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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2-십자가 상의 두 강도 (눅 23: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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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제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시몬은 예루살렘에 왔다가 굉장히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 젊은 청년이 십자가형을 받는 현장입니다. 옷은 갈기갈기 찢겨졌고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있어 얼굴에는 피가 흘렀습니다. 그는 채찍에 맞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이미 채찍에 맞아서 기운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이 없었습니다.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은 예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예수가 쓰러져서 십자가를 질수 없게 되자 로마군인들은 길거리에 서 있는 건장한 청년 시몬을 잡아다가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이 청년이 십자가를 강제로 지게 됩니다. 그는 골고다 언덕까지 그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특이한 일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옆에서 따라오는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엉겁결에 십자가를 지게 된 시몬의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어쩌면 시몬은 힘없이 초라해진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속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그분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에 그 마음에 순식간에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힘이 그 사람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이 청년으로 하여금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가게 했습니다.
이 구레네 사람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연히 시골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처형장면을 목격하고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진짜 축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

그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는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지만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인류역사상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한 사람은 예수외에는 없습니다.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 위대한 예술가, 음악가 등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이라고 했다면 정신병자입니다. 혹은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알면서 하나님이라고 말했다면 그는 사기꾼일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 진짜 그는 하나님이어서 하나님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분은 진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분을 위해 죽기로 결정한 사람, 그분을 따르기 위해 헌신되어 있는 사람이 줄을 서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바로 크라이스트(christ)와 마스(mass)입니다. 마스는 쉬운말로 미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미사는 곧 예배입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배하는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분은 마굿간에서 태어남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중에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해도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보면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낮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여기에 그분의 하나님 되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붙잡힌 여인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맛보았습니다. 우리가 겪어야 할 질고를 대신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를 만난 사람들마다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만난 사람들의 특징

예수만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늘의 평강을 갖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하셨습니다. 돈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고 성공한 것도 아닌데 예수 만난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진이 나고 전쟁이 나고 폭풍이 몰아쳐도 마음에 평강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찾아볼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길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예수를 만나서 평강을 누리며 방황의 끝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길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영혼을 괴롭히는 것은 ‘죄의식’입니다. 현대인들은 거의 모두가 우울증 환자이고 정신병환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비슷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라는 정신질환입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자신의 죄가 씻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새 옷을 입은 듯 합니다.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믿으면 공연히 자신감이 생깁니다. 뻔뻔하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예수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 기가막힌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죽으면 천국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보지 않았지만 천국은 내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것이 조금 더 깊은 사람은 죽음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 그분은 놀라운 분입니다.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귀신이 놀라 떠나갑니다. 죽음과 어둠이 떠나갑니다. 이런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던 그 남자가 경험했을 것입니다.

조롱과 멸시속의 예수

저는 오늘 또 하나의 행복한 남자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2절을 보십시오. 오늘 소개할 사람은 한 강도입니다. 이 사람은 일평생 강도짓을 했던 사람이었는데 십자가에 처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해골이라는 곳에 와서 예수와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십자가형이라는 것은 죽음의 모든 방법중 가장 파괴적인 것이 십자가형이었다고 전해줍니다. 이렇게 십자가형은 잔인한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도 십자가에 못박히고 두 강도도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 고통중에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쌔

예수님은 고통중에 고통을 하소연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가 없으신 그분의 기도이며 고통을 당하신 그분의 기도입니다.
35절을 보면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은 비웃었고 군인은 희롱하여 신포도주를 먹이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달린 행악자 중에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구원하라 하되

백성들과 관원들, 군인들, 십자가에 달린 강도 한명은 모두 조롱과 비방과 비웃음과 비난을 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류가 예수를 향한 태도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며 비판하고 조롱할 때 단 한 사람이 정 반대의 의견을 말합니다.
40-41절을 보십시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 사람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행복한 사람을 우리는 연구해야 합니다. 이 남자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나쁜 짓을 했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행복한 강도

또 그는 죄에는 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그는 예수를 알아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그 강도는 자신이 죄인인 것과 예수가 죄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구원받게 된 이유는 구원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구원을 요청하기를 축원합니다.구원을 위해는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요청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강도는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그는 날강도, 사기꾼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예수를 만난 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립니다. 저는 황충이 먹어버린 기억하기조차 싫은 여러분의 상처투성이의 죄책감의 과거가 모두 잊혀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보는 순간 모두 잊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합니다. ‘나를 기억하십시오’.
사실 참으로 뻔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의 요청, 외침, 갈망입니다. 소경 바디메오도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자존심도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은 공부나 선행, 기도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 말을 듣자 마자 예수님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마지막 순간에 이 사람은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그의 생애가 어떠했든지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평생 나왔어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구원을 요청하고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나는 그런 분이 여기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기억하십시오’예수님께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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