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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사람 (마 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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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보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이 헌법의 제정 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존재 목적이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에 관해 말할 때 이 행복의 추구권을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것,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본능적인 성향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지향점은 행복입니다. 사람마다 인생의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가 있겠지만, 결국 그것들은 행복을 얻기 위한 것들이지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그렇게 되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행복이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지요. 사람들이 가치있게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중시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최고로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행복관이 다른 것일 뿐이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삶의 방향인 것이지요.

그것이 인생이라면, 삶의 품질은 얼마나 행복한가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공한 인생이란 행복을 성취한 인생입니다. 출세를 하거나 많은 돈 버는 것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출세나 축재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큰 성공을 했을지라도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면, 인생에서 어떤 성취는 했을지 모르지만, 성공한 인생은 될 수 없겠지요.

자, 그럼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까? 아주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지만 또 만족할 만큼 행복하지도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이란 늘 추구되고 있는 미완의 상품인 것입니다. 눈앞에 있기는 하지만 손에 붙잡히지 않습니다. 손으로 분명히 잡았는데, 그리고 나서 보면 다른 행복이 눈앞에 나타나 다시 그 새로운 행복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자신 속에서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성취한 것이 많아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할 때 늘 공허하고 결핍을 느끼며, 그래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에 보면,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왕자의 동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 서 있으면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고통을 낱낱이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위가 다가와 남쪽나라로 돌아가려는 제비에게 왕자는 자신의 몸에서 보석과 금을 벗겨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부탁합니다. 화려하던 왕자의 동상은 초라하고 볼품 없게 변해 결국 그 모양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제비 역시 남쪽나라로 돌아갈 기회를 놓치고 다가온 추위를 견디지 못해 왕자의 동상 아래서 얼어죽고 말지요. 그러나 이 둘은 참된 행복을 맛보았고, 그들의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화에서 작가는 당시 사회에 만연해가던 물질주의에 대하여 사랑의 존귀함을 호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행복한 왕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무엇이 행복인가, 또는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황금 갑옷을 입고 커다란 보석이 박힌 칼을 차고 있는 왕자야말로 행복한 왕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따뜻한 남쪽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추위에 얼어죽으면서도 왕자의 사랑을 전달했던 제비의 희생이야말로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며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해 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어떤 행복인가, 가치있는 행복인지 아니면 값싸고 속물적인 행복인지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밤거리를 배회하면서 마약을 복용하고 눈동자가 뒤집혀 사는 친구들 역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최소한 마약을 복용했을 때만은 최고의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맛을 즐기는 미식가들,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금욕주의자들의 눈에는 탐욕스러운 돼지로만 보일 것입니다. 훔친 물건을 나누는 순간의 행복을 위해 도둑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담을 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어떤 행복이 진짜 행복일까요? 마약 복용하는 친구도 행복을 말하고 도둑도 행복을 맛본다면, 누구의 행복이 진짜입니까? 또 누가 어떤 행복이 진짜라고 판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투표로 결정을 해야 하나요? 아니면 대법원에서 결정을 내립니까?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이 진짜 행복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일까요?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의 '십자가'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나라를 잃고 이국 땅을 떠도는 젊은이의 자기 결단이 표현되고 있지요. 저는 윤동주가 예수를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부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그야말로 괴로운 것이었지요. 예수님처럼 괴로움을 당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처럼 부당하게 대우받고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던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분은 그 괴로움 속에서도 행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보다 행복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윤동주의 영적 통찰력도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복하게 사셨던 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야말로 행복을 정의하고 어떤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를 판단하시는 분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행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괴로움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셨고,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해 주신 약속은 그가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창 1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여러 차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자꾸 확인하셨는데, 그 내용은 그와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창 26:4). 바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라 하나를 가리켜 자손이라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갈 3:16). 이제 그리스도께서 복의 근원이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행복에 관한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 진리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소크라테스도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공자나 칸트도 나름대로 행복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근원이신 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진리이고, 그래서 그 말씀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불만이나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할 수 있는 말씀이지요. 참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행복의 근원이시며 천하 만민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시는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진짜 행복이고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행복인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행복과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들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행복을 포기해야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은 행복의 추구가 아니라 행복의 포기이고 스스로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의 행복론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이 예수님의 행복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행복론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행복의 근원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져 있다는 것입니까?

지금 예수님은 자신의 행복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윤동주가 보았던 것처럼 괴로움 속에서 행복하실 수 있었던 비밀을 우리에게 전수해 주고 계시는 거예요. 나처럼 행복하고 싶으면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이렇게 행복하니 너희도 나처럼 행복하라는 명령입니다. 복의 근원으로서 우리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시는데, 우리가 거기에 동의하지 못하고 그것을 거부한다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주님께서는 성경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은 기독교의 아름다운 액세서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피나는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서 현실로 실행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원리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좋겠다는 권고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인 거예요.

물론 저 자신도 이 말씀 앞에서 심히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이 아주 큰 부담이고 또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설교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산상수훈입니다. 나는 세상의 속물적인 행복을 추구하면서 여러분은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온유하지 못하면서 온유해야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안 들은 것으로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뛰어넘어 읽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을수록 더욱 이 말씀을 부여잡고 애통하면서 이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역사하도록 자신을 비우고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괴롭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행복하라고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괴로움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이 주님의 행복을 깨닫고 소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추구하는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여기 행복하게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분이 나누어주시는 행복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그들이 감당할 수도 없는 행복이지요. 누구의 행복이기 때문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복,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시는 행복이 여러분과 저의 삶에 가득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기쁘고 복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행복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찾고 계십니까?

우리는 앞으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행복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생각해 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참된 행복을 찾고 맛볼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게 사셨던 우리 주님의 그 행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잠깐 누리는 수준 낮은 행복이 아니라 하늘의 행복, 하나님의 행복을 지금 여기서부터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 행복한 삶을 누리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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