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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눈물 (요 11: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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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눈물', 이런 제목으로 다같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한 번 따 라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의 눈물.' 한 번 물어 볼게요. 한 번도 눈물을 안 흘려 보신 분이 계세요? 없죠? 눈물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그럽니다. 첫째는 자기를 위해서 우는 눈물, 또 하나는 남을 위해서 우는 눈물. 어떤 눈물이 값진 눈물일까? 어떤 눈물이 위대한 눈물일까?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번도 우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가난하셔서 먹을 게 없으셔도 예수님은 울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무리 매를 맞으셔도 울지 아니하셨습니다. 가시관, 가시관 을 쓰시면서도 울지 아니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십자가에 높이 달려 계시면서도 예수님은 울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서 우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눈물이 없는 거예요. 눈물이 메말랐다는 것입니다. 웃고 즐기는 일에는 적극적인데, 감동과 눈물을 흘리는 일에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웃음 만이 아니라 눈물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눈물은 나를 위해서 우는 눈물이 아닙니다. 자기 를 위해서 우는 눈물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우는 눈물, 나보다 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고통을 받는 사람,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 슬픈 사람을 위해서 우는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안타까운 것은 이웃의 기쁜 일에는 배아파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또 이웃이 슬퍼할 때에는 '아, 이 것은 나하고 관계없어. 내 일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크게 두 번 우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습니다. 예루살 렘에 입성하실 때에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죄를 지 은 분이 아니에요. 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구세주이십 니다. 메시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 울지 아니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울어주신 예수님의 그 눈물의 의미를 깨닫고, 그 은 혜를 통해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믿음의 실천자가 되는, 그래서 신앙을 회복하는 사순절 기간이 됩시다.

첫째, 인간을 향한 사랑의 눈물 첫째로, '인간을 향한 사랑의 눈물.' 예수님이 언제 우셨다고요?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시는 사랑과 위로의 눈물인 것입니 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그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그 랬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 35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께서 보시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시고, 슬퍼하는 사람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 거예요. 예수 님의 눈물은 절망에 처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향한 눈물인 것입니다. 그 아픔을 함께 느 끼는 사랑의 눈물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 기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인간이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의 위로는 조금 지나면, 그 위로는 더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인간과 인간의 위로는 욥의 친구들처럼 그 위 로가 정죄로 바뀌고, 그 위로가 비난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울 때 함께 울어주시고, 우리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의 눈물, 사랑의 눈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 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함께 울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가신 예수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납니다. '돌을 옮겨 놓아라'고 그랬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말을 합니다. '예수님 우리 오라버니는 죽은 지 나흘 되었습니다.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그 말은 뭡니까? '예수님이 진작 일찍 오셨더 라면 우리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치료해 주셨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뭡니까?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 오라버니가 부활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아닙니다. 무덤에 가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그런 것은, 지금 죽은 나 사로를 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돌을 옮겨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말씀하시니까, 명령하시니까,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가, 무덤에 묻힌 나사로, 죽어서, 썩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로, 수건을 동여맨 채로, 살아 서, 살아서 걸어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눈물이 기쁨이 됩니다. 죽음이 생명이 됩니다. 병이 치료가 됩니다. 저주가 축복이 됩니다. 지옥이 천국이 됩니다. 죽음이 영생이 됩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또 마르다처럼, 예수님이 병은 고칠 수 있어도 죽음은 다스리지 못한다 고 그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어떤 문제든지 해 결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로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 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믿음이 있는 자가 되셔서 열매를 많이 맺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 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만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로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죄로 인한 눈물 두 번째, 예수님은 왜 눈물을 흘리셨냐고요?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의 죄로 인한 눈물'입니 다. 그렇습니다. 