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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긁어 부스럼 (마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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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긁어 부스럼을 많이 만들어요. 뭐 좀 비틀어지고 어긋난 것을 그대로 못참는 성미거든요. 그래서 집에서도 고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뭐가 좀 완전하지 않다 생각되면 고친답시고 뜯었다가 아주 못쓰게 만드는 수가 종종 있어요. 그렇게 해서 물론 제대로 고치는 수도 있기야 있지요. 하지만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그것에 대한 필요한 지식도 없으면서 만졌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많다는 말이지요. 그대로 두었으면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아예 쓰레기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그것을 못쓰게 만들 작정으로 손을 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대로 고쳐보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일을 했는데도, 결과는 정반대가 나왔습니다. 의도가 선했다고 해서 나쁜 결과를 눈감아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어쨌든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긁어 부스럼을 하나 봅니다. 동방에서 별을 보고 새로 태어나신 왕께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박사들이 왜 헤롯에게 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괜히 헤롯에게 가서 메시야가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바람에 죄없는 아기들만 학살당해야 했지 않습니까? 박사들이 헤롯에게 간 행위가 간지러운 데 긁는 행위처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당장 시원할지는 모르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결과는 수많은 아기들의 학살이라는 엄청난 부스럼이었습니다. 헤롯이 메시야를 죽이려고 한다 해서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헤롯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를 죽일 능력과 권한이 없어요.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계획이 일개 왕에 의해 차질을 빚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헤롯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았건 알지 못했건, 아기 예수의 생명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바에 왜 하나님은 이 박사들이 헤롯에게 가는 것을 내버려두셨을까요? 박사들이 헤롯에게까지 갔던 것은 새로 태어난 왕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왕이 태어난 곳은 왕궁이라고 생각했음 직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왕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서기관들의 도움으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물론 큰 수확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아기 예수를 찾은 것은 동방에서부터 그들을 인도했던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가 누우신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별은 중간에 사라졌단 말입니까? 중간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박사들을 인도했더라면 그들이 헤롯에게 가서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죄없는 아기들이 학살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때 하필이면 구름이 끼어서 별이 안보이게 되었다가 나중에 구름이 걷히고 별이 다시 나타났을까요? 아니면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시각이 낮이어서 별이 보이지 않았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무렵 해가 지면서 다시 별이 보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일부러 중간에 별을 감추셨든, 아니면 박사들이 자의로 판단해서 헤롯을 찾아갔든지, 참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린 다음, 헤롯이 부탁한 대로 그에게 돌아가 발견한 모든 것을 자세히 보고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이 막으셨어요. 박사들의 보고를 접한 즉시 헤롯은 군대를 이끌고 메시야를 죽이러 올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박사들에게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박사들이 헤롯에게 가는 것을 막으실 거라면, 왜 처음부터 막지 않으셨을까요? 애초에 오기 전부터 절대로 헤롯에게는 가지 말라고 지시하셨다면 그 아기들이 희생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16절에서 18절에 보면 분노한 헤롯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어린 아기들을 학살했는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집집마다 들어가 두 살 이하의 아이들만 끌어내 죽였습니다. 두 살 아래면 우리 아이린이나 은비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죽은 아이들도 아이들이려니와 졸지에 어린 아기를 빼앗긴 부모들에게는 그 무슨 날벼락입니까? 라헬이 자식을 위해 애곡하는 소리가 천지에 울렸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라헬이란 특정한 여자를 말한다기보다 아들을 빼앗긴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그렇게 아들을 빼앗긴 어머니들이 위로받기를 거절했어요. 너무 슬프고 기가 막혀서 위로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시는 과정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셨을까요? 그 박사들이 헤롯에게만 가지 않았더라면 이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 박사들을 탓할 수도 없지요. 먼 나라에서 온 그들이 이스라엘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알았겠어요? 그저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왕궁으로 가서 물어본 잘못밖에 없지요. 하지만 그들이 악한 의도도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지라도, 결국 그들이 헤롯에게 갔던 것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학살당했다는 데는 도의적인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어쨌든 하나님이 마음만 먹었으면 박사들이 헤롯에게 가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박사들보다는 하나님께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여쭤 보아야죠. 하나님,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예요. 아무리 우리 생각이 타당해 보여도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우리보다 훨씬 지혜로우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그의 메시야를 보내시면서 얼마나 지혜롭게 일을 행하셨겠어요? 그저 미련한 우리 생각에 이상해 보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다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믿고 순종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것을 자꾸 끄집어내서 만져보고 뜯어보고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긁어 부스럼 만드는 행위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그래서 생겨난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이해가 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들 죽지 않도록 하셨어야 할 것 같은데, 안하셨단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을 만한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색과 논리에서 나온 것이 바로 자유주의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무엇이 나왔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없는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자꾸 긁어가지고 얼마나 기가 막힌 부스럼을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박사들이 헤롯에게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사실은 박사들이 헤롯에게 갔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단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셨고, 그것도 가장 비천하게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무도 이 아기의 출생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누가 선물이나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겠습니까? 그래서 겨우 찾아온 것이 목자들이었습니다. 밤새 양이나 지키는 목동들이야말로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가장 적합한 축하객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누가가 기록한 관점입니다.

