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1-구레네 시몬 (막 15:15-23)

첨부 1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생일잔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데 요즈음 크리스마스에는 예수님이 빠지고 손님들만 있는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주인공인 예수님을 찾고자 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세명의 남자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이유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고 예수님을 만날 확률이 제일 없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가 예수를 믿기 어려운 이유는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우리민족의 종교적 뿌리는 무속입니다. 예수 믿고 기복신앙을 갖게 되는 이유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무속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매스미디어를 보면 점 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의 민족정서와 잘 맞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5천년 동안 불교를 믿어온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따져보면 불교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에 젖어온 민족입니다. 우리는 예수하고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와 우리가 관련을 맺은 것은 카톨릭을 포함해도 2백년 정도의 기간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힘든 배경에서 자라났는데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교회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이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선입견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입은 상처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에 대한 거부반응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믿게 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지식인이고 석학들이기도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예수는 2천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음악은 다 예수로 인해 비롯었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예술과 역사까지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빼놓고 역사와 예술을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소크라테스나 석가를 위해서 죽은 사람 보았습니까?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 이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은 줄을 서 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는 생명을 바치지 않습니다. 철학을 위해서 직업을 바꾸고, 전공을 바꾼 사람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는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위해서 죽고 싶고, 그분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태양이 없다고 믿는다고 해서 태양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믿지않는 사람만 손해를 볼 뿐입니다.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니체가 죽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태양이 없다고 한다면 땅 속에 들어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태양의 혜택을 못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뿐입니다. 그분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그분을 믿는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이유중 하나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누군가에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분에게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죽지 않았다면 내가 그분을 위해서 죽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사랑에 끌려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무서운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부모가 포기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포기할 수 없으셨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참 신비롭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은 잊지를 못하고 그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적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은 완전히 구분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잊지 못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에게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를 잊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의 인생은 불안하고 행복이 없습니다.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알고 싶다면 ‘희생’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고 손해보는 것도 없으면 사랑의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미명아래 상대방을 이용해서 쾌락을 누리고 자기를 만족시키는 것뿐입니다. 진짜 사랑은 희생하고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 사랑하셨습니다. 그 만큼 우리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를 만난 기적

또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이유는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여러분 모르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3간년 살 때 마이클 그린이라는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해서 거기서 평생을 한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 뉴스를 보았을 때부터 한국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에 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생동안 하나님이 한국을 위해서 기도를 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잘 살게 된 것이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매인바 되어서 하나님께 이끌려 가는 것을 가르켜 성경에서는 선택받았다고 합니다.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 말은 무척 기분 좋은 말입니다. 사람에게 선택받은 것도 좋은데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던 3명의 사람 중 구레네 시몬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1∼23절을 보십시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아들이 있는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구레네 사람’이라는 말을 통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골 사람입니다.
그는 우연히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는 쓰러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채찍을 맞고 상처를 입어 탈진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에서는 죄수가 십자가를 처형장까지 가져가야 했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이상 십자가를 질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로마병정이 건강한 사람 구레네 사람 시몬을 택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그는 억지로 쳐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갔습니다.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사람이 많은 곳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끝까지 십자가를 가져 갔다는 데서 한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는 꾀병을 앓거나 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을까요?
저는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는 이미 매를 맞아 피투성이에다가 멍이든 처참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만일 그 자리에서 그분을 봤다면 처참하게 상한 그의 얼굴에서 거룩과 순결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눈동자 안에는 인류의 죄를 지고가는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분의 얼굴과 눈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의 얼굴,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고 탈진했던 그 예수, 그러나 그 예수의 얼굴에 나를 향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미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그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작은 신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이 순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해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기도해도 됩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이런 말로도 하나님은 기절하실 만큼 놀라고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성경에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거부반응만 버려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그래 하나님이 계실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지나온 나의 삶을 보면 그렇게 하나님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예수님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 믿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알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저는 제 인생이 고독하고 자살하고 싶습니다. 허무합니다. 저는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리 지르고 분노하며 살지만 평강이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같이 가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