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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호숫가에서 바뀐 인생 (눅 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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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서 바뀐 인생 (눅 5:1-11)

오늘 이 이름다운 해밀턴 호숫가에 모여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게 되니 정말 좋군요.

오늘은 호수에 관련된 얘기를 해 봅시다. 우리 주님이 주로 활동하셨던 곳은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습니다. 호수 주변의 마을들을 다니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활동무대는 바로 그 호수였던 셈이죠. 예수님은 이 호수를 수도 없이 건너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이 호수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호수를 걸어서 건너신 적도 있었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적도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아마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이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몇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입니다. 그날 아침, 그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을 계기로 베드로의 인생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몬은 그날 아침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시몬은 이웃 마을에 사는 예수라는 목수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몬의 작은 고깃배도 그 젊은 목수가 만든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뱃사람 시몬과 목수 예수는 사업거래상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겠군요. 시몬의 전화번호 수첩에 나사렛의 목공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거나, 주머니에 그 목수의 명함이 들어있을 정도는 되었겠지요.

그러던 시몬이 예수님과 좀더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종교적 열심이 남달랐던 동생 때문이었습니다. 시몬의 동생 안드레는 요단 광야에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다가 메시야가 오셨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 그 메시야를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를 모시고 집으로 와서 형 시몬에게 소개를 시켰지요. 동생 안드레가 모시고 온 메시야는 다름 아닌 이웃 마을의 목수 예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타난 예수는 더 이상 이웃 마을의 목수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알고 지내던 그런 관계로 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고깃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값을 흥정하던 그 때의 상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목수는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목수가 아니라 랍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동생 안드레는 그 목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목수는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랍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선지자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그 선지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인기가 높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지만, 안드레를 통하면 쉽게 만날 수가 있으니까요.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와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이제 잘 하면 우리 식구는 병원에 갈 일이 없겠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여느 날처럼 고기를 잡으러 밤에 호수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 따라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호수바닥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 살았는데, 그렇게 밤새 허탕을 치는 날이 많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말 재수가 없는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새 헛수고만 하고 이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요. 빨리 그물 씻어 말려 놓고 집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눕히고 한숨 자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산비탈 저쪽에서 수많은 군중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그 예수를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시몬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물 씻던 손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사람들 앞장서 오던 그 선지자와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목수가, 아니 그 랍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잠시 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곧 죽어가던 장모를 살려준 것을 생각하면 그까짓 배 좀 태워드리는 것이 대수겠습니까? 시몬은 얼른 배에 올라 그 젊은 랍비를 배에 태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배에 앉아서 군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호숫가에 모여 있고 예수님은 살랑살랑 파도에 흔들리는 배에 앉아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오직 한 사람, 시몬만이 예수님과 함께 그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동안 시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밤새 고기 잡는다고 피곤해서 그만 꾸벅꾸벅 졸았을까요? 천만에요! 졸음이 오겠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고기 잡는 어부 생활 수십 년에 이렇게 흥분되는 일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물을 경계로 해서 모든 사람들은 육지에 앉아 있고 예수님과 자기만 물위에 떠 있습니다. 그 대단한 양반을 내 초라한 고깃배에 태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겠어요? 아침 햇살이 잔잔한 호수 위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정말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시몬!' 갑자기 예수님이 부르는 소리에 시몬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새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을 향해 웃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고기는 좀 잡았나요?' '아이구 선생님, 말도 마십시오. 내 평생에 이런 날은 또 처음이구만요. 어떻게 밤새 피라미 한 마리 걸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허허, 그래요? 그럼 저쪽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한번 내려봅시다.'

아니, 뭐라구요?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구요? 글쎄 밤새 한 마리도 못잡았는데... 가 봐야 뻔한데... 그리고 그물도 다 씻었는데...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에는 저항할 수 없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시몬은 기분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끌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몬은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밤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고기들이 이곳에 다 모여서 무슨 회의를 하고 있었는지, 그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급히 달려온 다른 배에까지 고기를 채웠는데도 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

그제야 시몬은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적어도 고기 잡는 일에는 내가 전문가인줄 알았더니, 이 분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구나. 그런데 그런 분이 내 이 작은 배에 와 계시다니! 내가 도대체 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분을 모시고 있을 수 있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시몬은 두말 할 것 없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주님, 저를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감히 주님이 저의 배에 와 계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엎드린 시몬의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은 무척 부드러웠습니다. '시몬,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나의 배에서 고기를 잡아라. 너는 지금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그 말씀에 시몬과 또 함께 고기를 잡던 동료 어부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남은 삶을 주님께 바친 것입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이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내면적인 깊은 관계는 없습니다. 그저 사업상 만나는 정도지요. 교회에 나가는 것은 사교적인 모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가까이서 대할 기회가 많지만, 동생의 도움이 없이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마누라가 집사야. 마누라 치마끈만 꽉 잡고 있으면 천당가지 않겠어?' 우리가 농담으로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요?

제가 만나서 얘기를 해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상대하기가 곤란한 사람들은 '내 동생도 목사인데...'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 당신 목사야? 내 막내 동생도 목사인데...' 이런 식이죠. 저도 형님들이 여러 분 계시지만, 혹시 저의 형님들도 어디 가서 '내 동생이 목사인데...' 이런 말 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동생이 목사 아니라 목사 할아버지라도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문제는 내가 정말 예수님과 어떤 관계냐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그 예수님으로부터 큰 신세를 진 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시몬의 경우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거든요. 참 감사하지요. 그렇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아직 예수님과의 관계는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아,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아직까지 우리는 그분을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그 호숫가에서 베드로에게 다가오셔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베드로를 부르신 것처럼, 주님은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피상적인 그리스도인, 그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의 모습으로는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어느 정도 알고 지낸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깊은 내면적인 체험이 우리에게 필요
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그분께 완전히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충성한다고 하지만, 아직 모자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더 친밀한 관계, 더 중요한 관계로 발전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께 더 의지하고 주님을 더 신뢰하는 자리로 주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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