그러나 마태의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양간에서 태어나셨다는 이야기를 마태는 하지 않습니다. 목동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빼버렸어요. 그 대신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동방에서 박사들이 왕께 바치는 선물을 가지고 찾아온 거예요. 마태는 지금 왕이 태어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왕이 태어나셨는데 몰래 숨어서 그렇게 오셔야 되겠어요? 온 세상에 '왕이 태어나셨다!'라고 선포해야지요. 이것이 바로 박사들로 하여금 헤롯에게 가게 했던 이유인 것입니다. 세상 권력을 쥐고 있는 왕 헤롯에게 가서 '너보다 훨씬 높고 크신 왕이 태어나셨다'라고 지금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에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했어요. 축하를 하든, 아니면 헤롯처럼 이를 갈든, 하여튼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은 온세상이 깜짝 놀라 일어날 만한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메시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미쳐 날뛰는 헤롯에 의해 안타깝게 학살당한 아기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자기 권력유지에 혈안이 된 헤롯의 광기어린 행위로만 볼 것이 아니에요. 그 배후에 있는 심각한 영적 전투의 한 장면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해를 옷으로 입고 달을 신발로 신고 열두 별을 면류관으로 쓴 여자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은 장차 만국을 다스릴 남자였어요. 하늘에서 내쫓긴 용이 이 여자를 죽이려고 입에서 물을 강같이 토해냅니다. 여자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땅이 입을 벌려 그 물을 다 삼켜버렸어요. 용이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바다 모래 위에 싸울 태세를 갖추고 섰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눈에 보이는 헤롯의 배후에 이러한 치열한 영적인 전투가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왜 하나님이 박사들로 하여금 헤롯에게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결국 수많은 아기들이 무참하게 죽게 했느냐고 왈가왈부하며 수준 낮은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 아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가 싸우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희생을 당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최초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죽은 아기들을 심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합당한 영광과 상급을 주셨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소관이지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할 성질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를 없애버리려고,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고 날뛰는 어둠의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전혀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그 예수, 그 메시야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감사함과 동시에, 또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가 기뻐하고 서로를 축복하게 됩니다.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서입니다.

오늘 크리스마스가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인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런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합니까? 그들의 크리스마스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요. 이 세상이 즐기고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에는 Warehouse와 K-mart의 크리스마스 빅세일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행복해하는 크리스마스에는 메시야이신 예수 대신에 1년을 꼬박 기다리며 준비해 온 휴가만 있을 뿐이지요.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고 있는 짓입니다. 헤롯의 광기를 이용해 메시야를 없애버리려고 했던 사탄은 오늘도 세상의 쾌락과 욕망을 무기로 이용해 예수를 없애버린 크리스마스를 대량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사탄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대량 학살하고 있어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메시야가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의 공격과 위협 사이를 뚫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왕의 오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모습으로 메시야를 증거해야 해요. 또한 이 메시야를 없애려는 사탄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사탄의 거짓말과 계략에 정면으로 맞서 싸움으로써 이 귀하고 복된 성탄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성탄이 여러분의 삶 속에 참으로 큰 기쁨과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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