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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아내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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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아내의 자격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으리라. 첫째, 나는 성격이 너무 털털하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는 코트를 벗고 모자와 목도리를 벗는데, 그것들을 항상 제자리에 단정하게 놓은 적이 없다.

한 곳에 모두 쌓아두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모자는 의자 위에, 코트는 이층 서재에, 그리고 목도리는 어디에 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나는 밖에서 돌아오면 어서 빨리 남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무엇을 어디에 벗어 던지는지도 모르게 계단을 뛰어오르곤 한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이 자기의 어머니에게 온갖 이야기를 쏟아놓듯이 하고 싶은 말을 술술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코트도, 모자도 벗긴 벗었는데 어디다가 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둘째, 나는 고집이 너무 세다. 이 점이 가장 좋지 않는 것 같다. 결코 깔끔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손만큼은 아주 철저하게 씻는다. 그것이 나 혼자만 그러면 괜찮겠지만 남편에게도 강요를 한다.

'손 씻는 것은 청결과 관련된 것이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 아니냐?'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아직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나서도 손을 씻고, 머리에 손을 무심코 댔다가도 손을 씻는다.

특히 식사 중에는 밥공기와 젓가락 이외에 물건에 손을 대면 곧 손을 씻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 정도의 결벽증을 주위 사람들에게도 강요하는 것이다.

게다가 씻은 손은 반드시 깨끗한 수건에 닦아야만 하고, 한 번 닦은 수건은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인 것이다. 이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 일 년 내내 그러기 때문에 나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러한 습관을 쉽게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무슨 말이건 지나치게 딱 부러지게 한다. 나같은 사람과 함께 살면 부담스럽고 피곤하리라는 것까지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개운하지 않으니 문제이다. 언젠가 교회의 모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는 남의 흉을 보지 맙시다.'

이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나 말을 하는 나의 목소리가 크고 말끝이 하도 또렷해서 그날 처음 나온 어떤 남자는 그런 나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말까도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서로 이야기 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그처럼 나의 말투는 남달랐다. 이것은 다소곳해야 할 아내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넷째, 건망증이 아주 심하다. 물건을 사러 가서는 물건만 집어들고 돈을 치르지 않고 새침한 표정으로 나오곤 한다. 또 어떤 때는 돈만 내고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물건도 그냥 놔두고 나오기가 일쑤이다. 우산, 손목시계, 장갑 등을 잃어버리는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더욱 곤란한 일은 안면 있는 사람까지도 잘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시간에 꽤 오래 앉아서 이야기 나누던 사람을 그 후 일 주일쯤 뒤에 다시 만나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하는 생각을 할 때의 쓰라림도 종종 있는 일이다.

다섯째, 예의범절이 철저하지 못하다. 그 이유가 요양 생활을 오래 한탓만은 아닌 것 같다. 난 본래부터 단정하게 앉아 있지를 못한다. 조금 앉아 있다가는 이내 다리를 쭉 뻗거나 옆으로 누워 버린다. 그것은 아마 서너 살된 개구쟁이를 생각하면 대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가사 일에 서툴다. 특히 바느질은 전혀 손도 못 댄다. 단추를 달려고 바늘을 들기만 해도 어깨가 결리기 시작하니 말이다. 어린 시절에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그래 가지고 어디 남의 집에 가서 살림살이를 제대로 해낼 수가 있겠니?' 하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결혼한 무렵에는 전기밥솥, 세탁기가 나왔다. 나의 살림 솜씨는 점수로 따지자면 틀림없이 낙제에 해당될 것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구제불능인 것은 건강이 나쁘다는 점이다. 13년의 요양 생활을 하고 난 터라 조금만 무리를 해도 피곤해서 누어야만 한다. 아내로서 이처럼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하기도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

만일 독자들 가운데서 남편이 '당신 같은 사람은…'하고 아내의 흉을 보려 한다면 얼른 나를 기억하고 이 부분을 펴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자기 부인이 적어도 나보다는 얼마나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내를 사랑하면서 금실 좋게 사는 분도 있어요.' 하고 말씀드려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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