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십자가의 길목에서 (눅 23:26-43)

첨부 1


오늘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아울러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영광의 부활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수난은 비애가 아니라, 구원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는 주님의 십자가를 비통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온전히 응답하지 못했던 지난 삶을 통회하고 자복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신 길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정에서 매우 의미있는 세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1.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골고다 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많은 여인들이 슬피 울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을 향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아마 이 여인들은 평소에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정을 잊지 못해 슬피 울었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주님의 모습이 안타까워 동정심 때문에, 아니면 예수님께 대한 기대가 허물어져버린데 따른 절망감과 권력자들에 대한 울분 때문에 가슴을 치고 울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무엇 때문에 울었느냐가 아니라, 그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너희와 너희 자식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엄청난 환난의 때가 곧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깝게는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요,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최후의 심판과 그 후에 있을 환난의 날입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힘들고 두렵기에 차라리 자식이 없는 사람이 복이 있고, 산이 무너져 삽시간에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경고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푸른 나무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하리요'라는 말씀은 죄인은 반드시 심판 받는다는 그 시대의 경구입니다. 즉 죄 없는 예수님 자신이 이런 고통을 당한다면 죄인된 너희와 너희 자식들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고난 주간에 금식하고 철야하는 것은 주님의 고난을 나누자는 것이나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운데 은혜 받은 자답게 살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하며, 영적으로 더 성숙하는 기간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위해서 울 것이 아니라 내 죄와 내 가정, 내 자녀들의 죄를 통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그 날, 환난의 때가 분명히 우리 앞에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Ⅱ. 죄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길목에서 주님의 두 번째 말씀은 군중들과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의 죄에 대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34절).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에 군중들은 종려가지를 흔들면서 주님의 입성을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대가 허물어지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하는 세력들의 동조자, 내지는 관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군중들은 비웃고 군인들은 희롱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못박힌 한 행악자는 주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주님은 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 주의 성령님께서 빌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심을 아십니까? 성령님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의 길을 걷는 우리를 보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이 속죄의 중보기도가 없다면 우리가 어찌 이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죄에 대해서 비통해 한들 용서해 주시는 분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죄를 고백할 때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Ⅲ.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의 길목에서 주님의 세 번째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임한 구원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절) 주님 십자가 우편에 매달린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왼편 강도를 꾸짖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지만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고백하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의 중요한 신앙고백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나는 당연히 죽어야만 한다는 판단입니다. 이는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고백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입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죄가 없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님의 나라에 대한소망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간구가 그것입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주님의 의로우심, 그리고 주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를 향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오늘의 사건이요, 날마다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마다 구원의 감격속에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곧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신부가 신랑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십자가의 길목에서 주신 예수님의 세마디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이 시간 주님의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다. 서서 구경하면서 비웃는 군중 속에 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갔던 구레네 시몬처럼 살기를 원하십니까? 끝내 예수를 거부하고 죽어버린 한 행악자와 같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주님과 함께 낙원에 이른 강도처럼 구원의 감격 속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2006-02-26 23:02)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