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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01: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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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녀여, 아기를 낳아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 역시 깜짝 놀랄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마리아가 임신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가랴에게 아들을 약속하는 천사의 메시지는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가랴로서는 평생을 두고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날벼락같은 소리였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였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했지요.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특히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처녀가 아이 낳는 것이 말거리도 되지 않더군요. 바이블칼리지에서 지난 겨울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어 처음 채플시간인데, 학장님이 광고시간에 말씀하시기를 지난 방학중에 아이를 낳은 학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살던 패밀리플랫에서 방학중에 아이 낳은 집이 세 집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광고하고 축하해 주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여자 기숙사에 있던 학생이 아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가씨가 애를 낳은 것이지요. 방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임신한 줄 몰랐던 한 학생이 아이를 안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학장님이 그 학생과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축복했습니다.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해!' 이것이 그날의 주된 분위기였습니다. 그날 아이를 낳은 가정들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저 그런 것이고, 처녀가 아이를 낳으니 모두 축복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계속해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말은 그런 학생은 학교에서 당장 퇴학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용납하고 축복해 주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더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살던 플랫 바로 뒷집에는 21살짜리 아가씨가 여섯 살짜리 딸을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지난 번 선거에서 내년 학생회 임원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습니다. 싱글맘이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좀 더 조심하고 배려해 주는 경향은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성경말씀을 읽을 때 오늘날 뉴질랜드에서 볼 수 있는 싱글맘이나 아이 낳은 처녀를 염두에 두고 해석을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 당시에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되었는지를 염두에 두고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마리아 같은 처녀가, 그것도 약혼을 해서 결혼을 앞두고 아이를 낳았다면,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축복해 주었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그 사회에서 살 수 있었을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유다는 과부가 된 자기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끌어내서 불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창 38:24). 구약의 율법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했을 때 처녀가 아니었다는 것이 들통나면 동네사람들이 그 여자를 끌어내서 돌로 쳐 죽이도록 했습니다(신 22:21). 또 처녀가 약혼을 한 후에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면 둘 다 돌로 쳐 죽이도록 했습니다(신 22:23-24).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돌로 쳐 죽이겠다고 했지요(요 8:3-11).

그러한 사회적인 풍습 가운데서 약혼을 한 마리아가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곧 돌에 맞아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마리아는 결혼을 앞두고 혼수감 장만하느라 마음이 들떠 있는 상태입니다. 요즘에는 혼수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마음이 상하는 신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혼수감 장만하는 신부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나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차 있겠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의 신부에게 임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날벼락 아니겠습니까? 눈앞에 다가온 결혼이 파경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집을 더럽힌 여자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끌려가서 동네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처녀가 간통하다 들통나면 오빠가 그 처녀를 칼로 죽입니다. 자기 집안을 수치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수치를 제거한다는 것이지요.

2. 마리아의 믿음

그런데 임신해서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의 반응은 놀랄 만큼 담담합니다. 마리아는 지금 천사가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메시야를 잉태할 몸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벌써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싫어요! 싫어! 난 곧 시집갈 거란 말예요! 남의 혼사 망치지 마세요!' 이렇게 길길이 소리치며 날뛰어도 부족했을 텐데, 그런 상황은 이미 마리아의 안중에도 없습니다. 벌써 다른 차원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천사가 말했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1-33절). 그때 이미 마리아는 천사가 오래 전부터 약속된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메시야를 보내시는데, 바로 마리아의 아들로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지금 한가하게 자기 혼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이것을 보면 마리아의 믿음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척도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우리의 믿음이 어렸을 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며 그것들을 구합니다. 자기 개인적인 유익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요. 그러다가 믿음이 자라면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기도할 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민족과 세계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까지 기도할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 일을 위해서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그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기 개인의 일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경우를 보세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메시야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일이 더 큽니까? 아니면 자기 시집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까?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에게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자기 시집가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성숙한 믿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개인의 일은 두 번째가 됩니다.

3.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때

그러나 마리아로서도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고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모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의심하기보다 물어보게 되지요? 이것이 마리아와 사가랴의 차이였습니다. 사가랴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어보기보다 의심을 했습니다. 믿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말을 못하게 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친절히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마리아의 이 질문도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천사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겠지요.

천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하시면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엘리사벳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해서 벌써 6개월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늙은 엘리사벳이 임신할 수 있도록 하시는 능력이 있으시고, 마리아로 하여금 남자와의 관계 없이도 임신하도록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믿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번은 나폴레옹의 말이 도망을 쳤습니다. 한 병사가 쫓아가서 그 말을 잡아왔어요. 그리고 황제에게 돌려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나폴레옹이 그 병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네, 대위.' 그러자 그 병사는 '감사합니다, 폐하!' 이렇게 경례를 하고는 당장 가서 사병의 군복을 벗고 대위의 복장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만약 이 병사가 '폐하, 저는 대위가 아니고 일등병입니다.'라고 했다거나 '저 같은 졸병이 어떻게 대위가 된다는 말입니까?'라고 했다면 그 황제의 선물을 받지 못했겠지요. 기분이 상한 황제가 그 선물을 취소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마리아를 '은총을 받은 자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해되고 그 상황을 다 깨달았을 때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소서.' 그러자 천사가 안심하고 떠났습니다. 떠나는 천사도 마음이 편하고 기뻤겠지요. 6개월 전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러 사가랴에게 나타났다가 의심하는 사가랴에게 벌을 내리고 떠날 때는 천사의 마음도 무거웠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에 쓰임받게 되었고, 자신 역시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귀한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마리아의 순종은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는 마리아의 응답이 우리의 응답이 되고, 우리도 마리아처럼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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