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아내를 위한 마라톤

첨부 1


대이비,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아 왔구나!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낀 새벽에 운집한 6천 명의 마라토너들 중에서 두 살짜리는 너 혼자뿐일 거야. 난 우리가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린 함께 지금까지 연습해 왔고 넌 조깅용 유모차(어른이 아기를 데리고 다니며 달리기를 할 수도 있고 해변가나 산에 갈 때도 아기를 데리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유모차; 편집자 주)타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니.

만약 우리가 고갯길과 콘크리트길로 된 26.2 마일(마라톤의 표준 거리는 42.195킬로미터이다; 편집자 주)의 전 구간을 달린다면 아빠인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샌프란시스코 마라톤을 완주하는 셈이야. 대이비, 우리는 엄마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거란다. 아니, 너는 아직 어려서 엄마를 위해서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이해 못하겠지?’

나는 활짝 웃고 있는 아들의 자그마한 얼굴을 바라본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아니면 완전히 미친 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대이비가 4시간 동안을 가만히 앉아 있었던 적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대이비의 몸무게 13킬로그램에 장난감, ‘먹을 것, 물까지 합하니까 유모차는 예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처음으로 무리한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우리가 주행하려는 코스가 난코스일 뿐 아니라 마라톤은 생전 처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난 자존감을 거의 느끼지 못 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계획했던 일들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앤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 역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갈등하다가 내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인생의 목표를 이미 이룬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내게 자극을 주고 격려해 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장애인을 위한 청소년 기구에서 일하고 있었다. 금발에 약간 체격이 큰 그녀는 깊은 신앙심과 훌륭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미 육군 장교로서 그녀는 상담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앞날이 확실한 사람이 나 같은 사람에게 로맨틱한 관심을 보인 것이 내겐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독려로 ‘나는’ 공군에 입대했고 세계에서 가장 재미없는 경계 임무 지역인 노스 다코타 주의 미노트로 파견됐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나는 앤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새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앤에게 나와 결혼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전화로 청혼을 한다는 것이 로맨틱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앤은 나를 무척이나 많이 격려해 주었다.

드디어 나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1983년 8월에 우리는 결혼했다. 1년 뒤에 우리는 아기를 갖게 되었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의 하나는 1985년 10월 장교 교육을 마칠 때였다. 아버지도 캘리포니아에서 샌 안토니오로 졸업식에 참석하러 오셨다. 아내가 내게 장교 계급장을 달아 주는 동안 아버지는 우리 아기 대이비를 안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희망찬 나날만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해 12월,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해는 아내의 병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던 한 해였다. 아내의 투병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의 믿음에 대한 실제적인 시험이었다. 막판에 가서는 영적으로 너무나 약해져서 나는 기도마저 할 수 없었다.

1년 후, 1987년 1월에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나에게 대이비를 남겨 두긴 했지만 내가 앞날에 걸 수도 있는 모든 소망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다. ‘이제 마라톤 출발 신호원이 “출발선상으로!” 라고 소리치고 있단다. 대이비! 이제 결전의 순간이다, 유모차에 마스코트 인형(샌프란시스코 풋볼팀인 49ers팀의 마스코트 인형; 편집자 주)도 들어 있지? 자, 출발이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골든 게이트 공원에 울려퍼진다. 일차 출발대가 출발한다. 이들은 2시간대에 주파할 사람들이다. 3시간대에 주파할 사람들이 그 다음 그룹으로 출발하고, 대이비와 나는 그 다음 그룹에 속해 있다. 나는 우리의 완주 시간을 4시간대로 잡고 있다. 출발 지점에서는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차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몹시 붐빈다. 1마일 지점에서 주자들은 각자 간격을 두고 떨어지게 된다.

대이비는 이런 부산한 움직임과 운집한 관람객들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이비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고 내게도 활기가 넘쳐난다. 사람들에 휩쓸려 그 사람들이 달리는 대로 따라가기는 쉬운 일이다. 길도 평탄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속으로 달리게 된다. 3마일 지점. 다리 근육이 약간 굳어진다. 머리 속에서 경보가 울린다. 시계를 본다. 예정 시간보다 우리는 꽤 앞서 있다.

‘자, 아가, 주스나 좀 마시렴. 아빠의 기분은 좋은 편이지만 속도를 좀 줄여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힘이 들 거야. 우리가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아주 오랫동안 아빠는 도저히 인생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단다.’

13마일 지점. 중간 지점이다! 대이비와 나는 아미 스트리트를 지나 부두까지 이르렀다. 오전 9시 30분. 저쪽 만(灣) 위로 안개가 걷힌다. 다리 근육은 여전히 약간 굳어 있고, 과외로 유모차의 무게까지 감당하느라 허리가 아파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린 2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다. 경치가 정말 멋지다!

14마일 지점. 기랄댈리 광장을 지나 다시 해안으로 접어든다.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에 경련이 일기 시작한다.

‘음, 대이비, 문제가 생길 것 같구나. 좀 천천히 가자꾸나. 포도를 좀 줄까? 바나나를 먹고 왔더라면 지금쯤 경련을 예방할 수 있는 칼륨을 보충했을 텐데.

게토레이 음료수가 지금 마시는 수도물보다는 훨씬 나을 텐데. 미리부터 걱정하지는 말고 그냥 계속 가자꾸나.’15마일 지점에 이르러서는 통증이 더 심해진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다. 16마일 지점. 골든게이트 다리에 있는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다. 허리의 경련이 더 심해진다. 불길하다.

