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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짜 왕 가짜 왕 (마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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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이 마태복음의 원래 독자는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을 타겟으로 하는 책에서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나셨다고 기록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언어의 사용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대할 때의 감정과 비슷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헤롯 왕은 유대인들의 진짜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이두메 사람입니다. 이 이두메 사람들의 종족적 기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에돔과 관계가 있긴 합니다만, 에돔 족속도 아니에요. 과거 유다 왕국 당시 약소국이었던 에돔은 유다로부터 늘 시달림을 당하다가,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게 되자 재빨리 유다의 남부 지방으로 이주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에 잡다한 아랍 족속들이 모여들어와 에돔 족속을 밀어내고 살게 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들을 이두메 사람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두메 사람들은 오랫동안 유다의 영토 안에 살아오긴 했지만 유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이두메 사람인 헤롯이 유대의 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은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줄리어스 시저와 친분이 있던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임명을 받아서 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로마의 총독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면 오히려 나을지 모르겠지만, 자기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변방의 이두메 족속 출신이 왕이 되어 다스리고 있으니 유대인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는 일입니까? 아무도 헤롯을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유대인들의 의식세계 속에는 누가 그들의 진짜 왕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까요? 그것은 당연히 다윗이지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사울이었지만, 그는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움을 입은 왕이 다윗이었는데, 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나뉘어졌을 때에도 다윗의 왕통을 이어받은 남왕국 유다가 비록 나라는 작았지만 정통성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해서 멀리 바벨론까지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어도 이들은 다윗의 왕위가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이두메 촌놈이 와서 왕이라고 횡포를 부리고 있으니까 얼마나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까?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수께서 태어나셨는데, 마태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입을 빌려 그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헤롯이 왕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태가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나셨다고 강조해서 말하는 것은 헤롯이라는 가짜 왕과 진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더욱이 마태는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고 말합니다. 베들레헴이 어디입니까? 바로 다윗의 고향이잖아요?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왕으로 새겨져 있는 그 다윗의 동네에서 예수가 태어나셨다는 것은 그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왕위를 잇는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유대인의 진짜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는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헤롯의 가장 큰 약점은 정통성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의 동네에서 정통성을 갖는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보통 난리겠어요? 여기서 예루살렘을 헤롯의 왕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득권 집단으로 이해한다면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는 말이 충분히 납득됩니다. 가짜 왕과 그 가짜 왕을 중심으로 한 집단에게 있어서 진짜 왕이 태어나셨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에 절대적인 위협입니다. 진짜 왕이 오신 마당에 가짜 왕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러나 이들은 진짜 왕 앞에서 순순히 물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왕을 거부하고 심지어 제거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심각한 투쟁이 일어나게 되지요. 본문에서도 가짜 왕 헤롯은 진짜 왕을 살해하기 위해 주도면밀한 음모를 꾸미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입니다. 왕이 오셨다는 소식에 가장 기겁을 하고 놀라는 것은 지금까지 왕 행세를 하고 있던 것들일 것입니다. 가짜 왕이었던 헤롯이 놀라고 당황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짜 왕들은 진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놀라고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짜 왕을 몰아내고 진짜 왕을 모시기 위한 갈등과 투쟁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라는 왕을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또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은 가짜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 하나님 외에 누가 우리의 왕이 될 수 있습니까? 성탄절은 크리스마스 세일로 한 대목을 보는 계절이 아니라 왕이 오신 것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왕을 맞이하고 지금까지 왕 행세를 했던 가짜 왕을 몰아내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없이 부르는 캐롤송에서 뭐라고 합니까?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구세주,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 오셨어요. 거짓과 죄악으로 세상을 다스리던 가짜 왕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시고 진짜 왕으로 등극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거예요. 2천 년 전에 이 땅에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던 주님은 오늘도 우리 마음 속에 다가오시고, 우리 사회 속으로 찾아오십니다. 이렇게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왕이 오심을 선포하고 그 왕을 맞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탄절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어요? 그 캐롤송을 의미없이 부르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 노래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왕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이 복음을 전하고 증거해야 하지 않겠어요?

또한 우리 마음 속에서 왕노릇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자주 우리의 교만과 고집이 왕노릇을 합니까? 욕망과 아집, 불신앙과 의심,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좌우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이런 것들을 진짜 왕이신 주님 앞에 무릎 꿇리고 주님의 왕되심에 복종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성탄절을 맞으면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한 가지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발견됩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셨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이 나신 것을 깨닫고 그 왕께 경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수천리 떨어진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습니다. 참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요한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했어요. 유대인들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야가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메시야가 오셨을 때 아무도 몰랐다는 게 기가 막히지 않아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장 애쓰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데 맨 앞장서야 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주님이 여기 찾아오셔도 알지도 못하고,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데도 영적 감수성이 무뎌져서 도무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헤맬 때가 많아요. 맨날 은혜 주세요,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 하면서 은혜를 주셔도 모르고 기도에 응답하셔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네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좀 살펴볼까요? 여기서 말하는 동방은 페르시아나 바벨론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이란이나 이라크 정도 되는 곳이지요. 그리고 박사들이란 무슨 Ph.D.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점성술사들로 추측됩니다. 우리가 다니엘서를 살펴볼 때도 박사들이 많이 나왔었지 않습니까? 이 박사들은 주로 왕의 보좌관이나 자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력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 동방의 박사들이 자기들의 왕도 아닌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그 먼 길을 왔을까요? 그리고 이들이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사들이었기 때문에 하늘의 이상한 징조를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점성술이 맞는다는 얘기인가요? 옛날 이야기에 보면 위인이 죽을 때 큰 별이 떨어진다고 하지요? 삼국지에서 사마의는 서쪽 하늘의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별이 떨어지는 것은 우주 공간을 떠돌던 운석들이 지구의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공기와의 마찰에 의해 타는 현상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 특히 위인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연현상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유성과 위인의 죽음을 동일시한 점성술이라는 것은 허구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보면 큰 별이 동방에서부터 이 박사들을 예수님 계신 곳까지 안내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별이었든지 아니면 확인할 수 없는 어떤 움직이는 발광체였든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연현상에 간섭하신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마태의 의도는 점성술이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지어 별까지 움직여 가시면서 어떻게 이 박사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하셨는가를 말하려는 것이지요. 별까지 동원되어 예수님의 탄생을 증거한 것은 점성술로 파악할 일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온 피조물이 일어나 기뻐하고 맞이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페르시아 지역에는 그때까지도 많은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 대망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겠지요.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 중에서도 이 메시야 대망사상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방의 박사들 중에서 유대인의 왕이 오신 것을 알고 여기까지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지 않겠어요? 나아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을 위한 메시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먼 페르시아의 박사들까지 찾아와 경배했고 하늘의 별까지 동원되어 축하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가짜 왕 헤롯을 몰아내고 세상을 구원하실 진짜 왕 구세주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예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진짜 왕으로 좌정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모든 죄악과 욕망의 부스러기들이 쫓겨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의 삶 속에 확립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거짓에 속아 헛된 신을 섬기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고 진짜 왕으로 모시는 일들이 이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은총이 여기저기 많은 곳에 임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참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며 기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탄의 축복과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 바이블넷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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