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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게으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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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하나 까딱 않고 잠만 자는 놈 꼴보기 싫어 누룽지 허리춤에 채워주며 밖에 내보냈다. 배가 고파 누룽 지를 꺼내 먹고 싶은데 풀기 귀찮아 못 먹고 있는 참에, 저편에서 갓 쓰고 입을 떡 벌린 자가 걸어오는 지 라 배고파서 입을 벌리고 있으려니 하고 허리춤에 있는 누룽지를 풀어주면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입 벌린 자 가로되, '갓끈이 늘어져 그걸 고쳐 매기 싫어 입을 벌리고 가는 길이오'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열자(列子)가 역시 놀기 좋아하는 호구자(壺丘子)를 만나 너는 뭘 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 느냐고 물었다. '물어보나마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워 죽겠는걸.' 게으름을 무위(無爲)라는 철학 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서양에서도 에피크로스 이래 게으름의 사상은 유구하다. 공산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 그는 <게으름의 권리>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노동을 신성시하는 도그마 때문 에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예언, 게으름의 권리 선언을 하고 있다. 게으름의 찬양자로 버트런드 러셀을 뺄 수 없다. 그는 <나태 예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하루 8 시간 노동해서 핀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기술의 발달로 같은 인원수로 두 배의 핀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모두가 8 시간 노동을 그만두고 4 시간 노동을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는 것을 부 덕시하여 8 시간 노동을 지속한다. 그럼으로써 절반은 실직이 불가피하게 되고 경제 혼란이 이로부터 야기 된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그의 스승이 성적 원망(性的願望)이 인간 본연의 것인데도 사회적, 도덕적으로 억압받고 있듯이 나태 원망(願望)도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고, 먹고 입고 살게만 되면 게 으르게 된다 했다. 옛날 베짱이는 눈보라치는 날 개미집 앞에서 내쫓겨 처량해졌지만, 현대의 베짱이는 아들개미 딸개미에 환대되어 깡깡이 켜고 디스코 추고 호강하며 겨울을 난다. 이렇게 하여 근면하던 개미 일가는 몰락하고 만 다. 개미집처럼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지면 나태 원망이 발로된다. 상공회의소가 엊그제 발표한 한국인의 근로의식을 보면 71 퍼센트가 돈 덜 벌더라도 놀고 싶다 했고, 그 비율이 10 년 전보다 무려 36 퍼센트가 증가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과소비가 급증하고 있고......바로 나태 원망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로하기 시작했다는 지표 가 아닐 수 없다. 북풍한설 막지 못하고 누더기 이불 둘러쓰고 있는 개미집이 자꾸만 연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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