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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자유를 누리라 (요 0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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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탈북자'란 단어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탈북자'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으니 ' 자유이주민'이라고 부르자는 요청이 있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부르게 될지는 모르지만 정부 도 이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계 5대 종교 억압국에 북 한이 2위로 올라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한국 에서 출판된 기독교 서적들 중에 제목에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찾아보았더니 약 60권이나 되더군요. 자유는 기독교의 본질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자 유를 버린 자유인], [이제는 자유다], [자유의 종] 등이 재미있는 제목이라고 느꼈습니다.

기독교는 참된 자유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자유의 문제를 생각해왔습니 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 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진리를 알아야만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진리를 모르면 속박된 상태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 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죄의 종으로 전락한 인간에게 자유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진리를 알아야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무지하면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비진리의 반대입니다. 평범한 진리를 예로 들어봅시다. 여러분이 이 자리 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벽으로 들 어와도 된다고 하면 비진리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마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의 팔은 안으로 굽혀야 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밖으로 굽혀도 된다고 하면 비진리입니다. 그러면 팔이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자유와 편안함을 주지만 비진리는 속박과 고통을 줍니다.

그런데 진리는 모든 영역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수학 분야에도 진리가 있습니다.

'1 + 1 = 2' 는 수학적 진리입니다. 그것이 2도 되고, 3도 되고, 5도 된다면 진리가 아니겠 지요. 최근에 어느 수학 선생님을 만났는데, 우리가 옛날에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수학은 수 학도 아니랍니다. 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를 넘어가니까 제가 도저 히 도와줄 수 없더군요. 수학은 그만큼 더 진리를 찾아간 것입니다. 물리학에도 진리가 있습 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진리입니다. 어디서든지 물건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집니다. 열역학 제 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진리입니다. 모든 에너지는 새로 생기는 것도 없고 소멸 되는 것도 없이 그 총량이 언제나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열역학 제 2법칙도 진리입니 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물질은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의 상태,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그 질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이 주장에 어긋나는 현상이 이 세상에서 관찰된 적 이 없으므로 우리는 이것들을 진리로 인정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윤리학에도 진리가 있습 니다. 도둑질하는 것은 언제나 '악'입니다. 살인하는 것은 언제나 '악'입니다. '선'은 영원히 '선'이고 '악'은 영원히 '악'이므로 분명한 진리가 있습니다. 경영학에도 '생존부등식'이라는 진리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상품의 가치는 가격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 으면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습니다. 또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원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 제대로 경영을 하 여 이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런 진리에 어긋나는 사람은 사업가로서 부족하므로 성공적 인 사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철학 분야에도 동일성, 일관성, 통합성, 실용성이 있는 것을 진 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한 합의가 잘 안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신앙과 종교의 영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종교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수학에도, 철학에도, 윤리학에 도, 생물학에도, 물리학에도, 화학에도, 경영학에도 진리가 있지만 유독 종교와 신앙에는 보 편적 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종교에도 진리와 비진리가 있습니다. 팔도 안 으로 굽혀야만 한다는 진리가 있는데, 영원한 생명과 관련하여 진리가 없다면 말이 됩니까? '어디로 가든지 다 같은 진리의 길이다' 라는 말은 그 자체가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 은 생각을 하지 않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선과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종교 와, 죄성을 가진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는 종교가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맞는 말이지요.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 그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다 같은 하나님에게로 간다? 이 말은 맞지 않습니다. 모 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논리적으로 판단해보지 않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기독교와,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이라는, 그래서 수억의 신을 섬기는 힌두교가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유일신 종교와 범신론 종교가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기독교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죄인인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윤회설도 가만 보면 이 진리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사 람이 죽으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전생보다 나아지면 다행이지만 더 못해질 수도 있답니다. 그렇게 인생은 억겁을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죄성이 있기 때 문에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영원히 무의미하게 헤매는 모습을 불교 나름대로 표현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와 지옥과 사탄으로부터 구원과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 은 오직 하나님 편에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인간이 가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 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이를 믿는 사람을 단 번 에 구원하시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자기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 님의 영원한 사랑과 절대적인 은총으로 단번에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놀 라운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이 진리가 지옥으로부터, 마귀로부터, 죄성으로부터,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줍니다.

그런데 진짜 자유가 있고 가짜 자유가 있습니다. 무엇이 가짜 자유입니까? 죄성의 지배 를 받아, 상관하지 말라며, 자기 멋대로,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가짜 자유입니다. 하나님으 로부터 멀리 떠나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은 실은 죄에 꽁꽁 얽매여 있습니다. 이것은 속박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짜 자유의 환상 속에서 속고 있습니다. 요즘 한참 대학교 신입 생 환영회를 하는데 그 방종의 정도가 무척 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대학생은 요즘 학생들이 '멋대로 문화' 속에 빠져있다고 표현합니다. 고교 졸업 때까지는 부모님과 선생님 에게 구속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기 멋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신입생들이 선배들의 강요로 억지로 술을 마시다가 죽기도 하고, 병이 들기 도 하고, 토하기도 하고,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야단법석이 나는 것입니다. 신입생들은 이런 것을 자유라고 착각합니다. 선배들은 후배를 골탕먹일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자유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이며 자신의 욕정에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신입생 환영회를 하려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지, 그런 것이 무슨 자유입니까? 왜 억지로 마시냐고 하면 선배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마신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노예근성 입니다. 왜 할 수 없습니까? 인간만이 '안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향하여, 사람을 해치는 일에 대하여 '안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대학교 신입생 은, 선배가 아니라 교수가 그런 것을 권해도 '안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바랍니다.

