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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의 능력 (요 06: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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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능력(요한복음 6:53-58)

지난 주에 인터넷을 통해 총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분이 게시판에 올린 글인데 제가 일부만 소개해 드립니다. '일요일 짜증나는 고속도로에서 이리저리 다이얼을 돌리던 중 목사님 말씀이 흘러나왔다. '제 아무리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남을 위해 성자처럼 살았다 해도 하나님 모르면 망합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목사님의 확신에 찬 말투는 너무 협박적이어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선교는커녕 교회에서 십리 밖까지 달아나게 만들 것 같았다.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가 천당에 가고 싶어서 혹은 지옥에 갈까 두려워서라고 치부해버리는 유치한 설교가 아닐 수 없다'
이 사람이야말로 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이유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말씀을 듣고 착하고 교양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내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내가 예수를 믿고 그 분의 십자가 공로를 힘입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천당에 가고 싶어서 예수를 믿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기독교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부터 15절의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는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거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내가 너를 구원한다'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담당하셔야 했습니다. 죄 없으신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는 죄 없는 자가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간절하게 기도하신 예수님은 동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당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께로 다가와서 '랍비여' 하면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입맞춤은 '이 사람이 바로 너희가 잡으려는 예수다' 라는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사용하는 '입맞춤' 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듯이 애정을 표시하는 가벼운 입맞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연인들끼리의 정열적인 입맞춤을 뜻하는 의미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롯유다의 입맞춤에 쓰인 단어는 후자에 해당됩니다. 가롯유다는 정열적인 입맞춤으로 주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3년 동안이나 사랑하시고 가르쳤던 제자 가롯유다, 그는 사랑을 가장한 배신으로 주님을 은 삼십에 팔아 넘겼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은 이 배반의 쓰라림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대제사장 앞에 서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에 대제사장은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침을 뱉으며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우리 몸에는 반사신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때리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사신경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크게 다치게 됩니다. 축구선수들이 가장 큰 부상을 입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뒤에서 태클이 들어올 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뒤에서 공격을 하면 미처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당하기 때문에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눈을 가리운 채 매를 맞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르는,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매를 맞으셨습니다. 이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얼마나 매를 맞았던지 그 얼굴이 너무 흉해서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은 이처럼 매를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 당시에 채찍질은 죄인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죄수를 기둥에 묶고 웃옷을 벗깁니다. 그리고 납조각과 유리조각이 붙어있는 채찍으로 등을 때리는데 서른 아홉 번을 때립니다. 40번을 때리면 죽는 것으로 생각해서 겨우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죄수들은 채찍질이 계속되면 다 자백을 합니다. 처음에는 죄가 없다고 잡아떼다가도 채찍질이 시작되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자백을 합니다. 그러면 채찍질의 강도가 점점 약해집니다. 죄를 하나씩 자백할 때마다 채찍질의 강도가 조금씩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백할 죄가 없었습니다. 자백할 것이 없기에 그 분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묵묵히 매를 맞으셨습니다. 그러자 채찍질하는 사람들은 더욱 매질의 강도를 높여 때렸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채찍을 다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웠습니다. '가시 면류관' 그것은 저주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향하여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라. 땅이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덤불은 저주의 소산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생긴 가시나무, 예수님께서는 그 저주받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쓰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머리에 떨어져야 할 하나님의 저주가 가시 면류관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져 있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신 예수님에게 사람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몰약은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여성들의 단체가 있었는데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려고 몰약을 탄 포도주를 가져다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죽음의 고통이 어떠한 것인가를 그대로 체험하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개의 커다란 못이 그 분의 몸에 박혔습니다. 두 손과 발에 박힌 못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러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이 순간만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없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죄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 사명을 다 이루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여야 할 고통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가 겪어야 할 죽음을 대신 겪으셨습니다. 이것을 이사야서 5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오늘 우리는 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먹고 마시는 성찬에는 놀라운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본문 5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이 성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 그 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여러분들이 이 확신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이 떡과 잔으로 인해 나는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된 줄로 믿습니다.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셨으니 이제는 나도 부활의 자리에 참여할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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