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레네 시몬 (눅 23:26-31)

첨부 1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형에 처하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끌려 갈 때에 많은 무리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무 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넘어지기도 하시면서 골고다의 길을 가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자시고 가실 때에 그 곁을 따라가던 구레네에 서 온 시몬이란 사람을 로마 군병들이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했다.

수난 주간을 맞을 때마다 구레네 시몬이란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수 있었던 그같은 영광도 너무나 큰 영 광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마지막 수난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이 너무나 인상적이요, 감격적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남 은 고난의 흔적을 내 몸에 채운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 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가? 구레네 시몬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 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레네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이며(막15:21), 로 마서 16:13 말씀에 의하면 그의 가정이 일찍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 었고, 시몬의 아내는 믿음이 돈독하고 사도 바울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감 당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에 신앙의 복을 베푸셨음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 현실에서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우리가 과연 얼마 나 주님을 가까이 따라가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하겠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바로 그 곁을 따라가던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고난 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라도 감당하자. 나태와 회의 그리고 세속의 물결이 닥쳐오는 오늘의 세상에서 과연 우리 는 어느 정도 주님을 가까이 따라가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사 53:4-9)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 도 고마운데 인간의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까지 맞아져 매맞으셔야 했 던 이유를 묵상하며 은혜를 기다립니다.

1.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인한 대리적 고난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었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 문이었습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는데 매맞고 고난의 쓴 잔을 마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고난이 십자가는 2000년전 예루살렘 근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을 조롱하고 그의 말씀을 무시할 때, 애통하는 형제 의 아픔을 외면할 때, 십자가의 승리를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좌절하 며 낙심할 때, 주님은 그런 우리로 인해 한 번 더 못박히십니다. 무죄 한 자로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자기를 못박는 자를 위해 오히려 하나님 께 용서를 비신 주님을 감상적으로 생각하며 눈물만 흘려서는 안될 것 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한 우리들은 고난주간을 용서할 수 없 는 사람까지도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간으로 삼읍시다. 우리가 염원하 는 복음화된 통일조국도 사랑으로 피차 용서하고 포용할 때에 실현될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목말라 하셨습니다. 야곱의 우물 곁에 서 생수를 약속하신 전능자의 거룩과 위대함이 치욕을 당하는 모순된 순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존엄성을 포기하시고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역사 속에 오신 주님의 거룩 함과 신성이 진정으로 계시된 순간입니다. 다른 사람 위에 서서 군림 하려는 교만함을 버리고, 우리도 주님처럼 다른 사람 대신 욕 먹기를 각오할 때 빛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2.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내 죄값은 사망인데 인류의 죄를 다 짊어 지시고 정죄를 받으신 속죄 양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값을 속량을 받은 것입니다.그러므로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절망에 빠져만 있는 것은 십자가의 효험을 진정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진노의 저주 아래 떨어진 자리에서도 예수님 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십니다. 칼 빈은 주님의 이 외침이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영혼과 한 묶음으로 묶어서 하나님께 위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판의 순간을 긍휼의 은총을 힘입는 순간으로 전환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 릴 때, 정진과 성취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 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 가 되었으며 우리를 죽음을 그리스도가 대신 당하셨으니 그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케 된고로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3. 우리로 하여금 변화에 새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한 고난이었습 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행동 은 우유부단하다고 보고 실의에 빠진 사람, 메시야가 아니었다고 비난 하는 사람,그리고 자기의 정당성을 포기한 한 편의 강도입니다. 주님 께서는 한편의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심으로 그는 십자가의 승리를 최초로 경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주 되심을 믿었을 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한 최초의 전도자가 되기도했 습니다. 우리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 무가치한자들이었습니다. 새사람 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주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리어 날마다 시자 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를 드러내려했던 옛 습관을 벗고, 날마다 자기를 포기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사는 변화된 새 사람의 생활로 주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소원합니다.

 (2006-02-26 23:01)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