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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운데 선 십자가 (눅 23: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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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명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오셔서 는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뿐 아니라 그가 죽으실 때에도 강도와 동류로 취 급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 고 그를 놓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 대신 폭동과 살인 혐의로 붙들려 있는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들은 예 수님을 바라바보다 더 중한 죄인으로 본 것입니다. 폭동과 살인을 한 죄인 보다 더 중한 죄인으로 취급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두 강 도와 함께 달리셨습니다. 두 강도의 십자가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강도와 동류로 취급되어 그들과 똑같은 십자가 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인 예수를 강도보다 더 중한 죄인으로 취급하여 십자가에 처형한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잘 못된 판결이요 가장 큰 인간의 오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간 의 큰 잘못을 통하여 그 인간을 구원하는 경륜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 로, 강도들의 십자가 사이에 선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 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 왜 예수님은 하필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셨을까? 그것은 그의 십자 가에서 강도들보다 더 무거운 온 인류의 죄가 처형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저주받은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이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 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3:13). 예수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를 처리하는 저주받은 장소가 되 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악을 불태우는 쓰레기장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 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십자 가에 달리신 순간은 인류의 모든 죄를 함께 끌어안고 그 죄값을 치르는 가 장 저주받은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지만 하나님은 끝내 거기에 응답하시지 아니하시고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도 거기에 응 답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온 인류를 대신하여 저주받은 자가 되어 벌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은 강도들 사이에 끼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실상은 그 강도들보다 더 무거운 죄를 짊어지고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는 모든 인류의 죄를 끌 어안고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그 죄는 참으로 무거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감상적인 눈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거기서 소멸되어 가는 인간의 죄를 직시하면서 떨림과 두려움으로 그것들을 저주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 자가에서 불타고 있는 죄악의 냄새에 치를 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타는 쓰레기장이나 혹은 분뇨 처리장 옆을 지날 때면 그 악취 때문에 코를 막고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것들이 다 내 속에서 나온 것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끄러움과 두려움 을 느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참 혹한 십자가가 벌주고 있는 죄악에 대해 눈을 돌려야 하며 동시에 그것들 이 다 내게서 나온 것들임을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강도들 사이에 서 있는 예수의 십자가는 날카롭게 내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 는 내 죄가 얼마나 무섭고 중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 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한번도 전율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정으로 감사한 것으로 받아 드리려면 먼저 자신 의 죄에 대한 두려움과 깊은 자각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너무 이 죄에 대한 교육을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가르치고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뿌리를 찾아내고 그것 을 그리스도 앞에 고백하며 거기서 자유함을 얻는 과정을 너무 소홀히 다 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항상 구원받지 못한 사람같이 개운함이 없으며, 구원받은 자로서의 확신과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은 것인지 안 받은 것인지 잘 알지 못해서 항상 어 정쩡한 상태에 머물고 있어서 신앙에 발전이 없으며, 능력이 나타나지 아 니하고 항상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강도와 함께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 라보면서 거기서 불타고 있는 내 죄를 바라봅시다. 내 죄를 깊이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기쁨에 넘친 삶을 창조하며 능력 있는 삶 을 이룩해 가시기 바랍니다.

큰 구원의 능력을 지닌 십자가 다음으로, 강도들의 십자가 가운데 서 있는 예수의 십자가는 그 십자가 에 처형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죄인인 강도라도 구원할 능력이 있음을 상 징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며 조롱하기를 '이 사람이 남을 구원했으니 하나님의 그리스도요 택함 받은 자라면 자기 를 구원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물론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또 예수를 못박은 군인들도 그를 희롱하면서 '당신 이 유대인의 왕이거든 자기 자신을 구원하라'고 하였고, 또 옆에 같이 달 린 강도 한 사람도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당신 자신을 구원하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오'라고 하였다. 비록 빈정대는 어투이기는 하지만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들이 다같이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이 말하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뜻했을 뿐입니 다.

