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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3-의심많은 도마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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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에서
제가 오늘 소개하려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 사람처럼 교회에 익숙한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사람, 교회 봉사 열심히 하고, 성가대도 하고,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도마와 같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도마같은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부정적이고 회의적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고 부인하는 것도 아닌, 신앙의 회색지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를 잘 믿습니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회의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은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잘 섬깁니다.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면 전도나 받을텐데,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구원받은 사람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음속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질문을 합니다. 정말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은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구원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 같은 비참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임신을 했으나 해산할 능력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선을 행하고 싶으나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의외로 불안해 하고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왜 불안해 하십니까? 왜 근심하고 걱정을 하십니까?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기도보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기도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전도보다는 논쟁을 많이 합니다. 전도는 안 합니다. 그러나 논쟁은 많이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런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지만 동시에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는 등 알면서 죄를 짓습니다. 이 모두가 도마와 같은 수준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 곁에는 이상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도마보다 한 수 높은 사람,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도마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회계까지 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팔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도마는 구원을 받지 못할뻔 했던 사람인 반면, 유다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저는 도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에 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과 친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 봉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와 친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부활을 믿는가

여러분과 함께 요한복음 20장 24절부터 29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도마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5절을 보면 도마는 엄청난 말을 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언할 때 도마는 그 사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냉소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도마가 예수를 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도마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죽음도 잘 알았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존재나 삶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부인한 것은 부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삶과 죽음까지는 인정합니다. 예수의 삶은 성자의 삶이었고, 그는 지극히 높은 도덕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부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의 완성은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도마는 여기서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죽음까지는 인정을 하겠지만 부활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부활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성적으로도 증명할 수도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기에 우리는 알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사람이 지금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죄를 씻어주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믿어지고 예수가 믿어집니다. 이것은 복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가 믿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믿지 않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어집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분은 살아있습니다. 오늘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고, 밝은 빛을 주십니다. 철학, 윤리나 도덕이 한 인간에게 이것을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에 대한 중요한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까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 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믿어야 합니다. 도마는 이 문제에 걸렸습니다.

네 손가락을 내밀라

그런데 왜 도마는 이 사실을 믿지 못했을까요? 중요한 힌트가 24절에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도마가 있었다라면 이런 고민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빠집니다. 은혜받을 때에는 빠지고 쓸데 없는데에 열심을 냅니다. 꼭 설교를 들을 때 조는 사람이 있고, 중요한 말을 할 때 흘려듣습니다. 그리고는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마가 그랬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있는데 왜 도마만 빠졌겠습니까? 도마가 빠졌더라도 다른 열 제자가 보았다고 말하면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도마는 믿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실 때 거기 있어야하고, 은혜를 주실 때 그 자리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두번째, 도마가 부활을 믿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영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다시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상황을 잘 모르고 한 말입니다. 때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앞 뒤를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적이 또 한번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이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예수가 다른 모든 성인들과 다른 것은 부활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비밀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것을 믿을 때 구원은 완성됩니다.
구원을 잃을 뻔한 도마를 예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구원을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면 그것이 선물인 것을 압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감격이 있고 겸손이 있습니다.

20장 26, 27절을 보면 팔일 후에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고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십니다. 그 사람이 도마입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저는 아주 놀라운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야단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예수님은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고기를 구워 먹이시며 사랑을 주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도 예수님은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욕하고 멀리 갔을지라도 이것만은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을 야단치지 않습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수용하는 것이 더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이전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야단치고 고통을 주기 이전에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예수님은 도마에게 친절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 일이 있을 후부터 도마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시 않습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땅에 묻고 용서하시고 없는 것 같이 하십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었을까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마에게 신뢰가 온 것입니다. 신뢰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한 말은 이것입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저는 오늘 이런 고백을 하는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도마는 무너졌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무너질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까지 예수의 부활을 한 번 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분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대해 주시고 여러분을 격려하십니다. 사랑하고 용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를 믿기는 믿되 부활까지 믿지 못하는 여러분, 오늘 도마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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