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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와 역전 (막 1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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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 드린 마가복음 15장 말씀에 보면, 몇 가지 재미난 사실을 발 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이지만 그 수난 자체보 다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 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그리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아 놓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마가는 십자가의 수난이 단순한 수난으로 끝나는 것 이 아니고 거기에 놀라운 변화와 진리를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 한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언한 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 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마가가 로마의 교회에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교회들에게 거기에는 반드시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으며, 그 고난은 곧 능력으로 역전될 것이라 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롱 속에 담긴 진리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는 자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들의 조롱의 말 속에 진리가 있다는 역설을 마가는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15 장 16절 이하에 보면,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에게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면 류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하며, 갈대로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이 구절을 빼고 기록하여도 아무 지장이 없는데도, 굳이 이 이야기를 써넣은 까닭이 무엇일까요?거기에는 분명 마가의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 것 입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이 모욕적인 언사를 빼 버리고 기록했을 텐 데, 어째서 마가는 이것을 그대로 기록하였을까요? 그것은 29절 이하에 나 오는 자들과 대제사장들의 조롱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그 부분을 빼 버려도 하등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빼 버리면 더 자연스 러운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27절의 말씀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 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에 이어 32절 하 반절 말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가 이어진다면 오히 려 자연스러운 문장이 됩니다. 그런데 마가는 굳이 그 사이에 조롱자들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가 이렇게 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마가 는 조롱의 말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혹은 희화적으로 그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롱자들은 여기서 그들의 배역을 잘 수행하고 있 으며, 그들은 무의식 중에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증언하는 고백자들로 나 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에게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다고 하 였습니다. 그들이 자색옷을 입힌 것은 자색이 바로 왕의 색깔이기 때문입 니다. 동서 고금을 통해서 자색옷은 왕이나 고귀한 자가 입는 옷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가시로 만들기는 했지만 면류관을 그 머리 에 씌웠다는 것도 결국 왕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조롱하 기 위하여 이와 같은 장난을 했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진리를 증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진리란 예수님은 홀로 면류 관을 쓰시고 모든 사람에게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진실로 왕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9절 이하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 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 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서 1장 21절 이하에서도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 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조롱하는 놀이로 행한 이 의식이 바로 핵심을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마가는 보여 주려 했던 것입니다.

15장 29절에서 십자가 형장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여 말 하기를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라고 모욕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실 때 거짓 증인들이 그에게 퍼붓던 말입니다. 그 말을 이제 지나가는 자의 입을 통하여 다시 한번 외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이 우스꽝스러운 아니 정신 이상자의 말처럼 생각되어 조롱의 말로 사용하였겠지만, 그 말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흘만에 부 활로 연결될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율법에 근거한 낡은 성전 은 헐어지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어지는 새로운 예배 공동체 가 이루어질 것을 저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아니 마가는 저들의 입을 빌려 오늘 고난 당하는 교회야말로 새로운 성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초로 한 생명의 공동체임을 확신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15장 31절에서 대제사장들은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 다. 여기에서도 진리는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 은 실제로 '남을 구원하는 자' 즉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 려고'고 온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그의 이적적 능력 에 의해 수없이 많이 '남을 구원하였습니다.'또 32절에서 다시금 예수님을 향해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조롱하였습니다. 마가는 여기서 다시 금 제사장이 예수를 심문하였을 때 물었던 질문, 즉 '네게 그리스도냐?' 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 스도이십니다. 조롱자들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인정 하는 고발자들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진 리에 대하여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모든 인간들을 통하 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달아 알게 되면 서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와 그 역사 방법에 머리 숙여 찬양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을 통하여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시 며, 십자가란 잔인한 형틀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과의 화해 의 상징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빈틈없는 역사 앞에 우리는 그저 감사와 영 광을 돌릴 뿐입니다. 조롱자들의 말이 사실로 변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결 국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바로 그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움직이도록 하시 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난다 해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으로 가는 길이 된다는 사실은 얼 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 리면 자기가 승리하리라고 기대를 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에 사탄은 낙망하였을 것입니다. 