물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구원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저들이 생각한대로 그리스도 됨이 그런 작은 능력을 나타내는데 있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아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고 나병환자도 고치셨 으며 앉은뱅이도 일으키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 았다. 예수님은 지금 자기가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구원한다 해도 저들이 믿지 아니할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 됨은 바로 남을 구원하기 위하 여 자기의 구원을 포기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친히 보여 주신 것 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로만 생각해서 무엇이 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능력의 근원이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는 데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이런 사람들의 요구와 달리 다른 한 강도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예수에게 다른 방식으로 기도를 하였다. '예수님, 당신이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는 지금 여기에서의 구원은 바라 지도 아니하였다. 그는 지금 자기가 당하고 있는 죽음은 자기의 죄값으로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거기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 는 일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구원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 강도가 어떻게 이런 신앙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 니다. 아마도 그는 이전에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 다. 예수를 만나 보고 싶었으나 쫓기는 몸이었거나 아니면 이미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그 강도는 비록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에 달 려 자기와 같이 고통을 당하고 계시지만, 그는 그리스도요 그의 나라를 이 룰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고, 그 그리스도에게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강도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 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받 은 강도가 그의 고통이 덜어지거나 기적적으로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구원받은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우리가 말하지만 그것은 어떤 이 땅에서의 놀라운 기적을 동반하는 구원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를 이루기 위한 희생의 역사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무엇이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 니까? 옛날 그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무리들처럼 당장 지금 이 땅에서 구 원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당장 내 병이 치유함을 받기를 바라고, 당장 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당장 내 사 업이 잘되기를 기대하며, 당장 내 가정이 잘되기를 기도하며, 당장 이 땅 에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는 차라리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 죄에 대 한 대가로 이런 정도의 고통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 민족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로 오늘 이 민족이 분단되어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 한 것이 아닐까요? 아직도 우리가 온전히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하고 진 통을 겪는 것도 우리 속에 진정으로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없고, 여전히 이기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어리석은 기도를 들어주려고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 어지기를 간구하는 자들을 위하여 서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를 이루어 주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록 강도 같은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거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영원한 삶을 약속하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 다는 약속을 이루기 때문에 큰 능력입니다. 강도같이 완악한 자라도 즉각 적으로 그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되게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빛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속에 분명하게 세워진다면 우리가 비록 고달 픈 삶을 산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병들어 육체 가 산산 조각 나는 것처럼 아프다 할지라도 십자가의 능력을 진정으로 깨 달아 안다면 우리는 오히려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하는 능력은 행사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 로 남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시므로 하나님 우편에 복귀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 땅에서 영광과 부귀를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와 함께 자기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말대로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 도는 이 하나님의 나라의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려 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영화의 어떤 마지막처럼 골고다 산상에서 마 지막 순간에 어떤 극적인 기적이 일어나지 아니한 채 예수님은 끝내 거기 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바로 그렇게 서 있으므로 해서 승리가 되었고, 구원의 놀라운 능력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강도들과 함께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그 십자 가는 내 죄가 강도와 같음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 십자가에 죽 어야 했을 죄인임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와 같은 내 죄를 인식하지 못할 때 나는 참된 구원의 기쁨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 자신의 처절한 죽음만을 상징하기 위하여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속죄한 승리의 표지로 거기에 서 있는 것입니 다. 이 그리스도의 고난일에 감상적인 눈물 대신에 오히려 경건한 찬송으 로 그리스도의 놀라운 승리를 찬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우리는 다시 한번 철저하게 자기의 죄를 돌아보고 회 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 면서 기도를 드립시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의 나라에 이르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제까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드린 잘못된 기도를 이제는 버리고 오히려 이제부터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리에 나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기 위해 나 자신을 기쁨으로 희생하는 십 자가를 내 가정에,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그리고 이 민족의 고통받는 이 역사 한복판에 세웁시다. 그러면 여기에 새로운 변화의 역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가정이 새로워지고 이 사회가 변화되며 이 민족의 역사가 달라 질 것입니다.

오늘도 조용히 골고다 언덕 한복판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 면서 오늘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두려움 없이 지고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시어 모든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시고자 십자가에 내어 주신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감사드립니다. 강도 와 같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욕하고 비난하던 무리들처럼 오늘도 무지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 히신 그리스도를 자랑스럽게 전하지 못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먼저 저희로 죄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주님 의 십자가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게 하시옵소서. 능력의 주님, 이제 저희로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고 이 땅의 모든 불의와 대적하여 승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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