17.5마일 지점. 나는 “벽”에 부딪쳤다. 주자들은 모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또한 그것을 두려워한다. 더 이상 달릴 수도 없어 그냥 걸을 뿐이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반대편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다. 한 발짝도 더 옮기지 못하겠다. 그냥 바닥에 누워 버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허리 전체에 온통 경련이 인다.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을 외워본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나는 달릴 수가 없다. 거의 걸을 수도 없다. ‘사랑의 하나님, 도와 주세요. 제발, 도와 주세요!’

이런 절망감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내의 장례식 후에 샌디에이고에서 잠시 쉬다가 돌아와 텅 빈 집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도, 나는 다른 종류의 “벽”에 부딪쳤었다. 그것은 슬픔과 죄책감과 단절과 공허의 벽이었다. 더 이상 나를 격려해 줄 아내가 없었다. 나는 무척이나 많은 일을 아내의 도움으로 해냈다. 그런데 그녀 없이 어떻게 그 모든 걸 계속할 수 있겠는가? 난 그녀를 위해서 석사학위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물론, 나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냉담해져 있었다. 아내 없이 내가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18내지 20마일 지점. ‘대이비, 우리는 이 경기를 완주해야만 해! 내가 걸어야만 할 지경이라면, 물론 걸을 수 있는 한, 난 걸을 거야.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훈련도 마쳤습니다. 가능한 모든 준비도 했습니다. 다리의 경련을 제발 풀어 주십시오. 다시 출발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거의 한 발짝도 옮길 수 없게 되었을 때 대이비가 인형을 떨어뜨렸다. 그것을 주으러 되돌아가야 하지만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가만히 서서 어떤 친절한 사람이 주워다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아니, 대이비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실패한 채로 끝낼 수 있단 말이냐?’ 어쨌든, 그런 절망 가운데서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아내가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들이 여전히 맞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목표를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나는 여전히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공부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개월 동안 아내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암지원협회를 나는 돕고 싶었다. 그들은 병원에서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울어 주었을 뿐 아니라 대이비를 봐 줄 사람도 구해 주었고 심부름도 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는 다시 달린다는 것뿐이었다.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시절, 나는 국토종단 경주에서 달린 적이 있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그해 3월에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다시 문 밖으로 나서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나는 처음으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도를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아내를 치유하셨을 것입니다. 뜻이 있어 아내를 데려가시고 저는 이곳에 남게 하신 거지요? 분명 하나님께서는 제가 혼자서도 충분히 대이비를 키울 만하다고 여기셨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저를 홀로 남겨 두지 않으셨을 겁니다.”

나는 매일 달리기 훈련에 매달리게 되었다. 연습 중에 아기를 봐 줄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사람들이 말하길,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대이비를 보통 유모차에 단단히 묶고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대이비는 그렇게 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나와 함께 “달리기”를 하기 시작한 몇 주 후에는 내가 준비하기도 전에 웃으면서 유모차로 아장아장 걸어가곤 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면서 유모차 속에 머리를 먼저 들이밀고 신이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보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계속 달릴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갚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21마일 지점, 나는 다시 걷게 되었다. 단지 걷는 데 불과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찌 되었든 끝까지 완주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드디어 우리는 미술관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정말 멋진 곳이다. 우리가 언덕길의 마지막 코스에 접어들었을 때 커브길을 따라 꼬마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초등학생들임에 틀림없었다. 대이비를 보자 그들은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며 갈채를 보냈다.

대이비에게 조깅용 유모차를 사 준 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마라톤대회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다음날 사무실에서 나는 망설이다가 상관인 대령에게로 갔다. 나는 그에게 암지원협회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아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이 경기에 참여하려 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놀랍게도 그는 협조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의 계획을 알리라고 권했다. 곧 사무실과 교회에서 대이비와 내가 완주할 경우에 700달러의 기부금을 내기로 했다.

이제 우리는 22마일을 통과하고 25마일까지 주파하여 차이나타운의 언덕길을 통과하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괴상한 꼴이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분명 내가 계획했던 멋진 대단원은 아니었다. 코스 대부분을 우리는 느리게 걸어왔을 뿐이다.

한참 동안 마일 표지가 안 보였다.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픔은 계속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내가 틈만 보이면 그 통증과 피로는 나를 덮쳐 곧장 나를 주저앉아 버리게 할 것만 같다. “주님, 갈 길이 너무 멉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저를 데려다 주셔야 겠습니다.” 나는 숨을 헐떡였다.

한 걸음도 더 못 걸을 것 같았을 때, 바로 결승점이 보였다. 결승점이다! ‘우리는 해냈구나. 아들아! 저 환호하는 군중들이 보이지 않니? 그들이 우리에게 갈채를 보내고 있어! 저기 친구들, 그리고 할아버지도 계시는구나. 모두가 우리를 환호하고 있어. 하나님께서도 여기 우리와 함께 계셔. 하나님께서 전 구간을 우리와 함께 달려 주셨단다. 이제 나는 그분을 느낄 수가 있구나.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분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게 되었어.

그리고 또 있단다, 아들아. 엄마도 또한 우리와 함께 있단다. 대이비, 너와 나는 끝까지, 끝까지 버틸 거다. 너의 엄마가 우리를 무척 자랑스러워 할 거야. 여기서 단순히 마라톤이 끝나는 건 아니란다. 긴긴 인생의 마라톤에서 우리는 겨우 첫발을 내딛은 거니까 말이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