하나 님은 아무리 악이 성하여도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귀결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간교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깨트리려고 해 도 그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나가는 모든 인간의 역사를 역전시켜 그의 뜻을 이 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틀림없는 섭리를 우리가 두려움으로 바라보며 그에 게 영광과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박해자의 신앙고백 그러나 가룟 유다와 같은 불행한 진리의 증언자들과는 달리 처음에는 박 해자였으나 십자가를 보고서 변화되어 참된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도 있습 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책임자인 로마 백부장과 아리마대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빌라도 총독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로마 행정부의 대표자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 께서 운명하시던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지 켜보면서 그가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었음 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초대 기독교 신앙고백 가운데 중심적인 고백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용어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명칭이 마가복음의 제목과도 같 은 첫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 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예수님의 세례(1:11)와 변화산(9:7) 변모에 서 이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제 수난의 이야기 의 정점에서 바로 예수님의 처형을 담당했던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의 입을 통해서 이 가장 중요한 명칭을 다시 한번 더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 라운 역전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처형하고 그에 대해 무관심하였던 로마 백 부장이 변화되어 바로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에 대한 신 앙고백을 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마가는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로마가 기독교회를 박해 하고 잡아죽이지마는 마침내 그 로마는 변화되어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새 로운 문화를 창조하게 될 것을 마가는 내다본 것이 아닐까요? 아니 예수님 의 십자가는 바로 온 인류를 변화시켜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250년 동안 혹독하게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가 마침내는 그 기독 교를 국교로 인정하는데 까지 나가지 않았습니까? 이 역전극은 참으로 통 쾌하고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역전극은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통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도 이런 역전극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신론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국가들에게서도 이런 역전극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련이 변화되고, 동구권이 바뀌었고 중국도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역전극은 저 북한 땅에서도 마침내 일어날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도 이렇게 변화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존경 받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습니다(15:43). 그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의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는 말입니다. 마가는 산헤드린 의 회의 '모든' 의원들이 예수님을 정죄하였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장 55 절에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죄는 분명히 만장일치의 찬성으 로 가결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그렇다면 아리마대 요셉도 예수님의 정죄 에 찬표를 던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리마대 요셉이 처음에는 예수를 반대하여 그를 죽이는 일에 가담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예수님의 편에서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 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았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게끔 정죄하였던 자가 이제는 반대로 예수님의 장례를 지내 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막 15:43)가 되었던 것 입니다. 십자가 이전의 요셉과 이후의 요셉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마가는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기독교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이스라엘의 전통 종교인 유대교도 마침내는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이미 그런 변화를 통해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진 것을 보면 서 그것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회피하는 까닭은 어쩌면 기독교회의 잘못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세 시대에 기독교가 흥왕하던 때, 그들은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라고 하여 그들을 박해하였고, 히틀러는 그들을 6백만 명이나 죽였던 것입니다. 러시 아에서도 정교회가 흥왕하면서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이스라엘인들이 기독교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사라질 때 저들도 마침내 변화되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십자 가의 능력은 완악한 모든 인간을 뒤바꾸어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게 하는 능력입니다.가장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거기에 모든 죄에 대한 대가가 담 겼고,그로 인하여 죄의 권능이 소멸되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짓 누르던 죄의 권세가 깨어지고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래서 위대한 능력이며, 놀라운 은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의 능력이 마침내 예수님의 부활에서 확실하게 증명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는 신비하고 오묘한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저질러진 모든 역사까지 합하여 이 하 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배반의 역 사를 역전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이런 놀 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수난의 자취를 보여 주는 복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의 역전극을 우리에게 생생 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에서 마가는 놀라운 역전 을 보여 주며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극심한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승리의 찬송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 라운 은총입니까? 고난을 승리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신앙을 우리에게 심 어 주는 것입니다. 이제 마침내는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에로 집중된다는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서며, 승리의 부활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6-02-2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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