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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남편의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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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틈만 나면 바랑을 챙겨 집을 나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남편을 이해 소소한 먹거리를 챙기고 커피까지 끓여 보온병에 담아 주는 속없는 여자다. 남편의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등을 떠다밀어도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한 때였지만 나는 남편의 애인과 한 방 거처를 하며 한 삼 년을 같이 살았다. 외출했다 돌아 온 남편이 제일 먼저 눈길은 보내는 것도 그 여인이요 부드러운 눈빛으로 포옹을 하는 것도 그 여인이 먼저였다. 내가 괜히 민망스러워 하면 마지못해 내게는 잔 부스러기 눈빛만 보내 줄만큼 남편의 사랑은 지극했다.

다리를 아주 거만하게 꼬고 방석까지 음전하게 깔고 앉은 그 애인은 한낱 돌덩어리일 뿐, 그 모양새는 누가 봐도 후덕하게 생긴 여인의 모습이었다. 둥글넙적한 얼굴은 심성이 순해 보이고 잘쑥한 콧날은 순종적인 여인네였다. 보리통한 입매가 어찌 보면 속 고집도 있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도톰한 입술이 보면 볼수록 육감적이었다

남편은 그 여인네의 도톰한 입술에 매료된 걸까 아니면 순한 눈매에 끌려 우리 집 안방으로까지 끌어들인 걸까 사방 벽을 온통 다 차지한 돌 틈에 끼워둬도 좋으련만, 남편은 굳이 따로 자리를 마련해두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퍼부었다. 그것은 맹목적인 사랑이어서 누가 말려도 될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바랑을 챙겨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이면 거의 매일을 나다니는 남편이 못마땅했던 나는 순간적으로 심사가 꼬여 불쑥 한마디 던지고야 말았다.

'어디 이쁜 색시 하나 얻어 놨수?'

장난처럼 던지며 운을 떠 봤더니 남편은 아주 태연하게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
라고 했다.

그 날 저녁, 남편은 정말로 참한 색시 하나를 신주단지 모셔오듯 보듬고 대문을 들어섰다. 수돗가에 내려놓고 물을 틀어 구석구석에 끼인 때를 씻기고 바르고 해서 안방으로 들여놓았다. 한낱 돌덩어리로 보이던 게 이게 무슨 일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분명 사람의 형태였다. 그 날, 나는 그 돌덩어리를 남편의 애인이라 이름 지었다.

사람의 모양새를 닮은 돌덩어리를 방에 들여놓고 돌아앉기도 전에 그 돌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소문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 그 돌덩어리를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다. 대부분 수석 전문가이기도한 사람들이 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손을 보면 아주 멋진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즉 낮은 콧대를 조금 높이고 눈매도 조금 크게 파헤치고 목도 조금 더 가늘게 하면 아주 현대적인 미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귀가 얇은 나는 나는 남편과 한마디 의논하지 않고 내 맘대로 그 돌덩이를 내 주고 말았다.

며칠 후 우리 집에 다시 돌아온 그 돌덩어리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그저 수수하고 수더분한 모습은 간 곳 없고,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다 돌아온 다 닳아빠진 사람의 형태가 되어 있었다.

가늘고 날렵한 콧날, 가느다랗던 눈도 굵고 깊게, 도톰하던 입술은 얄사하게 변했고 짙은 눈매도 가느다랗게 깎여졌다 전체 몸뚱아리도 매끌매끌한게 촉감도 아주 좋았다. 이목구비가 하도 또렷해서 사람의 혼을 불어넣으면 단단한 몸을 일으켜 세울 것처럼 느껴져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날 것도 같았다.

그 밤에 결국 남편에게 버림받아 갈데 없는 신세가 된 돌덩어리를 보며 나는 마치 시앗을 본 큰마누라가 시샘하여 결국은 밖으로 쫓아 낸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낱 돌덩어리일 뿐이었던 그 여인은 오늘도 수돗가 한 귀퉁이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볼품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들며날며 보던 돌덩어리를 밖으로 들어낸 그 이튿날부터 남편은 또다시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바랑을 짊어졌다. 남편이 구하러 다니는 것은 무얼까? 차츰 남편의 속내가 궁금했다 남편이 찾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며 하루 종일 강가를 헤매 얻는 것은 무얼까?

황혼 무렵의 강이 떠오른다. 그날도 우리 부부는 말없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돌들은 물에 의해 각을 잃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정한 부부가 서로 닮아가듯 좋은 돌들은 자연과 닮아 있었다.

자연이 주는 비, 바람, 물, 그리고 세월, 그 집요한 애무에도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는 남편의 굽은 등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잔잔한 물살을 헤적이며 가라앉은 돌을 건져 올리는 일은 다만 몸짓일 뿐, 남편의 눈은 그저 세월을 떠나 보내는 일에 빠져 있었다. 남편이 찾고 있는 것은 한 낱 돌덩어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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