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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삶 (마 08: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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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부제는 '숨겨진 십자가'입니다. 사복음서에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 잘 알 수 없지만 부분적인 내용을 통해서 알려진 것은 예수님의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그의 아버지를 도와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소년 시절 어느 날 목공소 긴 의자에 앉아 열심히 무엇을 만들다 저녁 석양 시간에 일손을 멈추고 목공소 앞에 나아와서 석양 햇빛을 흠뻑 받으며 전신을 펴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때 석양의 햇빛에 반사된 사지를 쭉 편 예수님의 그림자가 그가 선 뒤쪽 벽에 십자가 형태로 비춰졌습니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었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벽에 비춰진 십자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미래에 예수님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내다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고 예수님과 관련된 많은 감동적인 그림을 그린 홀만 헌트(Holman Hunt)의 '나사렛 목공소 앞에 서 있는 소년 예수'(Jesus at the door of the carpenter's shop in Nazareth)라는 성화의 내용입니다.

성화의 내용을 다시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저녁 석양 햇빛을 받으며 소년 예수는 목공소 앞에서 사지를 쭉 펴고 서 있고 그의 뒷벽에는 십자가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배경에 서 있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화가 홀만 헌트는 암시적으로 장차 예수님이 담당하셔야 할 일이 어떤 것임을 십자가의 그림자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담당하셔야 할 일은 예수님 생존시에나 그 후 오늘날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다니면서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도 예수께서 담당하셔야 할 일과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그가 담당하셔야 할 일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세상에 분명히 드러내시는 길이 예수님이 담당하셔야 할 일 그 자체이며, 예수께서 담당하셨던 그 일이 예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제자들의 답변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답변한 내용에는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한 고백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리스도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무엇으로 그러한 추측이 가능한가 하면, 나중에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시라는 것을 밝히셨을 때 베드로는 그러한 분으로서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러한 생각이 가능합니다. 베드로에게 그리스도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셔야 할 분인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예수님은 드러내 놓고 자신이 누구임을 직접 알리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그 자신은 '많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분으로서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예수는 헌트의 그림에 그림자로 비춰진 십자가를 그의 운명으로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십자가는 명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흉악범을 매다는 형틀이었습니다. 그러한 십자가를 예수께서 짊어지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러한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 자신 때문이 아니며 우리들의 어두운 운명 때문입니다.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누구나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그림자를 운명적으로 짊어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몫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어두운 그림자는 죄로 빠져 들어가는 본성과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그림자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죄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항상 집요하게 따라 다니는 어두운 그림자는 어느 순간에라도 우리의 삶을 무위로 끝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그림자는 우리의 그러한 운명을 벗겨주신 십자가입니다.

본문에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자기 십자가'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운명적으로 짊어지고 태어나는 그 절망적인 운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십자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후에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고 있는 하나님의 미래에로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현실에서 스스로 선택한 사랑의 짐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음 또는 그를 따름에 대해 많이 강조합니다. 교회에서 그러한 말의 뜻이 대부분 윤리적으로 인간 완성의 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따르라는 부르심'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종말론적인 것으로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고 있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에로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벗어놓고, 그의 모든 소유를 뒤로하고, 사멸되고 있는 옛 세계와의 유대 관계와 자기 자신의 목숨에 관한 염려는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결단의 삶에서는 새로운 책임과 소명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수고와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질 수 없습니다. 자기 부인의 길 그 자체가 십자가적 삶이 됩니다. 자기 부인이란 옛 것에 대한 것과의 유대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므로 받는 고난과 수고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같은 의미를 갖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세상 구원을 위함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고난은 그의 고난에 동참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율겐 몰트만(Julgen Moltmann)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태와 십자가가 시대적 상황과 함께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이렇게 정리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잡신들, 귀신들, 우상과 미신으로 가득했던 사도 시대에서 십자가는 신앙의 순종을 나타내는 사도들의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도직 그 자체를 신실하게 수행해 가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따름이며 십자가였습니다.

그 다음 교회에 대한 박해가 극심할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태는 순교였습니다. 그 당시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세계의 지배자들 앞에서 순교자들의 십자가는 십자가에 달린 그 분의 다스리심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박해 시대에 순교는 특별한 은사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최고의 영광의 절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처형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순교를 십자가에 달린 그 분과 함께 거두는 승리로 이해했고, 그것을 곧 삶의 완성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순교에 대한 그러한 이해가 나중에는 교회의 제단들을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무덤과 성유물 위에 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태는 수도자적 삶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의미는 모방의 개념으로 바뀌어지면서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굴욕은 사라지고 기독교적인 겸손의 덕이 형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나라를 경험한 것과는 다른 영적인 고행의 훈련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 당시 많은 수도원이 창설되었고 독신생활, 청빈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최상의 덕목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나온 유명한 책이 토마스 아킴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이 책은 중세 시대 모든 수도자들의 유일무이한 수도적 지침서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사랑 받는 기독교 영성생활의 지침서입니다.

사도 시대의 사도의 십자가&8228;박해시대 순교의 십자가&8228;중세시대 수도자적 고행의 십자가를 진 모든 증인들의 공통점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숨겨져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지난 시대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이 세상에 그 십자가를 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회가 그 십자가를 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교회가 져야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시대적 상황이 그러한 십자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도로 기술화된 사회로 모든 인간적인 상황이 경직되어 있고, 거기에 따라 보편적인 무감각이 대중의 병으로 만연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상품 숭배주의와 인간이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무신론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신비스러운 능력입니다. 모든 새로운 것들의 시작이 이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죽고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죽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형체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이러한 십자가의 신비스러운 힘을 세상에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시대에 사랑의 십자가를 지신 대표적인 분 몇 분을 말씀드린다면 손양원 목사님&8228;마더 테레사입니다.

교회가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에 화려한 교회 건물이나 조직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그 분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예수를 선지자라 하거나 성인이라 하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현실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그 기업의 현장에서, 교육하는 분은 교육의 현장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그 정치 현실에서, 금융기관에서 종사하는 분은 그 현실에서, 공무원은 그 삶의 현장에서 각각 부름 받고 있습니다. 그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굳데 닫혀진 영혼의 문을 열게 하고,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갈라진 것을 하나로, 분열과 상처를 치유합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 역사는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의 시작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십자가는 모든 피조물의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의 십자가를 바라다 볼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면 그 때 교회 선교는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십자가 앞에서'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리면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여,
하늘의 영광이여 영원한 구원,
의로운 자들의 지탱
그리스도인의 빛이여
너로 하여 하나님이 지상에서
육(肉)을 취해 종이 되셨고
너로 하여 인간이 하늘에서 왕이 되었도다.
너로 하여 참 빛이 떠오르고
밤의 어둠을 이겼도다.
너는 우리를 위해
여러 나라의 우상을 둘러 엎었도다.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하나로 묶는 평화의 끈이며
모든 이가 너를 거쳐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가 되었도다.
너는 언제나
믿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 집의 지탱이요
우리 기둥이요, 빛이니
우리 방주의 인도자로다.
십자가 안에서 믿음이 견고해지고
십자가 안에서 우리 영광이 마련되기를.
-놀라의 파올리노 5세기 ―

 (2006-02-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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