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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하여 (눅 0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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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하여 (눅 1:13-17)

1. 천사를 만난 사람

우리가 아주 예쁜 여자를 보면 천사처럼 예쁘다고 말합니다. 또 마음씨가 아주 고운 사람을 보면 천사같은 마음씨를 가졌다고 하지요. 전통적으로 천사는 여성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에스더도 꿈에 천사를 만났다고 종종 그러더군요. 분명히 여자였겠지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천사가 여성스럽게 나타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강하고 위엄을 갖춘 남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천사를 남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사에게는 성(性)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천사를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은 사가랴, 직업은 제사장, 나이는 대략 60대 초반으로 추정됨. 그분을 모시고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사를 만나셨다는데, 어디서 만나셨나요?
성전 안에서였습니다.

-그때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제비에 뽑혀서 몇 년만에 다시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습니다. 제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왔다는 생각에 저는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고, 매우 조심스럽게 향불을 지폈습니다. 옛날에 이 향불을 부주의하게 다루다가 죽은 제사장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향불을 지폈는데 바로 그 순간 향불 곁에 천사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저는 제가 무슨 큰 실수라도 저지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벌하려고 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죠. 그 순간 저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렇게 살아 나오신 것을 보니 실수를 하신 것은 아니었군요?
그 천사가 온 것은 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벌벌 떨고 있는 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더군요.

-천사가 말을 했군요. 어느 나라 말을 하던가요? 혹시 하늘나라 말을 알아듣기가 어렵지 않던가요? 우리는 영어를 알아듣기도 쉽지 않은데...
천사가 사용하는 말은... 음... 아 예, 바로 우리 나라 말이었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그런데 천사가 무슨 메시지를 전해 주던가요?
그것은 저의 집안 일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천사가 제사장님의 집안 일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서 성전에 나타났단 말입니까? 그 정도라면 제사장님 집으로 찾아와서 얘기해도 될 일 같은데... 게다가 성전 밖에는 온 백성이 기도하며 모여 있었다고 하던데요.
사실은 저희 집안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큰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정말 중요한 메시지였겠군요. 천사를 만난 후 말을 못하게 되셨다는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천사가 전한 메시지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한 말은 한 마디로 '너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늙도록 자식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평생을 두고 기도해 온 것은 아들을 낳게 해 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40대가 지나고 50대가 되어서도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50대였을 때만 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들을 위한 기도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60대가 되었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기도하는 것을 포기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가랴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우선 사가랴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늙도록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는 주책없는 늙은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나 되어서 아들을 낳았지 않습니까?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도 임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이라고 했지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실물처럼 확신하는 것이요,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치 손에 잡은 것처럼 믿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봄에 나무에서 꽃이 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죽어버린 고목에 꽃이 필 것을 기대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얼토당토 않는 것을 바라고 의심하지 않으면 믿음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억지이겠지요. 믿음과 억지를 구별할 줄도 알아야겠군요. 어떤 경우에는 믿음인지 억지인지 구별할 수 없는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억지 같은데 하나님께 응답되는 믿음으로 판가름나는 수도 있고, 좋은 믿음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믿음에는 다소 억지 같은 면이 없지 않습니다. 60이 넘은 노인이 아들 낳게 해 달라고 한다면 누가 보든지 억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믿음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 억지를 부리듯이 매달려 간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허락해 주실 것으로 믿고 낙심하지 않고 구하는 것이 있습니까? 한두 번 구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안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그만 둔 것이 있습니까? 다시 그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진지하게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고목나무에서도 꽃이 피게 하시고 다 늙은 부부에게서도 아들을 낳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간구가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가랴가 요즘에는 아들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가랴의 무슨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까? 사가랴가 포기하기 전까지 열심히 드렸던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이제야 응답을 하셨다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늘나라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오래된다 해도 분실되거나 화재를 당해서 소실되는 일이 없습니다. 오래돼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하나 하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놓치시거나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들이 모두 공정하게 처리될 것입니다. 별 의미가 없고 응답될 수 없는 것이면 거절이 되겠지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라면 금고 깊숙히 보관되었다가 때가 되었을 때 응답이 될 것입니다. 사가랴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겠지요. 기도를 해 놓고 사가랴 자신도 잊어버렸습니다.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잊지 않으시고 때가 되어 이렇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3. 메시야의 선구자

또 여기서 사가랴의 기도를 단순히 아들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제사장으로서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한 기도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구원해 주시기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사가랴는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를 사가랴의 아들로 보내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은 사가랴의 기쁨이 될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 역시 그의 출생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아들은 사가랴의 아들로서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도 온 민족을 위해서 주어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해서 태어난 사가랴의 아들 요한을 가리켜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우선 그의 출생이 그랬습니다. 그의 출생은 아무도 기대하지 못하고 믿기 어려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보다 더 큰 기적인 그리스도의 출생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입니다.

이제 흑암에 거하던 사람들에게 빛이 비취고 그들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메시야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한 사람의 경건하고 충성스러운 제사장이 선택되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선택되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선택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이 선택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의 아들이 선택되었습니다. 그의 이 모든 환경과 형편을 통해서 메시야의 선발대인 요한이 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마치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먼저 보내십니다. 마침내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이 땅에 임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고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오신 성탄이 이제 한 주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주님 오시는 길을 예비했던 요한처럼, 다시 한번 주님 오심을 기뻐하고 축하할 뿐 아니라, 우리 주님으로 인한 구원을 선포하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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