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아내를 위하여 드린 기도
- 그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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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김길창 목사는 첫 목회자인 거창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열심히 목회하여 교회당을 새로 짓고, 교인이 배가하는 발전을 이루고 3년만인 1926년 8월 12일 거창교회를 떠났다. 김 목사가 거창교회를 떠나게 된 것은 교인들의 배척이나 교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병으로 허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식수가 아내의 체질에 맞지 않는 데서 오는 소위 수토불복증이라는 병이었다. 김 목사의 아내는 거창교회에 부임하던 달부터 계속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했다. 생각다 못한 김 목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단안을 내렸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면 가정에 우환이 없어야 마음놓고 목회를 할 수 가 있고 또한 능률도 오를 것이며 그만큼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부산 영동교회에서 청빙하자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만류하며 우는 교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새 임지인 부산으로 향했다.
그는 열심히 목회하여 교회당을 새로 짓고, 교인이 배가하는 발전을 이루고 3년만인 1926년 8월 12일 거창교회를 떠났다. 김 목사가 거창교회를 떠나게 된 것은 교인들의 배척이나 교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병으로 허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식수가 아내의 체질에 맞지 않는 데서 오는 소위 수토불복증이라는 병이었다. 김 목사의 아내는 거창교회에 부임하던 달부터 계속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했다. 생각다 못한 김 목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단안을 내렸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면 가정에 우환이 없어야 마음놓고 목회를 할 수 가 있고 또한 능률도 오를 것이며 그만큼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부산 영동교회에서 청빙하자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만류하며 우는 교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새 임지인 부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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