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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회계할 때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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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그때에 천국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가르쳐 주신 비유입니다. 1절부터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가 나오지요. 이 두 번째 비유에서는 각각 달란트를 분배받은 종들이 등장인물입니다.

이 두 개의 비유는 그 교훈과 의미가 같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 또 그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천국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가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지요. 신랑이 더디 왔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할 기회가 여유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어쩌면 신랑이 더디 왔기 때문에 기름을 준비할 기회가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름 준비하는 것을 미루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신랑이 밤중에 오는 바람에 기름이 없는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갈 수가 없었고, 그때서야 기름을 준비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영영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 두 번째 비유의 개요는 어떤 사람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달란트를 맡기고 멀리 떠났는데, 두 종은 그것으로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주인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았고, 한 종은 그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호된 질책과 형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우리 주님입니다. 그리고 타국에 갔다는 것은 당시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 중에 계시다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다음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와서 그 종들과 정산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언젠가 그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그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에 일어날 일이 여기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성실하게 관리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그의 교회를 그의 종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그 재능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마치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획일적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개성이 있고 또 차이도 있습니다. 능력도 다르고 취미도 다릅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각자에게 맞는 책임과 역할을 주십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그 달란트를 받은 종들이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으로 열심히 장사했습니다. 여기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차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의 태도나 상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각각 100%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그 두 종들의 성취도는 동일한 것이지요. 이 두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와 상급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 대한 주님의 칭찬은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다른 달란트를 받은 이유는 그들의 재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재능을 가졌든지, 관심분야가 무엇이든지, 그것으로 주님의 나라를 섬기고 주님께 충성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목사가 '나는 목사이니까 천국에 가면 평신도보다 더 큰 상급을 받을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빨리 꿈을 깨야겠지요? 땅에서 장로였으면 하늘에서도 장로의 상급을 받고 집사는 집사의 상급을 받을 것 같습니까? 이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평신도니까 교회 일을 대충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큰일 날 소리지요.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종은 다른 두 종들과 아주 대조적인 방법으로 주인의 재산을 관리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씀을 읽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자기에게 적게 준 것에 불만을 품고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땅에 묻어버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이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종들처럼 그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고, 이 비유의 정황에서 본다면, 만약 그 종이 다른 종들만큼 일했다면 한 달란트를 남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남긴 것으로 그 종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과 똑같은 칭찬과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세 번째 종에 대한 주인의 질책은 가혹하리만치 준엄합니다.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릅니다.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게으른 종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악한 종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종은 지금 자기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서 주인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자기가 일하지 않은 책임을 주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네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서 나나타는 한 가지 일반적인 특징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자기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지요. 이것은 솔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겁한 행위입니다. 주인은 이 종의 솔직하지 못한 핑계와 주인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여지없이 박살내 버립니다. 변명과 책임전가로 자기 앞에 닥친 형벌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이 비유에서는 두 가지 유형의 종들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유형을 더 상정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주인에게서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일을 했지만 장사에 실패를 해서 이윤을 전혀 남기지 못했거나 심지어는 본전까지 날려버린 경우입니다. 주인의 재산에 대한 공헌도를 따지자면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거나 더 못한 것이군요. 오히려 손해를 끼쳤다면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님께 칭찬을 받을까요? 아니면 질책을 받을까요? 열심히 일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지나쳐 때로는 교회를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지요. 그런 사람은 세 번째 종처럼 호된 질책과 형벌에 처하지는 않겠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종처럼 후한 칭찬을 받지는 못할 것이고,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한 천년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새로운 천년이 온다고 모두들 들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지난 천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우리의 삶을 점검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년은 우리에게 너무나 길고 또 그 세월들은 우리와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지난 백년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지난 한 해만 돌아보며 우리의 모습이 주님 앞에서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적당한 분량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다섯 달란트인지 반 달란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또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그 달란트가 다른 사람들의 달란트와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달란트를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은 그 달란트를 어떻게 했습니까? 그 달란트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만큼 열심히 나가서 일했습니까? 여러분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까? 그래서 그만큼의 달란트를 더 남기는 성과를 거두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면서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더 중요하고 큰 일을 여러분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주인은 세 사람의 종들 모두에게 달란트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분량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의 많고 적음의 차이나 성격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아무런 달란트도 받지 않고 할 일 없이 그냥 살도록 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피를 흘리고 사신 교회를 그의 종들에게 맡기고 떠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마지막으로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신실한 종들의 수고와 헌신에 의해 그 주님의 교회는 세계 방방곡곡에 세워졌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이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정산하실 때까지 이 사명은 계속해서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 주님께서 재판장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은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 계산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결산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 해를 마감하면서 중간결산을 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 처녀들이 중간에 자기들의 등불을 점검하고 기름이 없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했더라면 신랑이 오기 전에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종들이 열심히 일해서 이윤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보고 도전을 받아서 자기가 받은 달란트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중간결산을 해 보았더라면, 그 세 번째 종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나가서 일을 열심히 해서 나중에 주인에게 칭찬을 받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마지막 결산 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기 전에 우리의 삶과 신앙을 점검해 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한 해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해 왔었는지 이 시간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요구하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주님의 기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만약 지금 주님이 오셔서 결산을 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습니까? 우리가 이처럼 중간결산을 해 보는 이유는 그렇게 심판하고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최종판결은 우리 주님이 오셔서 하실 것입니다. 그 날이 왔을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나타나도록 다시 한번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기 위해서이지요. 만약 이 중간결산에서 우리의 모습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내년에 다시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충성하기를 바라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판결입니까? 우리 모두가 이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우리의 충성을 다짐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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