 그렇게 되지 못할 것으로 은근히 정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습니다는 것입니니다.

(예)어떤 믿지 않는 사람과 대화해보면/// 만약 내가 한 번 믿기 시작하면 누구, 누구보다는 더 잘 믿을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믿을 바에야 뭐하러 믿겠냐는 것입니다.
또, 조용하게 믿는 사람은, 왜 저렇게 광신적으로 믿는가라고 은근히 마음속에서 정죄합니다.
좀 요란하게 믿는 사람들은 조용한 사람들을 미지근한 신앙이라고 나무라면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믿음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남을 정죄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법입니다. 또한 정말로 주님 따라가고 사랑하며 믿으며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남을 쉽게 정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다보면 내 결심에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도 저렇게 하는데!
베드로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 21:20을 보십시요.
예수께서 베드로가 순교하면서 까지 자신을 따라오는 제자가 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듣고 요한에 대하여 주님께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순교할텐데 저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남 신경쓰다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나만 따르라는 것입니다.
내가 단독으로 하나님 앞에 결심하고 약속했으면 남이야 어찌든지 결혼식 서약처럼 신성하게 붙잡고 내 삶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어찌든지 나 주님의 용사되리
나는 주의 군사되어 충성을 맹세하여
내가 승리하기까지 주 은혜로 싸우리
주의 용사된 나에게 주의 일 맡기소서'

결코 남을 신경쓰지 마십시오. 천인 내 옆에서 넘어지고, 만인이 주님을 등져간다고 해도 나만은 주님따라가는 삶을 겸허히 살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순종과 봉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3. 무엇보다도 결심에 대하여 기도의 뒷받침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없는 용기는 만용인 것입니다.
죽기까지 주님을 따를 수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할 수 있는 운명의 그 밤에 주님은 겟세마네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주님말씀하십니다.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우리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음에는 결심하는데 육신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때에 육신때문에 못하는 이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하고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없이 위대한 신앙인, 위대한 성자가 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마가다락방에서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고 매사에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나서야 그는 진정 주님의 양을 먹이고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서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공회에서내가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너희 말을 들어야 하는가 판단하라고 하면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의 결심선언을 들어보십시요.
수 24:15-16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그러나 변질되엇습니다.
그 결단과 결심을 이어가지 못하였기에!

밀(영국의 철학자)은 말하기를 '어제 맨 끈은 오늘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풀어지기 쉽다. 날마다 다시 끈을 매어야 하듯 사람도 그 결심한 일을 나날이 거듭 여미어야 변하지 않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늘 기도로 여미고 말씀으로 여미어서 아름답게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저 유명한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부드 대장의 결심을 들으시면서 오늘의 말씀을 끝맺으시겠습니다.

그는 20세의 청년시절 곧 1849년 12월 6일에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에 의해 다음과 같은 일을 약속합니다.
1 . 매일 아침 될 수 있는 한 일찍(7시 20분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적어도 5분 동안 혼자서 기도할 것.
2. 최근, 저지르기만 할 뿐 쓸모없는 잡담의 죄를 될 수 있는 한 피할 것.
3 . 세상 사람들 앞에서, 더우기 동료들 앞에서, 피흘리신 어린 양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겸허하고 부드러우며, 또한 열심히 행동하고,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영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4 . 매일 성경을 넉 장 이상 읽을 것.
5 . 하나님께로 더 한층 가까이 다가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며, 마음의 깨끗함을 구하고 그 뒤는 섭리하시는 손에 맡길 것.
6 . 이 결의서를 매일 또는 적어도 한 주간에 두 번 되풀이 해서 읽을 것.

이제 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베드로처럼 이스라엘처럼 결심이 무너지는 새해가 아니라 결심한대로 살아가는 새해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대의 슈마이처요 요한 웨슬레요 윌리암 부드가 되도록 우리의 결심을 매일 매일 상기하고 하나님께서 결심을 실행할수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며 사는 새해가 되기를 다 함께 기도합시다.

 (2005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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