자녀가 잘 안 될 때 부모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 가 안 될 때, 자녀가 죄를 지어서 고생할 때, 죄를 지어서 고통을 당할 때, 부모는 그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입니다. 자식이 혹시 죄를 짓고, 범죄하고, 교도소에 가 있다면, 수 감되어 있다면, 출감하지 못했다면, 그 날까지, 출감하는 그 날까지, 그 어머니의 눈에 눈물 이 마를 날이 없는 것입니다. 죄는 미워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자식은 사랑합니다. 하나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미워하세요. 그러나 죄를 지은 인간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우셨나고요? 죄를 지은 인간 때문에 예수님은 우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타 락이요, 하나님 아버지를 눈물짓게 하는 원인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세요. 안 우실 줄로 알았죠? 하나님도 우십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서 14장 17절 말씀이십니다.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 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 이라'. 죄인 된 우리들 때문에, 죄를 지은 나 때문에, 죄를 지은 여러분 때문에, 죄를 지은 인류 때문에, 하나님, 예수님은 통곡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통곡하면서 기도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매맞으시고, 가시관 쓰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 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5장 7절 말씀이십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 니라'. 우리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때,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렇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예수님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 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인생들을 보시고 우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 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분이십니다. 이 땅에 계시면서 우셨던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 에 가셔서도 잃은 양을 위해서, 죄를 지으면서 죄를 짓는 지 모르고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 들을 위해서 우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더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그 세워진 교회가 더 많이 성장하고, 거기에 공동체로 소속된 모든 성도들이 더 은혜를 받고, 더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헌신적인 사역자가 더 많이 나오기 위하여, 구원받은 수가 더 많아지기 위해서, 교회가 성장 하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이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계신 것 믿으시 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족, 친척, 이웃 때문에 눈물 흘리고 계신 것을 또 기억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최고의 기쁨은 뭘까? 구원받은 우리를 통해 서, 은혜 받은 성도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는 것, 잃어버린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교회, 교회가, 한 국의 모든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이 성숙되고 성숙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요, 이것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임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그 무엇도 아닌 우리 한사람, 한사람 일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 은 한사람, 한사람,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성령 받은 한사람, 한사람, 한사람, 우리의 신앙 이 성숙되어져 간 그 한사람, 한사람, 한사람을 우리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즐거워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충 만함을 받아 말씀을 실천하고 살아가면, 우리 주님은 기뻐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의로 인한 눈물과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람들의 죄로 인한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죄 때문에 고통 당하고 있다면, 사람들 이 막 죄를 범하고, 범하고 있다면 우리도 눈물 흘려야 합니다. 또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 있 지 아니하고 있다면 의분으로, 의분으로 우리도 분노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분은 뭡 니까? 정의를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 의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 때문 에는 참지를 못해요. '죽-여. 살-려.' 고소하고 야단법석하고, 그러나 공익이 어려움을 당하 고,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국민이 어려움을 당할 때, 무관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게 아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어지면서 성도들의 마음까지 강퍅해졌 습니다. 잘못을 보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면, 죄를 보고 눈물을 짓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습 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해 우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화를 내는 것보다, 공익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분노할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 됩시 다. 아멘입니까? 아멘입니까? 그렇습니다. 내 문제와 아픔 때문에 울어도, 이웃의 죄와 아픔에 관심이 없다면, 이것은 건 강한 사회가 아닌 것입니다. 어두운 사회인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일을 해야 됩니까? 잘못 을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문제를 예방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 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한 영혼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밤 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 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울어야 해요. 조국을 위해서 울어야 해요. 우리가 사는 지역을 위해서 울어야 해요. 교회를 위해서 울어야 해요. 여러분, 부모님들은 자녀를 위해서 울어야 해요. 스승은 제자들을 위해서 울어야 해요. 나라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해서 울어야 해요. 목회자는 성도를 위해서 울어야 해요. 예수님은 우셨어요. 우리는 누구 따라가야 해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해요.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해요? 예수님을 닮아야 합 니다.