그런 종류의 환영회에는 전혀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같은 문화는 이 땅에서 근절되어야 마 땅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눈이 어두워서 악을 선으 로, 방종을 자유로, 속박을 해방으로 착각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죄 의 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전에 제 조카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예수믿 는 집에 태어나서 평생 교회만 다녔는데 너무 힘이 들어요.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래 서 잠깐 동안만 나갔다 올래요.'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이 있지요? '하나님, 저를 좀 놓아주 세요.' 놓아주면 어디로 가겠다는 것입니까? 자기의 죄성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래서 죄성의 노예, 세상의 노예, 마귀의 노예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는 길은 사망의 길, 노예의 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이렇게 답장을 했습 니다. '나도 이해는 된다. 나도 어려서 너처럼 그런 생각을 하면 고민한 때가 있었다. 그러 나 그것은 노예의 길이다. 네 속에 아직 거듭난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하면서 복음을 쭉 적어서 보냈습니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이 아니라, 네 자신이 예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받아라. 그러면 네가 자유롭게 되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랬더니 답 장이 왔습니다. '삼촌, 나가지 않겠어요.' 나가봐야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진짜와 가짜 자 유를 구별해야 합니다. 죄성에 붙들려 그것이 시키는 대로 사는 생활은 노예 생활입니다. 우 리는 죄와 죄의식, 두려움과 불안, 좌절감과 우울증, 증오와 분노, 시기와 질투, 무질서와 게 으름, 염려와 근심, 그리고 가슴속 쓴 뿌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자신의 건강에 치명적인 줄을 알면서도 10cm 짜리 담배의 지배를 받는 분들은 참 안타깝습니다.

옆에서 보면, 끊고 싶어도 못 끊는 겁니다. 조그만 담배가 '피워!' 명령하면 그저 복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배당 화장실에 들어가니 담배 냄새가 나더군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 마 교회 안에 '금연'을 써 붙여놓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사람이 담배를 지배해야지요. 사람 이 술을 지배해야지요. 인간이 약물에, 돈에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면 되겠습니까? 다스려야 지요. 참된 자유를 누리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이라는 찬송이 있지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 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주셔야 합니다. 복음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불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을 믿고 회개하면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성령님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 씀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게 되면, 내 뜻 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즉 진리는 내적 힘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것이고, 복음이 나의 것이고, 성 령이 나의 것이고, 말씀이 나의 것이면, 이들의 내적 역사로 인해 내 속에서 엄청난 힘이 나 타납니다.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될 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시시각각 찾 아서 순종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옥으로부터 영 원한 자유를 얻습니다. 여러분은 이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 으로의 옮겨 간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까? 악령의 지배에서 벗어나 선의 주도자이신 성령 님의 다스림 속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를 꽁꽁 묶어서 파멸시키려는 일곱 가지 죄의 쇠사슬이 있습니다.

첫째가 교만의 쇠사슬입니다. 교만은 사람을 반드시 망하게 합니다. 교만의 병이 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도 정작 자기는 모릅니다. 교만해서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바벨론의 느 부갓네살 왕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았지만 그 최후가 어떠했습니까? 정신병에 걸려 짐승처럼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교만은 겸손의 능력 이 없으므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겸손은 자유이지만 교만은 노예상태입니다. 둘째는 분노의 쇠사슬입니다.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가인의 이야기를 보면, 분노는 우리를 속박하는 큰 죄의 사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분노한 가인은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은 분노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분노의 쇠사슬에 얽매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셋째는 탐식의 쇠사슬입 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까 밤에 먹는 것이 몸에 참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밤참을 정기적으 로 먹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랍니다. 먹으면 잠깐 사이에 몇 킬로가 올라가서, 건강하게 살 자유가 없어집니다. 기분 나쁘다고, 또는 울적하다고 먹어서 풀려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 니다. 성경에 보면 에서가 탐식으로 인해 축복을 빼앗겼습니다. 넷째는 질투의 쇠사슬입니 다. 질투가 사람을 죽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질투하여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먹었습 니다. 나중에 동생을 다시 만나서 쩔쩔 맸습니다. 다섯째는 탐욕의 쇠사슬입니다. 구약성경 에 보면 아간이 옷과 금과 은을 탐내다가 자기도 죽고 가족과 친척들까지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탐심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여섯째는 음욕의 쇠사슬입니다. 음욕은 자신 과 가족을 망칩니다. 가정에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무너뜨립니다. 음욕에 빠진 소 돔과 고모라 도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엄청난 부자유의 쇠사슬입니다. 일곱째가 나태함의 쇠사슬입니다. 이것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미 련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 아시지요? 그 처녀들은 게을러서 기름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으므 로 신랑이 밤에 도착했을 때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여 신랑 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성실하게 기름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가 신랑을 맞이하셨습니다.

여러분! 교만, 분노, 탐식, 질투, 탐욕, 음욕, 나태함, 이 일곱 가지 죄는 우리를 반드시 망 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폭력적인 죄들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인간은 죄성 때문 에 스스로는 이 쇠사슬을 끊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끊으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어떤 죄의 쇠사슬에 묶여 있든지, 언제나 성령님의 도움 을 받아서 꼭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사함의 기쁨을 누릴 자유가 있어야 됩니 다. 원수를 축복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쓴뿌리를 잊어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미움으로부터의 자유입니 다. 기쁨은 슬픔에서부터의 자유입니다. 평화는 갈등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용기는 두려움 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천국은 지옥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마귀로부터의 자유입 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과 영혼은 온갖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 예수의 진리, 성령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날마다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죄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길이요 진 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체험해서, 여러분의 삶에 자유의 영역이 늘어나고, 하나님이 주신 삶을 풍성하게 누리며 사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2006-02-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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