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왕을 맞으라 (마 02:1-12)

첨부 1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의 배경으로 왕궁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주제는 '왕이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탄생은 왕의 탄생이다. 왕의 탄생이기 때문에 배경이야기가 왕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것은 누가가 그리고 있는 예수의 탄생이야기와 대조를 이룹니다. 누가의 이야기에는 왕궁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초라한 마굿간이 그 배경이고, 예수는 말밥통을 침대삼아 누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경배하러 온 사람들도 귀족이나 고관들이 아니라 밤새워 양을 지키던 목자들, 즉 하층민이었습니다.

1.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마태의 이야기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들의 정체에 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박사학위를 어느 대학에서 받았는지 모르지요. 물론 박사라는 표현은 우리말 성경에 국한되는 말입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점성술이 발달한 페르시아에서 왔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그들이 메시야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들의 학자였는지 점성가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둘이 혼합된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들의 별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였고 얼마나 신빙성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별을 보고 유다에 왕이 태어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별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그 박사들에게만 보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 별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박사들을 인도했고 아기 예수가 있는 곳에 와서 머물렀지 않습니까? 그렇게 임의로 움직이는 별은 없습니다. 그 별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 것은 자연적인 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제작해서 사용하신 별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2. 왕궁의 소동

왕이 태어나는 곳은 왕궁입니다. 그래서 박사들은 먼저 왕궁에 와서 태어나신 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왕궁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왕궁에서 왕이 태어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왕궁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엄연히 왕이 존재하고 있는데 또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기존의 왕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 다른 왕이라는 존재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온갖 수단을 다해서 새로 태어난 왕을 제거하려 합니다. 나중에는 심지어 두 살 아래의 모든 어린아이들을 학살하면서까지 그 왕을 죽이려 했지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은 다스리고 지배하는 분이지요. 그분께 우리는 복종하고 그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왜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우리에게 다른 왕이 있다면 불가능하겠지요. 헤롯은 죽을 때까지 새로운 왕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 우리가 받들고 섬기는 왕은 무엇인가요? 우리로 하여금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왕으로 섬기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청산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이할 것입니까? 왕으로 모실 것입니까? 아니면 그 왕을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할 것입니까?

4. 왕되심의 증거

박사들은 그 아기가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별이었지요. 그들이 연구하고 전공했던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확신하고 그 증거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입니다.

별을 연구하는 사람은 별 연구로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증거하고,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수학으로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문학가는 문학으로, 사업가는 사업으로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증거해야지요. 목사인 저는 목사의 임무와 책임을 수행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확신하고 증거하도록 애쓰겠습니다. 학생은 자기 공부하는 일에서, 주부는 집안살림과 가족을 돌보는 일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증거하도록 하십시오.

5. 왕께 경배하라

박사들이 아기 왕을 찾았을 때 기뻐하며 그 왕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왕에 대한 자세는 경배이어야 합니다. 왕은 농담 주고 받는 대상도 아니고 본체 만체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오로지 경배의 대상일 뿐이지요. 그래서 박사들은 그 왕을 알현했을 때 경배를 드렸습니다. 모든 예의를 갖추어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경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늘 우리 주님을 경배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늘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박사들이 그 왕께 경배를 드리면서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들이 바친 예물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드린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들이었습니다. 황금은 왕권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다시 한번 상징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 예물인 유향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의 상징입니다. 유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향을 피우지 않지요?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제사를 드릴 때 향을 피웁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되는 유향을 예물로 드렸다는 것은 그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 예물 몰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 몰약은 죽은 시체에게 바르는 약이에요. 시체가 금방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던 약이었습니다. 그 동방에서 온 별박사가 왜 시체에 바르는 약을 이 아기왕에게 예물로 바쳤는지는 수수께끼이지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시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실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맞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가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수학에서 말하자면 상수에 해당되는 요인이지요. 그렇다면 변수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구를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고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고 맞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왕의 백성이 될 것이고, 그 왕께서 하사하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다른 왕을 섬기고 있다거나 우리 자신이 왕이 되어 있을 때는 그렇게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용납하지 못하고 배척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가짜 왕을 따르느라 진짜 왕을 배척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고, 그 실수의 대가는 왕께 반역함으로써 받게 될 저주와 형벌이 될 것입니다.

왕으로 오신 주님을 우리가 맞이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에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 왕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기쁨으로 모셔들이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