셋째,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눈물 세 번째로,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눈물입니다. 인간은 참 똘똘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났다고 생각해요.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학벌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무리 학벌이 높아도,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어리석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리석음 중에 어리석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예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죄를 짓고 도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 변명하는 사람, 남에게 핑계 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모두가 다 어리석은 사람들이에요. 사람들은 우리가 어리석고 못나면 비웃지 만, 예수님은 우리의 어리석음과 부족함 때문에 울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기 위 해서 또 울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뭡니까? 평화의 왕 되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면서, 그 성을 보시고 슬픔에 복받쳐서 비통하게 우신 이유가 이 때 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41절로 4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까이 오사 성 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 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멸망의 날이 임하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43절로 4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 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 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었습니 다. 예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셨습니다. 구약에 수없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것을 계속해서 예언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구약에 보니 제사를 지냈 습니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율법사들이 그것을 가르치고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정작 메시아 예수님이, 평화의 왕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 이 아무도 없었어요. 배우긴 많이 배웠는데, 알긴 많이 알았는데,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어 요. 어리석었어요. 그들을 보고 예수님이 우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교회 밖에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불쌍한 어리석은 자들이 수 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교회 안에는 없나요? 교회에 와서 예배는 드리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 성령 충만하지 아니한 사람,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을 들으려고 아니하 고 귀를 꽉 막은 사람, 순종하지 아니하려고 귀를 꽉 막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서 우셨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다시 예수님을 울게 해드리면 안됩니다. 구원의 확신, 성령 충만, 말씀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울게 해드리지 마시고, 주님을 기쁘고 즐겁 게 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우리가 힘써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어리석음 가운데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묵상하고, 예배를 더 잘 드리고, 더 많이 충성하고, 더 성령 충만한 것은 뭐냐? 우리가 어리 석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지혜가) 성 령이 지혜의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세례, 성령 충만함을 받고,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묵상하고, 전함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즐겁게 해드 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또 예수를 모르고 대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할 의무가, 특권이 우리에게 있 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 님을 울게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그래서, '나만 구원받으면 되지 않느 냐? 내가 성령을 받음으로 나만 바르게 살면 되지 않느냐?'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예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을 주 님은 다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속히 주께로 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로 15절 말씀이십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 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울고, 눈물을 흘리며 복음의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그 단을 얼마만큼 거둘 수 있느냐? 30배, 60배, 100배 거둘 수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을 합니다. 시편 126편 5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 로 거두리로다'. 6절에 말을 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 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4-15). 우리 주위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어요? 함께 즐거워하고, 축하를 많이 해줘야 되 요. 우리 주위에 슬픈 자가 있어요? 우는 자가 있어요? 함께 울어줘야 됩니다. 함께 울어줘 요. 왜요? 그것이 주님이 명령이기 때문에. 왜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 때문에. 왜 요?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의 죄악과 무지, 그리고 고통받는 삶을 향한 안타까움입니 다. 그 모든 것을 대신 담당하시는 사랑.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사 랑의 눈물 때문에 우리의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 눈물 때문에 슬픔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 눈물 때문에 죄가 변하여 의가 되었습니다. 그 눈물 때문에 죽음이 변하여 영생이 되었습니다. 그 눈물 때문에 질병이 치료받아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눈물 때문에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순절을 절기로만 지키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 다. 절기로만 지키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눈물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됩 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서 사람을 위해서, 고통받는 사람,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 가난 한 사람, 슬픈 사람을 위해서 울어주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직도 회개하지 못한 죄인들을 위해서 울어주고, 아직도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서 울어주고, 울어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척, 친구, 이웃이 구원을 받고, 그뿐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신앙, 잃어버린 사랑 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예수를 다시 만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아무리 배고프셔도, 아무리 매맞으셔도, 아무리 가시관을 쓰셔도, 아무리 십자가에 달리셔도 울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우셨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우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서 우 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눈물 때문에 나도 구원받고, 우리도 구원받았습니다. 그 눈물의 사랑 을 알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006-02-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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